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30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야간 산책

 
야간 산책 

 
오래 전부터 재미를 붙여온 야간 산책은 나의 주요 일과 중 하나가 됐다.    
밤길을 걸으며 하루를 정리하는 것은 물론 블로그 단상을 모으거나 새로운 내일을 준비하는 등의 동력을 얻어온 보고다.  요즈음 들어서는 바빠진 생활로 피곤에 절어 사느라 산책 시 주변을 관찰하거나 일상의 감성을 녹여내는 정도가 많이 미진해져서 여간 아쉬운 게 아니다.
      
 
오늘 밤, 집 앞 철로를 걷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달의 자태가 한 눈에 들어왔다.
며칠 전 서녘하늘을 가득 채우던 ‘super moon’의 위풍은 간데없이 일그러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일년 중 제일 크게 둥글다는 대박 달, 슈퍼문도 별 수 없이 기울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이 놀랍고 쓸쓸했다.
‘가득 차면 기우는 달의 습성.... ‘슈퍼문’이라고 예외는 아니구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런 저런 상념이 머릿속을 헤집기 시작했다.  
마음도 조급해졌다.
나는 지금 어떤가?
이제 막 인생의 정점을 찍고 전환점을 돌고 있는 상태인가?
이미 전성기를 지나치고 내리막길을 향하고 있는 중인가?
아니면 아직도 눈앞에 있는 고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막상 의문들을 쏟아내고 보니 이제 그렇게 사사로운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는 깨달음이 왔다.
내 삶의 지표가 지금 어느 지점에 놓여있는 지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고 결코 거역할 수 없는 큰 틀의 주기를 잊고 지내는 어리석음에 대한 각성이 더 유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연이 아닌 삶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반드시 저물게 되어있는 자연의 법칙을 우리는 그동안 너무 쉽게 간과하며 살았다. 근원을 알 수는 없지만 태어나고 죽는 것이 거역할 수 없는 하늘의 이치라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말이다. 피어서 만개하고 시들어가는 꽃과 결코 다를 바 없는 삶을 살면서 자신만이 유별하다는 우월의식은 또 어디서 기인한 착각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단지 따로 설명할 도리가 없기에 인간의 천명을 슬픔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절정의 기회가 주어진다.
다만 피어날 때의 자아도취에 빠져 인생을 허비하다 보면 저물녘 인생 관리가 쉽지 않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왕성한 에너지를 표출할 당시의 허상에만 집착한다면 꼴불견도 그런 꼴불견이 없을 것이다.  
단역으로 출발해 조연을 맡다가 주연으로 발탁되고 프리마돈나의 영광을 누리다 서서히 무대 뒤편으로 사라져가는 스타의 생성명멸에서도 비슷한 섭리를 보게 된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천기의 작용이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 갈 뿐이다’
맥아더의  유언이   깊은 골로 새겨지는 이 밤,  괜찮다, 괜찮다 스스로를 다독이는 해탈의 경지가 코 앞이다.
지금 이 순간 인생의 방점이 어디에 찍히는 가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배경이다.
다만 인생의 마지막 시점에  어떤 생각이  삶의 기로를 결정할 화력이 될 지에 관심있을 뿐이다.
공중으로 몸을 날린 주사위의 포물선이 향할 그곳이 마지막 정착지가 될 공산이 크다. 
최선을 다해 전성기를 어떤 식으로 맞이할 일인지  상황을  다시금 점검해 볼 일이다.   
  
 
건재한 건강과 치열하게 작용할 수 있는 열정과 뜨거운 감성을  허락받은 내 삶에 새삼 감사하다.    
아직은 도전해 볼 만하다.             

 (2013. 6.26) 

  ....홍문종 생각

2013년 6월 26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역사에 만약이 있다면

역사에 만약이 있다면


불세출의 영웅, 시저를 생각한다.    
시오노 나나미가 자신의 저서 ‘로마 이야기’에 적지 않은 분량으로 소개할 만큼 명성을 날렸지만 그의 말로는 비참했다. 권력다툼과 음해와 배신 속에서 시신조차 거두지 못한 비운의 삶에 종지부를 찍으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브루투스 너 마저”
시저는 자식처럼 정을 주던 브루투스의 칼끝이 자신의 폐부를 뚫는 순간, 이 같은 마지막 단발마로 절망과 회한을 표출시켰다. 그리고 브루투스는 “시저를 사랑했지만 로마를 더 사랑한다”는 항변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설득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렇게 역사의 한 점에서 서로를 엇가른  운명의 실타래는 여전히 ‘길 찾기'를 중이다.   
뿐만 아니라 정치를 시작한 이후 지금 이 순간까지,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명제이기도 하다.  

정치 초년병 시절 만난 노 정객의 정치인생도 나를 자극하는 명제 중 하나다.
혈혈단신으로 6선의 고지까지 오른 그는  YS, DJ 못지않다고 스스로의 정치적 역량에 대한  자부심을  감추지 않는 분이었다.  만날 때마다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보다 당의 이익, 당의 이익보다 국가이익, 국가이익보다는 인류공영의 보편적 진리 순으로 행동강령을 삼고 있다고 주장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항상 넉넉하고 유쾌한 인품과 실력으로 후배들을 이끌었지만 정작 자신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조금은 초라한 모습으로 굴절된 채 정치인생을 마감했다.       
그의 실패 이유를 복기해 보자면 결국 ‘당, 국가, 인류공영’을 앞세운 그럴듯한 구호가 정치적 합리화를 위한 도구로만 기능했기에 문제가 됐다는 생각이다. 지도자로 신뢰를 얻고 자리매김이 가능하도록 추동하기엔 충분하지 않은 개인적 내공도 원인이겠지만.

지도자의 덕목에 있어 개인적인 신념이나 철학 못지않게 흔히 말하는 저자거리 의리도 중요하다는 교훈을 그 때 얻었다. 당이나 국가 등 인류공영을 위한 지도자의 헌신은 너무도 당연한 명제지만 가치창출 방식 역시 이에 못지않음을  감안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도자라면 반드시 함께하는 이들과의 협치를 뜨겁게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에 나름의 주석을 달게 되는 이유라면 이유다.  우정의 가치를 살피는 관리능력은 공적 영역에 웅대한 이상을 확충하는 작업 못지않게 중요함을  강조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당의 책임을 맡다 보니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이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그로 인한  긍정적 요소가 없지 않지만  지금껏 생각해오던 개념이 혼미해지고 갈피를 못 잡게 되는  부작용도 겪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브루투스의 선택을   다시 생각해 보지만 아무래도 최선은 아니었다는  결론이다.    
 실제로 역사는 냉담한 시선으로 그의 선택에  돌팔매를 날렸다. 사리사욕에 눈먼 탐욕의 배신자로 낙인찍고 몰아내며 그의 흔적을 지워나갔다.   아무리 로마에 대한 사랑을 강변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시저와의 의리를 지키며 각성을 촉구하는 정도의 선택이었다면   달랐을까? 
모르긴 몰라도 로마의 미래는 물론 브루투스에 대한  평판은  분명 다른 그림으로 채워졌을  것이다.
역사에 만약이 있다면.  

 어떤 위치에 있건 어떤 종류의 리더십을 발휘하건 중심을 잃지 않으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일본 전국시대 당시  세 영웅의 특성을 비교한 ‘울지않는 새’ 스토리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본다.    
'울지 않는 새'를 쥐어주었을 때, 다혈질의 '오다'는 울지않는 새는 필요 없다며 즉석에서 죽일 거라는 예상이고 도요토미의 경우 어떻게든 새가 울게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뜻을 이룰 것이며 느긋한 도쿠가와만이 새가 스스로 목젖을 울리기를 기다렸을 거라고 유추한 내용이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생각해보니  당연히 도쿠가와 이에야스 쪽이었을 것 같다. 인내하며 기다릴줄 아는 그의 모습이 갈등의 실타래를 풀고 상대에게 새로운 기회와 명분을 제공하는 덧셈의 정치를 지향하고픈 나의 정치철학과  상당부분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강한 자력으로 나를 끌어당기고 있는 이 느낌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지나친 이상주의적 발상이라는  지적이 있어도  결코 궤를 달리하고 싶지 않다.    

또 다른 위치,  또 다른 현실정치와 맞닥뜨리게 됐을 때 어쩌면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는 마키아벨리로  변신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기다림의 미덕을 세상의 최고 가치로 삼는 ‘기린초’가 되고 싶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또 그것이 지금까지의 총체적 입장을  감안해서 내린  결단이기에    유의미하다.   
 적당히 기분좋은 바람이 볼을 간지럽히는 이 새벽,  이런 결론으로 입장정리를 마치고 나니   조금은 뿌듯한 기분이다.   
뭐지?          

(2013. 6. 26) 

...홍문종 생각 

2013년 6월 23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호갱이'

'호갱이' 

 

"대한민국 국민은  통신업계 '호갱이'인가?" 
선뜻 '그렇지 않다'는 답을 내놓을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삼성, LG, 팬택 등 전 세계를 주름잡는 휴대폰 제조회사를 배출하고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휴대폰을 비싸게 구매하는 현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현주소다.   더구나 사용자 4명 중 1명이 구입한 지 1년 이내에 휴대폰을 바꾸며 OECD 주요 국가 중 최고 수치를 기록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관련업계 추정에 따르면 8조원이 넘는 통신3사의 마케팅비용 중 6조원 정도가 보조금으로 소요되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 휴대폰은 해외에 비해 20~30%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는데 부풀려진 출고가가 문제시되고 있다.   통신사와 제조사가 담합해서 휴대폰 가격을 부풀린 뒤 보조금을 지급,  싸게 파는 것처럼 소비자를 현혹하고 있는데 이 행태가 업계의 관행으로 묵인되고 있는 것이다.
휴대폰을 자주 교체하게 되는 것도 많은 보조금을 제공하며 단말기의 조기 교체를 유도하는 이통사들의 과열 마케팅을 주범으로 보고 있다. 스마트폰 가격을 비싸게 부풀리고, 비싼 요금제를 선택해야만 보조금을 많이 지급해, 소비자들에게 비싼 요금제도 가입을 사실상 강요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보조금지급이 마케팅비용을 상승시키고 또 통신비에 반영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칼을 빼들어도  그다지 약효를 보는 것 같지 않다.
454여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보조금 27만원을 상한선으로 내세워 휴대폰 업체 단속에 나섰지만  처음 며칠 출고가 인하경쟁 등으로 성의를 보이는 가 싶더니 오히려 복마전 양상이 음성화 되는 분위기다.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판매점 호객행위와의 소통(?)에 실패한 소비자는 정상거래를 하고도‘호갱님’(호구+고객 합성어로 비싸게 휴대폰을 구입한 구매자를 비웃는 신조어) 신세로 전락하기 일쑤다.
 이 문제를 결코 강 건너 불구경으로 넘길 수 없는 건  우리들 중 누구도 '호갱이'로 되는 비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 때문이다.  

이대로는 안된다. 
달라진 현실을 겸허히 수용하고 합리적 전략수정에 나서는 길만이 통신업계의 살길이다.   
요금인하의 여력이 충분한데도 상대의 가입자를 빼앗아 오는 데만 혈안인 전략만으로는  더 이상 경쟁을 주도할 수 없다.  보조금을 앞세워 신규가입의 수치증가에만 사활을 걸던 시대는 끝났다. 휴대폰 출고가를 부풀려 책정해놓고 보조금 장난으로 싸게 파는 척 소비자를 유린하거나 통화료 할인 대신 기본료 올리기, 공짜 폰으로 유인하고 요금제 폭탄으로 바가지를 씌우는 조삼모사식 마케팅은 그 수명을 다했다는 말이다.
오죽하면  "세상에 공짜는 없다"며 “과대광고를 자제하겠다”는 한 휴대폰 대리점 업주의 너무도 당연한 선언이 네티즌의 폭발적 관심을 끌고 있겠는가.  이 업주는 "스마트폰은 할부원금이 중요하다"며 "가장 싼 매장은 아닐지 몰라도 가장 정직하게 판매하겠다"는 ‘솔직 멘트’와 함께 (속지않는) ‘스마트폰 구입 요령'을 깨알같이 적은 인쇄물로 인기몰이 중이다. 
    
우선은 투명한 휴대폰 판매구조에 방점을 둘 일이다. 
더 이상 소비자 착취를 기업이윤의 근원으로 삼지 않겠다는 신뢰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나마 음성통화 대신 콘텐츠 유통에서 미래를 찾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는  KT의 근황을 반갑게 듣고 있다.  앱스토어를 운영하고, 동영상이나 음악 같은 디지털 가상 재화 유통에서 수익을 만들어 내겠다는 발상은 충분히 진취적이다. 또 헬스케어 사업과 기업의 모바일 오피스 같은 사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보는 SKT 안목에도 기대를 걸게 된다.   T스토어 같은 디지털 콘텐츠 유통 플랫폼, 11번가 같은 상품 판매 서비스를 통해 신수익원을 만든다는 생각인데 기업의 정체성을 통신사로 국한하지 않고 '통신사 그 이상'을 지향하는 것으로 바람직하다. 
기왕에 도입됐지만 활성화 되지 못한 ‘블랙리스트 제도’에 대한 실용성에도 관심을 가질 일이다.
대리점을 거치지 않고 유통사나 해외에서 구입한 휴대폰을 USIM칩을 통해 등록만 하면 소비자가 통신사를 직접 고를 수 있게 한 제도인데  활용해 볼 만하다.  
  
그러고보니 앞서의 질문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대한민국 국민은 통신업계  '호갱이'인가? "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도  '호갱이'이기를 거부한다"                        

(2013. 6.22) 

...홍문종 생각 

2013년 6월 21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옥천에서 돌아온 '홍상병'

옥천에서 돌아온 '홍상병'


갈수록 감동적이거나 신나는 일들이 줄어들고 있는 요즈음이다.
흥분하거나 분노하게 되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 현실을 조금은 쓸쓸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무덤덤한 내 일상을  ‘봄 날’로 바꾸는 '파장'을 만났다.  옥천으로부터 날아온 편지 한 통이 생각보다 큰  감동으로  다가온 것이다.    
연애편지라도 받은 것처럼   온종일 들떠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저 가족의 안부를 챙기거나 앞날을 고민하는 등 충실하게 군복무에 임하고 있는 자신의 일상을 전하는 정도였는데 내게는 엔돌핀을 제공하는 원천의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군 복무 중인 세째인 막내, 홍상병 얘기다. 
    

입대하는 녀석을 배웅한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나 상병 계급장을 달고 휴가를 나왔다.
오늘 아침, 이른 시간 집을 나서는데  잠시라도 녀석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녀석의 방을 찾았는데 곤히 자고 있는 녀석의 얼굴을 쓰다듬다 그만 깨우고 말았다.  
일어난 김에 안아도 주고 등도 두드려 주며  회포를 푸는데  유난히 살가운 느낌이었다. 
휴가기간 동안  각별히 조심하라는 당부를 남기고 대문을 나서는데 문득 ‘이 녀석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분위기 메이커인 ‘청량제’의 효용 가치를 모르고 지나치지 않았을까...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녀석의 존재가 큰 절실함이 되어 내 가슴 속을 파고들었다.  
    

그 사이 녀석은 부쩍 자라있었다.
일등병 때의 어설픈 흔적이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은 늠름한 군인아저씨였다.  제대까지  남은 날을 꼽는 모습은 다르지 않았지만   국방의 의무를 열심히 이행하며 생각을 가꿔나가는 동안 자신의 삶 뿐 아니라 부모를 비롯한 주변을 염려하고 배려할 줄 아는 마음 씀씀이를 터득하고 있었다. 
녀석의 성장이 또 다시 부모인 나를 감동시키고 행복을 줬다.  앞만 보고 달려온 스스로의 삶을 돌아봐야겠다는  자극도  얻었다.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일상의 태반을 채우며 살아가는 내 삶은 행복한가?  
성찰 끝에  비약일 수도 있지만 인간의 행복이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가교를 통한 인연이  인간의 삶의 질 여부를  가장 단순하게 정하는 기준일수도 있다는 가정을 포함해서 말이다. 
실제로 짧은 시간이나마 만남과 대화만으로 기쁨을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 반대인 경우도 있다.  마음과 다른  행동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받으면서 고약하게 얽혀버린 인연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다 무엇보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새삼스러운 화두지만  앞으로는 그들을  더 많이  배려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홍상병이 내게 준 또 다른 선물이라고 생각하면서.  


녀석의 검게 그을린 얼굴이  여간 믿음직스럽지 않다.   
블로그를 쓰기 위해 컴퓨터에 앉아있는 이 순간에도 녀석에 대한 자긍심으로  몸 전체가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다. 
 대견하고 자랑스런  내 아들, 홍상병 화이팅!    
                                                
(2013.6.20)
....홍문종 생각

2013년 6월 16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이현령비현령 유감

이현령비현령  유감


여론조사 결과, 이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60%를 넘어섰다는 보도가 눈에 띈다.  
남북당국회담 무산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일관된 대북대응 기조가 긍정적 평가를 받은 배경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장의 성과물에 집착하지 않고 신뢰와 원칙을 기조로 한 대북정책소신을 국민들이 알아봐 준 것이다.
그렇다면 벼린 날처럼 독한 말로 청와대를 공격하던 야당은 당분간 자숙모드를 고수해야한다는 생각이다. 회담이 결렬되자 ‘소모적인 기 싸움으로 한반도 평화의 본질을 놓쳤다’는 등의 양비론으로 정부를 압박하던 모습을 생각하면 그렇다. 청와대가 ‘(야당의) 양비론이 북한에 면죄부를 준다’고 우려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경천동지할 잘못된 발언’ ‘오만하고 교만한 '신 보도지침' 등 강도 높은 독설을 쏟아내던 그들이다.  특히 북한이 ‘비핵화는 김정일의 유훈’이라는 이례적인 제스처까지 동원해가며 미국과의 연결을 간청(?)하는 시점임을 감안하면 그동안의 호들갑을 야당이 어떤 식으로 무마하려들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결단의 연속이었던 우리의 지난한 역사를 생각하면 파란만장한 국가의 운명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대한민국의 슬픈 운명은 강대국 파워게임의 핵심 추 역할을 하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가 바뀌지 않는 한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강단있는 지도자의 덕목이 요구되는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소신과 신념, 원칙을 고수하는 그 모습이야말로 이 시대의 절대가치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 아닐까 싶다.
정치인의 강한 소신과 신념은 개인적으로는 결코 달갑지 않은 선택임에 틀림없다.
신념의 선택은 개인적 이해와 관계없는 일로 늘 갈등과 혼란의 회오리에서 스스로를 견뎌내겠다는 의지의 발로다. 신념과 소신이라는 이름으로 행할 그 길을 위해 고독한 순례자의 운명을 감내하겠다는 선서의 의미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지도자들이 이름도 빛도 없이 자신의 신념을 위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흔적까지도 묵묵히 품어내겠다는 약속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서도 언젠가 비슷한 결기를 느꼈었던 기억이 있다.
      

무엇인가를 주장하지 않으면 다른 이들과 척을 질 일도 없고 비판받을 일도 없이 편하게 살 수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때에 따라 ‘의견없음’의 현명한 처신으로 일신의 안위를 보장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실제로 가끔씩 무능력의 대명사 격인 인사들이 무소신을 발판삼아 출세가도를 달리는 모습이 적지 않으니 딱 떨어지는 정답이 없는 게 세상일인가 싶기도 하다.
안타까운 건 야당이 진영논리에 치우쳐 진정성 있는 비판을 잃어가고 있는 점이다.
정치현장에서 무소신보다 더  큰 해악이 양비론이라는 걸 모르지 않을 터인데  이현령 비현령의 기회주의적 행태도 불사하는 모습이다. 이분법적 사고가 아닌 비판의 상황과 그에 따른 근거를 모두 열어 놓고 바라봐야 하는데 스스로의 입지를 좁히는 자충수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근원을 따지고 원칙을 따지고 순리를 따지면 어떤 사안도 완벽할 수 없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네 인생은 그나마 둘 중에 조금이라도 덜 나쁘거나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선택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는 걸.
배우자를 찾기 위해 맞선을 보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맞선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장가가기가 어렵겠다는 결론에 도달한 적이 있다.
그때까지 만나본 여성들의 장점을 다 갖춘 인물을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사람은 없었다. 단점과 장점이 공존하는 현실이었기에 무조건 좋거나 무조건 싫은 상대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배우자로서 내 자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안에 방점을 두고 그 방점에 동의할 수 있으면 인연을 만들 수 있는 '삶의 비밀'을  알게 됐다.    
결국 결혼이란 완벽한 배우자가 아니라 최적의 배우자 선택을 통해 이뤄지는 대사였던 것이다.     
      

정책 시행에 있어 ‘다리를 놓는 것도 좋고 안 놓는 것도 좋다. 또 다리를 안놓는 것도 나쁘고 놓는 것도 나쁘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시인이나 철학자로는 몰라도 현실정치인으로서는 그처럼 무능하고 무책임한 사람이 없다.
그런 점에서 선 굵은 결단으로 대북관계를 리드한 청와대 대응책이 적절했다는 생각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일제 강점기 이후 대한민국 근대사를 거쳐 간 굵직굵직한 사건들 모두 이번 남북회담 결렬에 영향을 안 미친 사건이 어디 있겠는가.
남북문제는 남남갈등을 야기할 만큼 한가한 과제가 아닌 현실을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풀어나가야 할 것 같다.  정부여당만의 것도, 야당만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함께 해결해야 할 오래된 숙제라는 현실을 말이다 .
그러기 위해선 그동안 잘못된 관행에 길들여진 북한의 떼쓰기 신공(?)으로부터 의연해질 필요가 있다.  
조금 더 인내를 갖고 견지해야 한다면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2013. 6. 16) 
....홍문종 생각  

2013년 6월 13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부산 방문

부산 방문  


부산은 찾을 때마다 정체모를  설렘의 파동을  느끼게 돼 각별한 도시다.   
해운대와 광복동 거리에 새겨진  지난 날 추억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은데  나만의 정서는 아니지 싶다.
그런 부산을 오늘은 당 지도부의 일원으로 현장최고위원회 등 정치활동을 위해 방문했다.
하지만 강행군하는 일정에 밀려 바다에 눈길 한 번 제대로 던져보지도 못하고 돌아와 아쉬웠다. 
  
  
부산은 누구랄 것 없이 가덕도 신공항에 대한 기대감으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지역 정치인들도  신공항 건설에 대한 희망과 염원을  이구동성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분위기였다.  그동안  서울 다음가는  도시로서의 위상에 걸 맞는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불만의 발로일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모의원은 서울과 부산의 차이를 베트남에까지 견주며 부산에 대한 처우개선(?)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개인적으로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다.   

부산의 도약을 위한 국가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라는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 아시아 물류의 중심지, 동북아 허브 기능을 갖춘 부산의 도시적 위상에 걸 맞는 도시환경 조성과 인프라 구축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해 온 터다.



그런 측면에서 가덕도 신공항 건설이 부산의 기회가 될  여건이 무르익은 셈이다.   
대선공약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실현가능성이 높아진 점도 기대치를 키우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공항 건설이 결코 만능 해결사가 아닌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성급한 결론은 금물이다. 자칫 분란만 자초할 수 있다.
기대치에 들뜬 나머지 반드시 짚어야 할 사안들을 소홀히 해서 생각지도 못한 역작용에 직면하게 될까봐 우려돼 하는 말이다.
  
 진정 부산의 도약을 원한다면 여러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   
특히 신공항 건설처럼 거액의 예산이 요구되는 국책사업은 정치논리나 지역이기심에 급급해서는 안된다.
국익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게 마땅한 도리이고 무엇보다 과정에서의 인내와 배려 역시  중요한 덕목이다.
그런 다음 합리적인 결론이 도출될 때까지 냉철하고 공정한 공론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상식선에서 처리하면 문제될 게 없다.  
다만 이를 간과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갈등과 혼란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  


세상이 달라졌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비행기로 40분, KTX로 2시간, 더 이상 두 도시를 분리할 명분이 없음을 입증하는데 이보다 더 명확한 기록이 있을까 싶다.  특히 태평양 시대를 목전에 둔 시점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이제는 서울의 경쟁력만으로는  확실히 부족하다.    
그런 차원에서 부산 발전을 모색하고자 하는 노력은 국가 전체의 부흥을 위한 적절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서울과 부산을 거점도시로 삼아 지구촌 무대에 대한민국을 선두주자로 내세울 기회가 아닐까 싶다.  
타이밍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서울과 부산이 공조하는 쌍끌이 작전으로 대한민국의 도약을 견인할 수 있다는 ‘근거없는 자신감’ 덕분에  한층 더 충만해진   하루였다.                                      

(2013. 6.13) 

....홍문종 생각                                   

2013년 6월 9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말 빚

 말 빚  


여러분은 살면서 본의 아닌 말빚으로 곤혹을 치른 경험이 없으신지요.
직접 겪어보니 말이란 게 인간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새삼 알겠습니다.
덕분에 말은 아무리 조심해도 부족하지 않다는 교훈을 가슴에 깊이 새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며칠 전 팔순 노모께서 전화를 주셨는데 ‘왜 사람들을 나쁘게 평가해서 구설에 올랐느냐‘는 걱정이셨습니다.  
제 이름이 거명된 한 신문 칼럼이 어머니를 많이 놀라게 한 것입니다.
죄스런 마음으로 바빠서 미처 챙기지 못한 기사를 읽어보니 애초의 의도에서 한참 변질된 내용으로 제 발언이 인용되어 있었습니다.
솔직히 읽는 순간, 진의를 모르지 않았을 텐데 개인적인 반감이 작용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에 발끈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내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 그런 해석도 있을 수도 있다는 쪽으로 정리가 됐습니다.
      

그렇더라도 문제가 된 발언에 대해 정확한 진의를 밝히고자 합니다.
그것이 올바른 도리일 것 같습니다.
저는 결코 오세훈 전시장님이나 원희룡, 나경원 전 의원님을 욕되게 하거나 폄훼할 의도가 없었습니다. 평소 이 세분의 무한한 정치적 가능성에 대해 깊은 신뢰를 갖고 있었습니다. 문제의 발언은 단지, 아무래도 현역 프리미엄이 작용하는 박원순 시장님보다는 당선 가능성에서 불리할거라는 당내 걱정을 전하면서 선거에 관심이 있는 당내 인재들이 더 많이 분발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솔직히 정치 전면에 나와 있지 않는 분들을 거명하고 평가하는 자체가 당사자에 대한 정치적 가능성을 높게 본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생물 정치 지형에서 누군들 내년 6월 선거 결과를 예측할 수 있겠습니까?
그 때가서 박시장님 입지가, 제가 언급한 세분에 대한 국민 평가가 어떻게 달라질지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저에게는 자타가 공인하는 ‘오래된 장점’이 있습니다.
스스로 밝히기가 좀 그렇지만  사람들의 장점을 찾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일을 푼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주변 분들로부터 ‘‘홍문종’은 어떻게 해서든 남의 단점을 짚어서 찍어 내리기 일쑤인 정치판 인심에서 다른 사람의 장점을 부각시켜 함께 하는 정치를 지향한다‘는 평가를 들어왔습니다.
저 자신도 그 평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매번 자신을 돌아보며 채찍질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제가 장래가 촉망되는 후배 정치인들을 깎아내리는, 그것도 언론에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어리석은 짓을 했다니요?   그렇게 해서 제가 무슨 이득을 얻는다는 건지요?
더구나 저는 우리당이 내년 선거를 성공적으로 잘 치러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는 사무총장직책을 받은 사람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잘못은 불민한 저에게 있습니다.   
혹여 저의 말빚으로 인해 상처를 받으셨다면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2013. 6. 7)
....홍문종 생각

2013년 6월 2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경제민주화를 위한 고민

경제민주화를 위한 고민

  
워크숍 일정에 참석해 경제민주화를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강봉균 전 민주당 의원을 초청해  ‘보수정당으로서 경제민주화 접근 방향'이란 주제의 특강도 들었다.  
(비록 작은 시도지만 변해보겠다는 우리 당의 진정성을 격려해 주시길)  거침없는 쓴 소리로 재정경재부 장관, 3선 의원 경력의 화력을  발휘하는 유익한 강연이었다.    
강 전의원의 특강 중  몇  내용은 유난히 귀에 쏙 담기는 설득력으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특히 민주당이 무차별 복지 정책을 폈지만 결국은 선택적 복지로 가야한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호응이 컸다.     
  
그 밖에도  시장조율에 맡겨야 할 사항을 정부가 공권력으로 개입하면 경제적 약자까지 피해를 보게 된다는 우려가 관심을 끌었다.  복지재원조달은 세무조사 강화보다는 세재개선 접근을 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마찬가지였다.   세금신설이나 세율인상없이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복지재원을 충당하려면 세무조사강화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그 효과가 일회성에 그칠 뿐 아니라  부작용도 크다는 게 이유였다.  실제 막상 세무조사가 강화되면 대기업 등 규모가 큰 불법행위들은 잠적해버리거나  자영업자 탈세만 포착되고  민생경제 위축으로 직결되는 어려움이 있다.   

강 전의원의 특강은 우리들에게 경제민주화가 생각보다 간단히 정리될 사안이 아닌 현실적 문제점을 자각시켰다. 결국 경제민주화 입법과정에서 실천의 문제만이 아니라 실행단계에서의 예측되는 사안까지도 심도있게 짚고 살펴야하는 당면성이 ‘6월 국회’에 임하는 우리 모두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었다.  강연이 끝나고 동료의원들의 플로어질문이 쇄도한 것도  그 반증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경제민주화 컨셉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수순정도는 몰라도 대한민국이 세계 1등 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결정적 수단까지는 될 수 없다는 데 경제민주화의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경제민주화가 대한민국을 세계 정상에 올릴 수 있는 최고의 상책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경제민주화를 위한 최고의 상책은 무엇인가.  
생각하면 간단하다.  
빌게이츠 등 미국의 부자들이 자기 재산의 95% 이상을 기꺼이 사회에 내놓는 것처럼 우리도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미국 부자들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사가 되는 것처럼 우리 부자들도  존경받는 인물군에  속할 수 있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부자에 대한 국민 인식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이유는 딱 한가지다. 미국 부자는 자기 재산을 사유화하지 않고 공적 개념으로 풀어나가는 반면  대한민국 부자는 재산의 사유화와 대물림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집착한다)   

공익을 위해 사유재산을 쾌척한 당사자에게는  이 아무개 도로, 김 아무개 병원, 박 아무개 학교 하는 식의 명명으로 그 처신을 명예롭게 하고 그 후손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는 방법도 있다.  (후손)본인이 원하면 일자리 혜택도 배려하는 등  유공자 후손과 같은 혜택을  주는 사회적 장치도 이들의 참여를 높이는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경제민주화를,  협력하고 나누는 과정을 통해 가치를 찾고  또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사회적 협의체로 확신시키는 게  중요하다. 가진 사람의 것을 뺏거나, 숨거나, 도망가거나 또는 색출하는 등 전쟁형태의 경제민주화는 사회적 화합을 끌어내지 못할 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나라를 속이고 자신을 속이는 것이  현명한 처세라고 오판하게 만들수도 있다.     

‘햇볕정책’을 벤치마킹하는 것도 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대북정책에서의 햇볕정책은 두 번의 서해교전과 핵실험 등의 결과로 더 이상 논할 가치조차 없어져 버린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경제민주화에서의 햇볕정책은 또 다른 실리와 명분을 창출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일단은 규제보다는 여건의 합리적 개선을 통해 자발적 납세를 늘리면 좋은 결과를 기대해도 좋다는 생각이다.   자발적 납세 기업이나 개인에게 인센티브 혜택을 부여하는 방식 등으로 반대급부를 명확히 규정하면  강압적 납세강요보다는  긍정적 요인이 늘어날 것이다. 실제 세수가 증대되면 자금유동성이 좋아지고 시중에 돈이 풀리게 된다.  또 세금 납부에 있어 절세나 감세 측면에서 기득권 계층보다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하층민의 불만이나 피해의식도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다.

갈 길 멀고 험한 경제민주화 과정에서  완벽하게 모든 이의 구미에 맞는 대응책은 없다.  
더구나  지금같은 분위기에서 참고 기다리라고 국민을 설득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순 없기에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제안이니 함께 고민해 보기를.

 (2013.  6.   2)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