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9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명인, 앙드레김

명인, 앙드레김


앙드레김, 세상을 떠난 지 수개월이 지난 그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디자이너로서의 명성도 명성이지만 타인을 위해 기꺼이 온정을 베풀던 생전 행적이 던지는 메시지의 울림이 그를 새삼 돌아보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엊그제 그를 추모하고자 열린 자선기금 마련 패션쇼가 성황리에 끝났다는 소식이다. 안성기, 이병헌, 김희선 등 내로라하는 톱스타들이 노 개런티로 참여해서 고인의 ‘따뜻한 마음’을 되새겼다는 후문이다.
이번 패션쇼의 수익금은 유니세프를 통해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한 기금으로 쓰일 예정이라는데 이 역시 생전에 유니세프 대사를 맡아 열악한 환경에 처한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돕던 앙드레김의 유지를 받들기 위한 취지란다.
디자이너로 40년 외길을 사는 동안 세계 평화를 염원했던 그는 가는 곳마다 ‘나눔’의 실천으로 소통과 화해의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불우한 이웃을 향한 뜨거운 관심이 끊이질 않았던 탓에 알게 모르게 기부로 그늘진 곳을 보듬던 그의 손길을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로 인해 나와 다른 것들에 대한 수용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지 되짚어 생각하게 된다.
심각한 사회적 분열을 야기하고 있는 종교간 갈등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임계점에 봉착한 느낌이다.
급기야 정부의 불교계 예산 대폭 삭감에 반발,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전국 사찰 출입금지한다는 조계종 선언이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지 않아도 남북 대치를 비롯, 지역갈등, 계층 갈등, 정치권 갈등 등 산적한 분열 양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종교간 반목까지 더해져 퇴로가 안 보일 정도로 혼미한 형국이다.
이제는 기독교, 불교, 이슬람 할 것 없이 종교가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받아들여야 할 때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것이 사회 전체가 수많은 다양성 속에서 편안하게 국민적 에너지를 통합할 수 있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이 사회에는 다양한 종류의 종교가 나름대로의 영역을 구축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가 생존이나 영역확장을 위해 투쟁을 선택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다른 종교 영역을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공격이나 교화의 대상으로 삼는 일 역시 이제는 멈춰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진리를 통해 영생을 지향한다는 종교 본연의 목적을 생각한다면 그 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문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특히 다문화 가정에 대한 포용력이 아쉽다.
다문화 가정이 우리의 현실이 된 지 오래건만 아직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순혈주의를 주장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우리에게 다문화 가정은 더 이상 이질적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그들이 개성과 장점을 살려 우리 속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수용해야 할 의무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구촌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수칙으로 삼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다른나라, 특히 우리보다 후진국가의 문화 형태를 배척하는 국수주의적 요소가 폭력의 형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항상 강조하는 바이지만 미국을 패권국으로 만든 일등공신은 모든 것을 하나로 모을 수 있었던 ‘멀팅 폿’ 정신이었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포용력이야말로 우리가 21세기 선진국민으로 거듭나기 위한 선결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공식석상에서 몇 번 스치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앙드레김을 잘 알지 못한다.
백색의 패션, ‘김봉남’이라는 본명, 특이한 억양과 화장한 얼굴 등의 정보가 그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전부라고 할 수 있다.(아, 앙드레김 티셔츠를 2벌 갖고 있다)
그러나 예사롭지 않은 그의 사후 평가들이 나 자신이 품고 있던 기존의 관념까지도 재점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와는 분명 다른 삶이지만 그것이 어떤 형태가 됐든 그의 삶에 존경받아야 할 이유와 또 다른 절대적 가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각자의 박제된이미지로만 판단할 게 아니라 앙드레김의 총체적인 삶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또 존경할 부분은 존경해야겠다는 일종의 궤도 수정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것인 일관되게 타인과의 소통을 자신의 삶의 목록에 첨부하고 나눔과 수용의 형식으로 실천했던 앙드레김의 인생철학에 대한 존경의 의미일 것이다.

명인의 생전 궤적이 제대로 된 삶의 흔적을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는 각성을 내게 줬다.
놀라운 영향력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수용과 나눔의 삶을 고찰해보는 이 밤이다.


(2010 . 12. 9)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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