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23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신뢰 이야기

신뢰 이야기



세계 자동차 시장의 지존이었던 토요타 자동차 몰락의 단초는 ‘품질 결함’이었다. 대량 리콜 사태로 파생된 불신이 ‘1등 품질’을 기반으로 한 토요타의 명성을 순식간에 ‘사상누각’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최고 품질’ 약속을 저버린 토요타의 배신을 향해 내려진 소비자의 준엄한 심판인 셈인데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약속 불이행으로 인한 파행은 기업의 경우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도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건 약속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일은 정말로 중요하다. 복잡한 생활 속에서 약속을 온전하게 이행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면책이 용납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엊저녁 친구들과의 ‘해프닝’은 약속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꼭 만나야 할 용건으로 저녁 8시 죽마고우 둘과의 약속이 있었다. 다들 바쁜 친구들이라 겨우 조율해서 만든 일정이었다. 약속 장소는 군학협력 관계로 25사단장과의 사전 약속이 있었던 나 때문에 서울과 양주 중간 지점으로 정해졌다.

결론을 말하자면 오래간만에 친구들을 만나는 기대감을 줬던 이 약속은 씁쓸한 여운만 남기고 깨져 버렸다. 자동차를 이용한 나와 A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은 약속 장소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B에게 불편한 위치였던 게 화근이 된 것이다.

먼저 도착한 나와 A가 한 시간이 넘도록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은 B에게 전화를 걸자 뜻밖에도 B는 화를 내고 있었다. 약속 장소를 찾다가(A가 약속 장소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서) 헤매던 끝에 타고 오던 택시를 돌려 집으로 돌아가며 화가 나 있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으면서도 모처럼의 약속을 깨버리고 가버린 B의 처사가 안타까웠다. 만나서 분풀이(?)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함께 만났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혹자는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약속의 중요성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강박관념일수도 있다고 항변하기도 한다. 주위에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약속이 어그러지는 경우를 수없이 봐왔기 때문에 이해가 가는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가 약속장소에 왔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오랜 세월 나눈 우정의 이름값만으로도 당연히 친구들과의 약속을 존중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약속을 지키려는 피나는 노력이 더 높은 가치로 인정받고 평가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 측면에서 친구사이의 참된 신뢰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일화 한 토막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 준다.

옛날 그리스에 절친한 두 친구가 있었는데 그 중 한 친구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수가 됐다. 그런데 사형 직전, 모친이 위독하다는 연락이 전해졌다. 마지막으로 모친을 보고 싶다는 사형수를 위해 그의 친구가 볼모를 자청했다. 사형수가 시간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친구가 대신 사형당하는 조건으로 사형수는 4일간의 일정을 얻게 됐다. 그런데 사흘이면 다녀 올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나흘째 되는 날이 저물도록 사형수는 돌아오지 않아 양속대로 친구가 사형을 당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마침내 사형집행 시간이 되어 왕이 친구에게 "자 보아라, 네 친구는 너를 배신하고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너는 네 친구를 믿고 있느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친구는 "친구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피치못할 사정이 있어 늦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드디어 사형을 집행하기 위해 교수대에 친구를 매달기 시작할 때 사형수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면서 "이제 내가 돌아왔으니 내 친구를 풀어주십시오"라고 외쳤다. 왕이 늦은 이유를 물으니 돌아올 때 큰비로 강물이 불어나서 도저히 강을 건널 수 없어 늦었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이에 감동한 왕은 두 사람 모두를 풀어줬다.

두 친구의 참된 우정과 서로를 신뢰하는 모습이 왕의 마음을 움직인 결과였다.

약속을 귀하게 여기고 지키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희망이 될 수 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스스로의 가치를 올려주는 결과로 이어지는 이유다.

신뢰가 없어진 세상이 된다면 당장에 직면하게 될 문제점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막말과 고성이 동원된 한나라당의 세종시 내전이 본격적으로 치닫는 정황이다. (이 와중에 정국 상황을 개인을 위한 기회로 삼고자 준동(?)하는 부류의 꼼수가 목격되기도 하니 한편으로 놀랍기도 하다)

세종시에 관한 민심의 향배는 이미 여론을 통해 결정돼 있는 상태다. 물량공세 등의 홍보전으로 부축일 수 있는 한계점을 넘어선 듯하다. 더군다나 신뢰는 유불리의 기준으로 처리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토요타 사태에서 이미 경험한 바 있다.

문제는 세종시 처리과정에서 무엇보다 확실하게 반영돼야 할 가치 철학이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이 대목이 외면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 대명천지에 그저 눈 감아 버린다고 진실이 사라질 수 있겠는가.



그리고 PS,

오늘 이 이야기를 전하는 건 헤어질 때 A가 내게 블로그 얘기를 하며 오늘 주제로 친구와의 약속 해프닝을 쓰라는 주문을 했고 나는 별 생각없이 쓰겠다고 한 ‘약속’ 때문이었다.

친구와 약속을 해서 쓰기는 했지만 쓰는 동안 민망함에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음을 첨언하는 바이다.


(2010. 2.23)

...홍문종 생각



홍문종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mjhong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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