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10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딜레마

딜레마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카르멘 갈라 콘서트를 관람했다.

역시나 전 세계 오페라 무대에 가장 많이 오른다는 명성답게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작품이었다. 투자한 시간이나 노력들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 만큼 좋은 시간이었다.

특히 잘 정제된 무대와 주연배우의 뛰어난 기량이 '투우사의 노래'를 비롯해서 '하바네라', '집시의 노래' 등 귀에 익은 주요 아리아와 중창의 선율을 돋보일 수 있도록 했다. 인간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주인공들의 갈등구조를 선율만으로도 생각의 고리를 이어주며 흥미를 부각시키는 데 손색이 없는 무대였다는 생각이다.

사랑하는 상대를 위해 모든 걸 포기할 수 있지만 그 반면 죽여서라도 사랑을 쟁취하려는 돈 호세의 욕망. 상대의 헌신적인 사랑에 정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유를 갈구하다가 속박을 거부하고 차라리 목숨을 포기하고 마는 카르멘의 선택.

카르멘과 돈 호세의 비극적인 운명은 매번 강렬함으로 나를 자극하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잔영으로 남아 머릿속을 지배하던 ‘마지막 장면’이 급기야 꿈으로까지 재현될 정도니 가히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갈수록 난장판이 되어가는 정치 현장 곳곳에 ‘카르멘’의 주인공들이 있다.

그들에게서 우리 인간의 원형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자기만 행복하면 그만이고 누구에게도 통제받고 싶지 않은 자유를 향한 본능과 원하는 바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용의가 있는 극단성이 카르멘 주인공들의 역할에 오버랩 되면서 머릿속이 혼란해진다.

무책임과 무절제가 판을 주도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영락없는 여주인공 카르멘이고 전략부재로 실익없이 우왕좌왕하는 민주당에게서는 돈 호세의 답답함이 읽혀진다. 안하무인으로 방종을 일삼는 재벌 2세와 그런 재벌 2세를 응징하겠다고 나선 국민에게서 또 다른 카르멘과 돈 호세를 보게 되는 것 자체가 비극이 아닐까 싶다.

분명한 건 인간의 모든 가치 기준이 상대적으로 가동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역할을 선악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단합과 소통으로 하나가 될 여지보다 분열과 반목에 익숙한 집단적 속성에 비추더라도 인간은 성선설보다는 성악설 쪽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인간을 폄하할 의도는 추호도 없다.

다만 이런 무질서와 혼란 속에서 그나마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정돈하려면 제대로 된 현실 인식으로 중심을 잡으려는 노력들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말하고 싶을 뿐이다.

무한대로 자유로워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과 목표 달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인간의 이기심이 상수로 존재하는 한 폭력과 강압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은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고질적 병폐로 자리답게 될 공산이 크다.

병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대처 방안이 더 없이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시스템 구축 차원의 고민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내가 자유로우면 된다는 무책임은 무정부 상태가 되기 쉽고, 원하는 걸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생각은 폭력 지상주의를 초래할 수 있다. 이 두 근본 원리를 잘 연구하면 100% 만족은 아니더라도 근사치에 근접할 수 있는 모범답안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 생각처럼 쉽지 않은 현실이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그렇더라도 공연은 좋았다.

눈이 내리고 음악은 흐르고 좋은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어서 유쾌한 시간이었다.


(2010. 12. 10)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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