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26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간장게장 vs 피자


간장 게장 VS 피자

모처럼 가족 외식을 결정했는데 출발부터 난관이었다.
메뉴 결정이 관건이 된 것이다.
간장게장을 드시고 싶다는 아버지 말씀에 따라 간장게장을 잘하는 단골 식당을 목적지로 정하려고 하자 아이들이 들고 일어났다. 간장 게장은 먹기 싫다며 피자를 먹자는 주장이었다.
가족 중 부모님과 나만 간장 게장을 선호할 뿐 모두들 피자 쪽을 원하는 분위기였다. 싫다는데 일방적으로 강요할 사항도 아니어서 절충에 나섰다.
그 결과 부모님은 간장게장, 아이들은 피자 쪽으로 메뉴를 이원화 했다. 부모님과 함께 간장게장 식당에 갔다가 아이들이 가 있는 피자집으로 이동해서 합류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부모님을 따로 모시려니 죄송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서운하기도 했다.
그래서 고심 끝에 모두들 부모님이 식사하시는 곳으로 가되, (식당 측에 양해를 구하고) 피자를 주문해서 함께 식사를 하자는 수정안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역시 상황에 적합한 제안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다. 손님이 붐비는 게장 집에서 피자를 먹는 모양새가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다 나머지 식구들이 간장게장이 아닌 다른 메뉴를 골라 같은 장소에서 식사를 하자는 새로운 안이 제시됐고 모두의 동의를 얻는 데 성공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해피앤딩이었다. 부모님과 아이들이 한 식탁에서 간장게장과 매운탕을 메뉴로 해서 외식 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식사를 하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가족들의 입맛 하나도 통일 시키지 못했다는 자괴감 보다는 부쩍 연로해지신 부모님과 이제 품을 떠나야 할 자식들이 마음에 걸렸다. 점점 기운을 잃어 가시는 부모님에 대한 안타까움과 천방지축 어디로 향할게 될지 모를 자식들의 안위에 대한 걱정이 노파심만은 아니었을 터였다.

그렇게 부모님과 자식들 가운데에 끼인 채 양 세대를 바라보니 내 인생의 지나간 시절과 다가오는 미래가 한꺼번에 보였다. 그리고 내가 처한 현실과 가장으로서 내가 맡은 역할의 중요성이 새삼 감지됐다. 더불어 家和萬事成의 가르침으로 가족 간의 소통을 큰 가치로 강조했던 선인들의 속뜻이 헤아려졌다.
그러면서도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어른 말씀이라면 무조건 복종을 미덕으로 알았던 우리 시대의 가치기준으로 생각한다면 엄청난 변화였다.

부모님과의 관계가 그랬듯 자식들과 나 역시 그만큼의 거리를 두고 서로 다른 생각으로 존재하고 있는 현실이 직시됐다. 비단 부모 자식 관계에서 뿐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개성에 따라 달리하는 생각들을 쉽게 드러내고 또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었다. 저마다의 가치관에 따른 선택권이 지극히 당연하게 존중되고 있었다.

외식 일정 하나만 해도 가족 전체를 배려하고 모두의 행복을 고려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모두를 만족시키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최선의 답이라고 생각했던 선택이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자식들은 자식들대로 결국은 절반 밖에 충족시키지 못한 미완의 결말이었다. 메뉴 하나 선택하는 과정도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데 나머지 사안들은 얼마나 어려운 절차를 감내해야 할까 싶기도 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가족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데 동의한다.
성공적인 가장이 되려면 가족 구성원의 마음을 읽으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에도 공감한다. 가족 단위의 소통 단절은 대번에 불신이 판을 치는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게 리더의 역할에 달려있다는 생각이다.
개인의 영향력이 극대화 되고 있는 시대적 상황에서 정치 지도자가 됐건 CEO가 됐건 교육자가 됐건 같은 맥락의 역할이 화두로 대두되고 있다. 결국 21세기 리더십의 주요 명제는 서로의 다름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무엇보다 리더의 자기희생적 실천의 선행 여부가 중요하다고 본다.
대통령이나 CEO가 자기 입지만 염두에 둔다면 그 결과는 뻔할 것이다.
누구도 그를 따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따른다고 해도 자발적 동기가 결여된 복종은 면종복배에 그칠 공산이 크다. 참여의식은 물론 감동도 없이 강요당하는 구성원들이 과연 무슨 일을 해낼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그 명제는 더 더욱 확실해진다고 할 것이다.

갈수록 가족 해체 위기에 대한 걱정이 넘친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이기에 가벼이 다룰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연말연시의 시간들이 가족 구성원 간의 반목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 활용되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그동안 서로에게 무엇이 부족했던 가도 반성하고 또 앞으로 무엇을 더 노력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준비하고 대비한다면 못할 바도 없다.
모든 걸 ‘나’ 위주로만 생각하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모두’가 함께 만족할 수 있는 공통 명제에 대해 고민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그렇게만 된다면 절반의 성공은 이미 거둔 셈이 된다.
그런 식으로 가족간 균열도 치유하고 한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는 근간을 다지는 시간을 만들어 보자 .


(2010. 12. 26)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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