2010년 11월 21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弔齒文

弔齒文

오호, 통재라.
나의 앞니들과의 별리를 애통해하노라.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그들을 환송하노라
부디 저 세상에 가서
나와의 인연을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기를.

근 오십 여년을 동고동락했던 앞니 두 개를 떠나보냈다.
오래 전부터 유난히 부실해서 치근만 남은 상태로나마 간신히 지탱되던 인연이 끊겨 버린 것이다. 지난 번 광릉 내 입구에서 발생했던 자전거 사고가 원인이었다. 넘어질 때만 해도 별 탈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때 잇몸에 입은 타격이 앞니의 상태를 심각하게 만들었다.
웬만하면 그 연을 이어보려고 점점 심하게 흔들리는 앞니를 달래가며 석 달을 버텼다.
그러다 끝내 사망선고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오래된 인연의 부재는 우선 당장 현실의 불편함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엊저녁, 예술의 전당에서 의정부 혼성 합창단 공연에 찬조출연 차 색소폰을 연주할 때도 절실히 아쉬웠다.
앞니를 대신한 의치에도 불구하고 색소폰 공연 내내 잇몸에 피가 날 정도로 고통이 심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야채와 과일을 좋아하는 식성인데도 제대로 씹지 못해서 소화가 안되고 위가 더부룩한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 심지어 발음이 자꾸 새는 것 같다는 딸아이의 놀림에도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 모든 게 앞니의 부재로 인한 비극(?)이라고 생각하니 한숨이 나온다.

곁에 있을 때는 모르고 살았는데 없어지니까 비로소 앞니의 소중함이 절실해진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실감난다.
살아가면서 곁에서 사라져서야 새삼 소중했던 그 역할을 되새기게 되는 게 어디 앞니의 경우뿐이랴. 부모님이나 친구 등 사람과의 인연도 그렇고 물이나 공기를 비롯한 자연환경에 대한 인식 역시 사소한 일상이라는 생각 때문에 지나치기 쉽지만 사실은 모두 다 우리에게 있어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일 수 있다. 잃고 난 다음에 아무리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다는 공통점 역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날로 연로해지시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아무리 애달프고 속상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좀 더 잘 해 드릴 걸 고민해봐야 소용없다.
자연환경에 대한 국민적 인식도 비슷한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뜨거운 공방으로 논란의 쟁점이 되고 있는 환경문제에 대한 관점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한번 훼손된 자연은 되돌릴 수 없는 만큼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어떤 의미에서건 자연을 망가뜨리는 일은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도 그렇지만 후대에게도 씻을 수 없는 해악을 끼치는 범죄행위임에 틀림없다.
어차피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자연과 더불어 개발하고 개간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얕은 판단이 환경을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져 역사와 민족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결과로 남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만큼은 분명하다.

그러고 보면 평소 세심한 양치질로 치아보호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자전거 탈 때 다른 사이클 선수들처럼 마우스피스 등의 안전장비로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하는, 이런 저런 아쉬움과 후회가 있다.
그렇다고 한들 지금에 와서 떠나버린 앞니들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자연도 같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다.
만에 하나 현실의 편익만 내세운 결과라면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기우로 단정짓고 외면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지금 이익이 된다 해도 후대에 망가진 국토를 물려줄 수도 있다는 우려는 피아로 나뉘어 힘겨루기로 어물쩡 넘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두의 공동 관심사로서 의혹이나 우려가 해소될 수 있도록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다.
내 앞니만 해도 지금은 기술이 좋아 인플란트를 하면 오히려 원래 치아보다 모양도 좋고 불편하지 않게 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역시 본래 치아만은 못하다는 의사의 설명이 있었다. 그러나 이 보다는 치아가 그렇게 망가지는 게 몸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지표라는 점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조언이 더 중요하게 들렸다.

치아 간수에 공을 들여야겠다는 이 다짐을 앞으로 얼마나 잘 지켜나갈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공염불에 끝나지 않게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제발이지 살아가면서 그 때 더 잘할 걸 그랬다며 후회할 일을 더 이상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2010. 11. 20)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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