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22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후회없는 그리고 아름다운

후회없는 그리고 아름다운

상가 두 곳을 다녀왔다.

현역 시절 많게는 하루에 열세 군데까지 조문을 다닌 경험으로 치자면 의례적인 일과로 치부할 수도 있을 터다. 하지만 오늘의 조문은 평소 때와는 다르게 특별한 의미로 남아있다. 조문을 마치고 난 이후 꽤나 긴 시간 동안 나의 생각을 이끄는 주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여러 측면에서 대조적이었던 양쪽 상가 분위기가 그 빌미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찾은 상가는 대한민국 상위 1% 안에 들어가는 고위 공직자 집안이었는데 근래 보기 드문 규모의 조화 행렬과 장사진을 이루는 조문객들로 북적였다.

그에 비해 나중에 조문한 곳은 앞서의 상가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격조있는 분위기에서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았다. 삼삼오오 모여 고인을 추모하고 있는 대부분의 조문객들이 서로 친밀한 사이인 듯 했고 진심어린 애도로 상주를 위로했다. 상주 측 역시 각별하고 성의있는 응대로 각각의 조문객들에게 감사의 염을 전하고 있었는데 좋은 기억으로 남는 상가 풍경이 됐다.



상가에 가면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유난해 지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가장 모호해지는 상가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지금은 이렇게 문상을 왔거나 조문을 받는 입장이지만 언제 어떤 형태로 서로의 운명이 갈리게 될 지 아무도 모르는 게 인간이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정말 아무리 잘났어도 또는 못났어도 언젠가는 칠성판에 누운 채 세상과 이별을 해야 하는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급기야 앞자리에 앉은 지긋한 연배의 조문객에게 삶과 죽음에 관한 견해를 청하기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귀찮은 표정을 짓던 그 분은 이내 나름의 ‘가치관’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도 삶과 죽음을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죽음을 뭐라고 단정짓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삶 자체가 언젠가는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한계점이 분명한데도 인간이 스스로의 죽음을 절박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죽음에 대한 경험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봉쇄된 환경 때문이다. 그것은 당연하다. 누구도 죽음에 대한 체험을 주위와 나눈 적이 없으니까”

평소 나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아 백 번 공감이 가고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홀로 걸어갈 수 밖에 없는 고독한 인간의 숙명.

그것을 생각하면 늘 뜨거운 무엇인가가 뭉클 치솟는 기분이 든다.

어느 누구도 삶과 죽음에 대해 수학 문제 풀어내듯 정교한 답을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되돌아보니 지금껏 살아오면서 삶에 대해서는 ‘후회없는’을, 죽음에 대해서는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 덕분에 ‘후회없는 삶’과 ‘아름다운 죽음’이 거의 내 인생의 모토가 되다시피 했다.

후회없는 삶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특별히 사회적 공간에 삶의 많은 부분을 드러내놓고 살아야 하는 나 같은 경우는 더욱 그럴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클수록 스스로의 판단으로 결정해야 할 분량이 많을수록 구조적으로 후회할 일들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

후회없는 삶의 영역을 어떤 기준으로 국한시켜야 할지도 문제다. 공적 영역으로 제한할지 아니면 사적 영역까지 포함할지를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는 후회하지 않는 삶의 가치 판단 기준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단기적인 삶에서 실패한 것처럼 보이다가도 장기전에서는 성공의 결과로 도출되는 사례가 얼마든지 있는 만큼 후회 여부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어느 정도의 안목이어야 후회하지 않는 삶이 될 수 있을지 면밀한 관찰과 분석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겠다.

문제는 인간이 장기적인 안목으로 멀리 내다보기보다 즉각적인 반응을 기대하는 어린아이 같은 속성이 발달돼 있다는 점이다. 그 같은 속성이 후회없는 삶의 진행과정을 힘들게 하는 요소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다른 명제인 아름다운 죽음은 생전에 당사자 확인이 불가하다는 어려움이 있다.

내가 죽고 난 이후 주위 사람들에게 아쉬움으로 기억되는지가 아름다운 죽음 여부를 결정짓는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설혹 화려하고 멋있고 호쾌한 삶을 살지는 못했더라도 배려깊은 말 한마디나 행동거지가 주위의 평온을 주도하는 의미있는 삶인가도 굉장히 중요한 판단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들이 말은 쉽지만 생각처럼 그리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이다.

이탈된 치아, 어두워진 시력 등의 상황이 오래 누적된 삶의 시간을 입증하는 요즘이다.

하루 종일 토해내는 열변에 혹사당한 목구멍은 따끔거림으로 경고를 보내기도 한다.

이쯤 되면 이제 그만 점검 대열로 들어가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순응이 미덕임을 알아야겠다.

'후회없는 삶', '아름다운 죽음'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나의 소망이 남아있는 시간을 통해 더 채워질 수 있도록 기도한다.

블로그 독자 여러분들도 화두로 삼아 함께 고민해보면 어떨까 싶다.


(2010. 11. 21)
....홍문종 생각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