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26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행복하지?

행복하지?


동생 원종이의 5주기 추도식이 있었다.

눈물로 그의 마지막을 배웅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의 세월이 흘렀다.

부모님과 형제들, 그리고 동생의 몇 몇 친구들이 모여 생전의 그를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형제들 중에서 가장 강건했지만 건강을 잃고 유난히 힘든 삶을 살다가 떠난 동생이다.

인생의 마지막까지 병마의 고통에 시달리던 동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부모님께는 물론이겠지만 내게도 아픈 손가락이 되어버린 동생이다.

그를 떠올릴 때마다 애잔한 울림이 가슴 한 켠을 적신다.

동생과 이승에서의 마지막을 나눌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쳤다는 스스로에 대한 회한 때문이다. 강원도에서 요양 중이던 동생에게 찾아간다고 해 놓고 약속을 지키지 못했는데 그게 그만 마지막 기회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정치의 중심에서 공인으로 활동하던 그 때, 나의 일상은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너무 분주했다. 동생이 보고 싶어 만나러 가다가 1시간 거리를 남겨두고 다음을 기약하며 되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그 때가 마지막이 될 줄 알았다면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동생을 만나러 갔을 것이다.

동생이 그 때 출장 이발사까지 동원해 머리를 깎는 등 몸단장을 하며 형을 만난다는 기쁨에 들떠 있었다는 얘기를 동생 사후에 전해 듣고 가슴 찢어지는 통증이 어떤 것이라는 걸 알았다.

언제나 사랑으로 형을 기꺼워하던 동생에 비하면 나는 참 무심한 형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하루를 온전히 동생에게 할애한 기억이 없다.

그럼에도 동생은 연년생의 박한 나이터울을 아랑곳하지 않고 타박없이 깍듯이 형으로 예우하고 정성을 다했다. 그런 동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목이 멘다.




추도식을 마치고 동생 친구들과 식사 자리를 함께 했다. 그 자리에서 생전의 ‘동생’을 들을 수 있었다. 누구보다 따뜻하게 남을 배려할 줄 알았고 언제나 자신보다 남을 위해 나서기를 즐겨했던 동생에 관한 추억담들이 그들의 기억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또 동생이 생전에 형인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는지도 들려주었다.

그리고 동생과 내가 많은 부분에서 닮았다는 이야기도 했는데 ‘잘 생긴 동생이 지하에서 노여워한다’는 농으로 넘기기는 했지만 한참동안 먹먹해진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그래도 동생이 친구들에게 상당히 괜찮은 인간으로 기억되고 있는 듯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의 기억 속에서만큼은 여전히 건재하게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우정을 나누고 있는 듯 했다. 실제로 그들은 매 기일마다 빠지지 않고 동생을 찾아와 주었다.

문득 나의 사후에는 동생처럼 생전의 정을 잊지 못하고 찾아줄 지인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따뜻하게 대해 줄 걸, 세심하게 살펴줄 걸...

나날이 연로해지시는 부모님과 형제, 친지들, 그리고 지인들, 또 지금 당장 나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더 이상 부질없이 후회할 일은 만들지 말아야겠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 없고 누구도 하늘의 뜻을 거역할 수도 없는 이 엄연한 현실이 나로 하여금 인생의 각오를 숙연하게 간구하게 만든다.


살아가면서 특히 인간관계에서 때를 놓치고 후회하는 일을 만들어서는 안되겠다는 다짐과 각오를 새롭게 세우게 됐다. 혹시 내가, 혹시 그들이 세상을 떠나 만나게 되지 못하게 된다면 그 때 안타까워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유행가 가사처럼 정말 있을 때 잘해야겠다.
더불어 저 세상에서는 원종이가 자신의 꿈을 활짝 펼치며 살고 있길 바란다.

원종아, 행복하지? 부디 행복해라.


(2010. 11. 26.)
...홍문종 생각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