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9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봉은사 대첩 관전기

봉은사 대첩 관전기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강남 봉은사가 조계종 직영사찰로 결정되면서 일단락되는 듯하다. 명진스님은 선방수행 쪽으로 가닥을 잡고 오늘 오후 봉은사를 떠났다는 소식이다.

그동안 조계종과 명진스님과의 갈등은 불교계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끄는 이슈거리였다. 실제로 관전평을 쏟아내며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던 눈길이 적지 않았다.

결과는 명진스님의 ‘脫봉은사’로 마감됐다.

그러나 이번 봉은사 대첩(?)의 최고 승자는 누가 뭐래도 명진스님이 아닐까 싶다.

패자의 상처는 고스란히 조계종 총무원장의 몫으로 남게 됐다는 판단이다. 이 싸움의 성패는 '누가 옳으냐' 가 아니라 '누가 이슈를 선점 했느냐'에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사 순리가 다 그렇겠지만 돈과 권력이 모이면 부패하게 되고 특히 종교단체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할 수 있다.

중세가 암흑기로 규정된 것도 종교권력의 폐해 때문이었다. 면죄부나 팔고, 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타락을 일삼던 종교계의 파행이 초래한 어두운 흔적인 셈이다.

맨 처음 종교 개혁의 나팔수를 자처하고 나선 이는 루터다. 확신하는 진실 하나로 천년 부패의 아성을 무너뜨리겠다고 덤벼든 그의 모습은 무모함 그 자체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성공이었다. 이후 장로교의 캘빈이나 감리교의 웨슬리 등 많은 개혁자들이 그의 뒤를 이어 종교의 본모습 찾기에 주력했고 그렇게 형성된 믿음의 새 해석들이 기독교계를 신교와 구교로 양분하면서 종교의 또 다른 가능성과 미래를 얘기해 왔던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성공적인 목회로 교회 부흥을 이룬 순복음교회 케이스가 있다. 야전 텐트에서 시작한 조용기 목사님의 목회가 처음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이단 시비를 비롯한 각종 시험들이 그의 발목을 잡아당기며 방해했다. 하지만 그는 온갖 회유와 협박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펼쳤고 오늘 날 한국 기독교의 본류라고 자부하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등의 경직성을 뛰어넘어 세계적으로 교세를 떨치고 있는 순복음교회를 일궈냈다.



사안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슈 선점 측면만으로도 명진스님의 勝氣는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의 ‘주장’이 불교계에 국한되지 않고 대한민국 전역을 불같이 달군 정황만으로도 의심의 여지 없는 승리다.

전국적인 영향력을 가진 유명인사로 부각됐고 봉은사 신도 규모를 훨씬 능가하는 추종자를 확보했다. 비록 조계종의 봉은사 직영 계획을 막지는 못했지만 선명한 대립 구도를 통해 더 많은 대중을 향해 자신의 ‘의지’를 공표할 수 있었던 것도 명진스님이 거둬들인 수확물이라고 할 수 있다.

명진스님이 향후 어떤 선택을 하게 될 지도 이번 봉은사 대첩의 주요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그가 대승 불교적 차원으로 갈 것인지 소승 불교적 차원으로 갈 것인지 더 나아가 조계종과 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할 것인지 선택적인 조계종의 한 분파로 남을 것인지에 대한 결과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지 않을까 싶다.



결국 종교는 새로운 외침에 의해서 재생되고 부활되게끔 돼 있다. 더 이상 감동을 줄 수 없는 구조직은 밀려나고 말았던 역사적 정황을 보더라도 명진스님의 목소리는 의미를 더 해 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의지와 그것을 실행하는 용기의 역할이 더 없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때론 돌출행동으로 오인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새로운 시도들이야말로 기존의 고인 물을 정화시키고 존속시키는 활약의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지 않다. 다만 그것이 권력의 달콤함으로 변질되었을 때 제대로 감당할 강단이 없으면 독성을 이겨내지 못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묘하게 얽혀 있는 권력과 종교 사이를 정교한 이해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서로 무시하거나 군림의 상대로 삼고자 하면 대번에 탈이 나게 돼 있다. 서로가 긴장관계를 갖고 있지 않으면 종교가 권력의 악세사리로 전락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고려시대 당시 국가의 도움을 받아 크게 성장한 불교가 결국 권력과의 밀착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던 역사적 사실도 있음이다.



그럼에도 희망을 잃어서는 안되겠다.

어차피 새로운 이슈와 국민적 호응에 시대를 관통하는 소명의식이 가미되면 크게 부흥할 수 있는 계기는 저절로 형성되기 마련이니까.

이번 해프닝이 부디 불교계를 비롯한 종교계의 자기 성찰로 이어지는 순기능으로 작용됐으면 좋겠다.


(2010. 11. 9)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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