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30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당선자 대회

당선자 대회


19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모여 '국민행복 실천'을 다짐하는 당 행사에 다녀왔다.
8년 만에 진입한 제도권 정치 무대에 대한 울렁증이었을까? 행사장소인 국회 헌정기념관에 들어서는데 순간 기분이 묘했다. 들뜬 표정이 역력한 초선의원들과는 차원이 다른 불편한 낯가림이 나를 엄습했다. 드디어 대학 문턱을 넘게 된 삼수생의 심정이 이럴까 싶게 새로우면서도 전혀 새롭지 않은, 익숙하지만 서먹함이 공존하는 독특하면서 낯선 환경에 툭 떨궈진 느낌이었다.
누군가 붙여준 '5선급 3선 의원' 덕담조차 뒷방으로 물러앉은 듯한 고립감을 가중시키는 듯 했다.
15대 국회 당시 30대에 불과하던 내 나이가 어느 새 50 중반을 훌쩍 넘긴 현실과 무관하지 않지 싶다. 그 때 함께 했던 동료들은 손으로 꼽을 정도로 밖에 안남았는데 그나마 누구는 대선주자가 되었고 대부분 '덩치값'이라도 하는지 행사장에 얼굴도 내밀지 않은 현실이 내게 던져준 일종의 문화충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행사가 진행되는 내내 화두라도 푸는 것처럼 포지션 설정에 골몰해 있는 내 모습은 전학이 잦던 학창시절, 매 전학지마다 낯선 교실과 급우들 틈새에서 생존을 모색하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조금 더 나은 교육환경을 위한 부모님의 교육열 덕택에 나는 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이방인의 삶을 감수해야 했다. 수줍고 소극적인 첫인상으로 기존의 공동체에 접근하는 방식은 그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내 나름의 생존 전략이었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지난 삶을 돌아보면 그런 식의 허허실실로 방심하던 '현지인'들을 접수하며 '무림의 고수'를 자처했다. 학창시절 반장선거, 회장선거를 평정할 때도 그랬고 스탠포드 대학에서의 학생회장 당선이나 국회의원 타이틀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던 것 같다.
오늘 역시 적진(?)을 탐색하던 그 때처럼, 스스로의 위치 찾기를 시작한 셈이다. (일단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겠다는 결론으로 화두를 정리했다.)

자기 소개시간.
시간 관계 상 20초를 넘기지 말아달라는 사회자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말 잘하는 직업군 답게 다들 시간을 넘겼다. 무대 위치를 둘러싼 보이지 않은 신경전도 감지되는 분위기였다.
3선의 여유로움으로 무대의 중간자리를 자처한 나는 정확히 20초 안에 자기소개를 마쳤다.
'의정부 출신이다, 대선에 최선을 다하겠다, 15대 국회에 처음 들어왔는데 그 때의 얼굴이 안보인다'는 세 문장이 내용의 전부였지만 나로선 하고자 하는 말을 다 전했다.
비법은 나만의 암호 동원이었다.
의정부 출신이라는 건 소외되고 낙후된 지역에서 왔는데 의정부 위상을 바꾸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고 대선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건 대선 자체가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경고의 의미였으며 마지막으로 15대 국회를 운운했던 건 우여곡절 많은 먼길을 돌아오느라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의 경험이 당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담은 인사를 남긴 것이다.

제법 길게 이어지는 시간 탓인지 찜통 더위와 긴장감 속에서도 당선자들이 저마다의 표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개인적인 면모를 파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때를 놓치지 않고 특유의 관찰력을 동원해 19대 국회에서 함께 일할 동료들의 면면을 살폈다.
A는 들락거리고 B는 친화력을 발휘했다. C는 전화 통화가 잦았고 D는 어쩐지 음울한 표정으로 숨어있었다. 정치행로에서 대척점에 서 있던 이도, 함께 레지스탕스를 일구던 요원(?)도 고른 시각으로 관찰했다. 이렇게 수집된 동료들의 첫인상은 이전 15대 16대 국회에서 만난 동료의 그것처럼 내 비망록에 차분히 기록될 터인데 가장 확실한 오늘의 수확이었다.

'수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어즈버 태평년월이 꿈이련가 하노라'
당선자 대회를 끝내고 새로운 다짐으로 마음을 추스리며 여의도를 떠나오는데 갑자기 떠오르는 시조 한수가 약간의 설레임과 국가와 민족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으로 나를 각성시켰다. 정치 밖에서 지냈던 지난 8년이 결코 헛된 날들로 만들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비장한 각오도 마음에 담게 했다.
정치 낭인으로 보낸 시간들이 현역 정치인이었으면 도저히 볼 수 없었을 안목을 내게 줬다. 정치적 역량을 숙성시켜준 참으로 귀한 세월이었다.
제대로 정화됐다는 확신이 나로 하여금 자신감에 차 있게 하는 건 열망의 순기능이다.
그렇게 뜨거운 열정으로 챙겨둔 법안들을 하나씩 손질해서 대한민국의 빛과 소금이 되도록 하겠다.
더불어 훗날 돌이켜 봤을 때 19대 국회에서의 삶이 내 생에서 가장 보람있고 빛나는 시기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내일 새벽 예약된 생방송 TV 대담프로 출연약속이 잠자리를 재촉하는 바람에 아쉬움 속에서 생각을 접으며 4월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2012. 4. 30)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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