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6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이현령비현령 유감

이현령비현령  유감


여론조사 결과, 이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60%를 넘어섰다는 보도가 눈에 띈다.  
남북당국회담 무산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일관된 대북대응 기조가 긍정적 평가를 받은 배경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장의 성과물에 집착하지 않고 신뢰와 원칙을 기조로 한 대북정책소신을 국민들이 알아봐 준 것이다.
그렇다면 벼린 날처럼 독한 말로 청와대를 공격하던 야당은 당분간 자숙모드를 고수해야한다는 생각이다. 회담이 결렬되자 ‘소모적인 기 싸움으로 한반도 평화의 본질을 놓쳤다’는 등의 양비론으로 정부를 압박하던 모습을 생각하면 그렇다. 청와대가 ‘(야당의) 양비론이 북한에 면죄부를 준다’고 우려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경천동지할 잘못된 발언’ ‘오만하고 교만한 '신 보도지침' 등 강도 높은 독설을 쏟아내던 그들이다.  특히 북한이 ‘비핵화는 김정일의 유훈’이라는 이례적인 제스처까지 동원해가며 미국과의 연결을 간청(?)하는 시점임을 감안하면 그동안의 호들갑을 야당이 어떤 식으로 무마하려들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결단의 연속이었던 우리의 지난한 역사를 생각하면 파란만장한 국가의 운명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대한민국의 슬픈 운명은 강대국 파워게임의 핵심 추 역할을 하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가 바뀌지 않는 한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강단있는 지도자의 덕목이 요구되는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소신과 신념, 원칙을 고수하는 그 모습이야말로 이 시대의 절대가치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 아닐까 싶다.
정치인의 강한 소신과 신념은 개인적으로는 결코 달갑지 않은 선택임에 틀림없다.
신념의 선택은 개인적 이해와 관계없는 일로 늘 갈등과 혼란의 회오리에서 스스로를 견뎌내겠다는 의지의 발로다. 신념과 소신이라는 이름으로 행할 그 길을 위해 고독한 순례자의 운명을 감내하겠다는 선서의 의미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지도자들이 이름도 빛도 없이 자신의 신념을 위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흔적까지도 묵묵히 품어내겠다는 약속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서도 언젠가 비슷한 결기를 느꼈었던 기억이 있다.
      

무엇인가를 주장하지 않으면 다른 이들과 척을 질 일도 없고 비판받을 일도 없이 편하게 살 수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때에 따라 ‘의견없음’의 현명한 처신으로 일신의 안위를 보장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실제로 가끔씩 무능력의 대명사 격인 인사들이 무소신을 발판삼아 출세가도를 달리는 모습이 적지 않으니 딱 떨어지는 정답이 없는 게 세상일인가 싶기도 하다.
안타까운 건 야당이 진영논리에 치우쳐 진정성 있는 비판을 잃어가고 있는 점이다.
정치현장에서 무소신보다 더  큰 해악이 양비론이라는 걸 모르지 않을 터인데  이현령 비현령의 기회주의적 행태도 불사하는 모습이다. 이분법적 사고가 아닌 비판의 상황과 그에 따른 근거를 모두 열어 놓고 바라봐야 하는데 스스로의 입지를 좁히는 자충수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근원을 따지고 원칙을 따지고 순리를 따지면 어떤 사안도 완벽할 수 없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네 인생은 그나마 둘 중에 조금이라도 덜 나쁘거나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선택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는 걸.
배우자를 찾기 위해 맞선을 보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맞선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장가가기가 어렵겠다는 결론에 도달한 적이 있다.
그때까지 만나본 여성들의 장점을 다 갖춘 인물을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사람은 없었다. 단점과 장점이 공존하는 현실이었기에 무조건 좋거나 무조건 싫은 상대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배우자로서 내 자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안에 방점을 두고 그 방점에 동의할 수 있으면 인연을 만들 수 있는 '삶의 비밀'을  알게 됐다.    
결국 결혼이란 완벽한 배우자가 아니라 최적의 배우자 선택을 통해 이뤄지는 대사였던 것이다.     
      

정책 시행에 있어 ‘다리를 놓는 것도 좋고 안 놓는 것도 좋다. 또 다리를 안놓는 것도 나쁘고 놓는 것도 나쁘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시인이나 철학자로는 몰라도 현실정치인으로서는 그처럼 무능하고 무책임한 사람이 없다.
그런 점에서 선 굵은 결단으로 대북관계를 리드한 청와대 대응책이 적절했다는 생각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일제 강점기 이후 대한민국 근대사를 거쳐 간 굵직굵직한 사건들 모두 이번 남북회담 결렬에 영향을 안 미친 사건이 어디 있겠는가.
남북문제는 남남갈등을 야기할 만큼 한가한 과제가 아닌 현실을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풀어나가야 할 것 같다.  정부여당만의 것도, 야당만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함께 해결해야 할 오래된 숙제라는 현실을 말이다 .
그러기 위해선 그동안 잘못된 관행에 길들여진 북한의 떼쓰기 신공(?)으로부터 의연해질 필요가 있다.  
조금 더 인내를 갖고 견지해야 한다면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2013. 6. 16)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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