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24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여행길 단상

여행길 단상


다도해의 최남단 섬 거문도에 다녀왔다.

거문도는 삼도 삼산도 거마도 등으로 불리던 본이름이 있었으나 섬 주민과 필담으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학문이 뛰어난 이들이 많은 사실을 알게 된 중국 청나라 정여창 제독이 문장가들이 많다는 뜻인 거문((巨文)으로 바꾸었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거문도는 또 조선 시대 당시 영국과 러시아의 정치적 대립으로 야기된 ‘거문도 사건’으로 우리에게 치욕의 역사를 남긴 곳이기도 하다.

도착하자마자 거친 일기 때문에 일주일여를 섬에 갇혀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흡족함으로 남는 여행이다.

실제로 거문도에 발을 내딛은 첫날부터 풍랑주의보 발효로 다도해 최남단 섬 구경에 들떠있던 우리들의 꿈은 위기 상황에 봉착하게 됐다. 하지만 이 상황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방해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모르긴 몰라도 아름다운 섬의 풍광에 정신을 빼앗긴 이유도 클 것이다.

거문도 등대를 통해 내려다보이는 경치나 야트막한 높이의 불탄봉을 배경으로 군무를 펼치고 있는 억새풀, 절묘한 형상의 신선바위, 마당바위 등은 거문도의 진가를 대변해주는 절경이었다. 그리고 망망대해에 점처럼 박혀 저마다의 신비와 위용을 뽐내고 있는 백도의 아름다움 역시 가히 남해의 해금강으로 불릴만했다.





이번 거문도 여행은 구경도 구경이지만 삶의 가르침을 체득하는 기회가 됐다는 점에서 유익했다.

모든 사람은 각기 나름대로 특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의 발견이 그것이다.

이번만 해도 일행들로부터 평소 몰랐던 여러 끼들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꽤나 출중한 일가견이어서 솔직히 놀라웠다. 누구는 입담이 좋아 좌중을 즐겁게 했고 또 어떤 이는 조용해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노래를 잘했다. 심지어 등산 중 거의 달인 수준의 길 찾기 실력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남보다 잘 할 줄 아는 게 있다고 해서 함부로 잘난 척 할 일이 아닌 것 같다. 나만의 강점이라기보다 남들이 가지고 있는 강점과 엇비슷한 특기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상황을 명심해야겠다. 무엇보다 어느 누구를 만나든 특출한 장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대해야겠다는 동기를 부여받은 셈이다. 상대방이 어떤 강점을 가지고 있는 지 알아내거나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할 수 있는 안목이야말로 리더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지도자의 판단과 결단이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거문도에서 불탄봉 등반에 나섰는데 초행인데다 길이 익숙지 않아서 해가 기울기 시작했는데도 하산을 마치지 못한 상황이 되었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평소의 방식대로 골짜기를 따라가며 길 찾는 방법을 동원, 거의 1시간여 동안의 ‘정글 속 사투’ 끝에 산을 내려왔는데 일행 모두가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 않을 만큼 고생스러운 경험을 한 셈이다. 낮은 산이어서 스릴과 써스팬스를 즐길 수 있겠다는 속셈이 있기는 했으나

다른 동반자들에게 고통스러울 수 있었다는 자책감이 든다.

다음 날 문제의 등산코스를 자세히 관찰해보니 2,30분이면 (하산이)족히 해결될 평탄한 길이 있었다. 약간의 긴장감으로 즐거움을 더했던 등산이었지만, 실 생활이었다면 더 많은 사전 준비와 탐사가 필요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친 태평함도 봉변을 초래한다는 사실도 체험했다.

평소 배멀미를 하지 않던 터라 이번 여행의 필수 코스인 배타는 과정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여수항에서 거문도로 입항 할때는 태풍주의보가 발효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걱정보다 파도가 약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거문도에서 백도로 가는 뱃길에는 아무 근심거리가 없는 무방비 상태였었다. 그러나 그러한 무방비가 유례없는 배멀미로 초죽음 지경이 되게 할 줄은 미처 몰랐다. 평소 배멀미를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약을 먹거나 배 한가운데에 앉아있는 방식으로 ‘재난’에 대비했다. 그러나 배멀미 상식이 없던 나는 탁 트인 시야를 즐긴답시고 선두에 앉아 있었던 것이 객기아닌 객기가 되고 말았는데 (어쩐지 그 자리가 텅 비어있더라니) 멀미가 나서 죽는 줄 알았다. 그날따라 파도는 어찌 그리 심하던지. 백도를 갔다 오기는 했으나 경치는 즐깋 여유가 없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존중받을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과 지도자는 항상 판단에 신중해야 하고 판단의 결과가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거문도에서 돌아오는 내내 내 머리 속을 맴돌던 이 상념들을 여행이 내게 준 선물로 잘 간직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배멀미로 힘들긴 했지만 교훈도 챙기고 볼거리도 풍요로웠던 2박3일 여행길은 즐거웠다.


(2010.10.25)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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