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13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지난 일을 추억하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무엇을 준다.

오늘 하버드 동창회 회장단 일원이 되어 반기문 UN 사무총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던 바다.

모처럼 만의 해후가 모두를 28년 전으로 되돌려 놓기라도 한 듯 꽃처럼 피어나는 추억담들 속으로 속절없이 빠져드는 모습이었다. 그 바람에 촘촘하게 짜인 반총장의 뒷 일정이 30분 지연되게 돼 다음 일정 분들께 본의 아니게 결례를 범하고 말았다.


돌아보면 하버드 재학시절부터 확실히 반 총장은 남다른 데가 있었다.

매사 최선을 다하는 그의 성실한 성품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도 적지 않다.

그의 ‘오늘’이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버드 광장에는 조그만 은행이 있었는데 그 은행 안에는 늘 만국기가 펄럭였다. 어느 날 우연히 그 곳에 갔다가 우리 태극기가 만국기 대오에서 빠져있는(82년 당시의 미약한 대한민국 국력을 말해주던 정황이었는지 모르겠다) 상황을 발견한 나는 그 즉시 외교부 과장 신분이었던 반 총장님을 학교에서 만났다. 그리고는 농반 진반으로 외교를 잘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태극기의 부재를 告했다.

아무리 찾아도 태극기를 구할수 없다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은행에 태극기를 등장시켰다.

아무래도 그때 그 태극기는 그가 손수 만든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는 우리들에게 이번 G20 정상회의이 대체로 성공적이라는 논평을 내놓았다. 특별히 그동안 G20이 아프리카 등 빈곤국을 위한 배려하는 부분이 없었는데 경제회복이 가난한 나라의 등을 밟고 일어서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에서 유엔과 한국이 개도국을 위한 아젠다를 삽입한 점이 돋보인다는 설명이었다. 개도국과 기후문제를 위한 아젠다는 대한민국이 의장국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됐다며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가점을 줬다.

그는 또 자신의 대통령 출마설에 대해서도 출마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입장을 전했다.

대선 출마설이 현재 유엔 사무총장 재임이 유력시 되는 자신에게 자칫 장애물이 될 수 있다며 헛소문이 자신의 발목을 잡는 일이 없게 해 달라는 당부를 남기기도 했다.

어쨌든 반기문 총장의 부지런함과 끈질긴 인내심이 그를 유엔 총장으로 만들었고 재선가도에 파란불을 켜준 일등공신 인 것만은 틀림없다는 생각이다.

남북문제가 어디로 향하게 될지 모르는 이 때 반총장이 유엔을 지키고 있다면 우리에게 얼마나 든든한 일이겠는가 하는 기대감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28년 전, 반총장이 우리 모두에게 해주던 말이 생각난다.

“지금은 아무 때나 만나서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을 수 있지만 앞으로 서로가 바빠지게 되면 쉽게 만날 수 없게 될 테니 싼 값으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지금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지금 현실을 보니 예언처럼 딱 들어맞는 말이 됐다.

그래도 그가 외교안보수석, 오스트리아 대사, 유엔총영사 등 요직을 거칠 때만 해도 해당 국가를 찾아가거나 청와대를 방문해서 정을 다지며 28년 전의 유쾌한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UN 사무총장이 되면서부터는 만나는 일조차 쉽지 않게 된 것만 봐도 그의 예언은 정확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연배는 다르지만 반듯하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반총장이 한없는 애정과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당시 그를 비롯한 많은 이들과 함께 했던 지난 날의 추억도 못지않게 소중한 나의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만남은 이국 땅에서 하버드 교정을 터전 삼아 저마다의 꿈을 키우던 사람들이 28년 만에 저마다 성장한 모습으로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는 데 큰 의미를 둘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는 UN 사무총장으로, 누구는 국회의원으로, 또 누구는 대학 총장으로, 누구는 기업가로...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느 시점에선가 다시 만나게 될 때 모두의 모습이 또 어떻게 변해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내 마음 속에도 오래 전부터 갈무리 해 놓은 ‘ 꿈’ 하나가 있다.

언제나 현재 진행 중인 너무도 소중한 나와의 약속이다.

꺼내보니 여전히 펄떡거리며 살아있어 다행이다.

조금만 기다려라.



(2010. 11. 13)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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