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10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가깝고도 먼

가깝고도 먼


가깝고도 멀다는 이웃나라 일본.

일본에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가풍 탓인지 개인적으로 일본을 친밀하게 느껴본 적은 없다. 무심히 외면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럴 수 없게끔 늘 신경을 자극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일본 동경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있으면서도 항상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럼에도 일본이 강국이라는 현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일본이 우리를 압도하는 건 사실이다. 무엇보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밴 일본국민의 매너가 놀랍다. 선천적 기질처럼 여겨질 정도로 일상화 돼 있는 친절한 국민성에 일본의 노련한 저력이 다 들어있는 것 같다. 실제로 일본인의 사소한 일상에서 ‘선진국민의 여유로운’ 면모를 찾아내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번 일본 방문길에서도 그들의 친절한 국민성이 발휘하는 위력을 직접 체험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일본을 바라보는 심정이 참으로 복잡다단해진다.

그들을 인정하면서도 반드시 뛰어넘고 싶은 오기가 작동한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오사카에 가면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보고 오라는 조언에 따라 하루 일정을 떼어 그곳에 갔다. 할리우드 영화를 모티브로 꾸며진 무비테마파크였는데 초대작 영화를 생생하게 재현한 놀이기구며, 볼거리,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공간이었다.

오사카 특유의 살인적 더위와 6100엔이라는 고액의 입장료, 그리고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넘치는 인파가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세계적 명성을 대변하는 듯 했다.

개인적으로는 각 영화에 사용됐던 세트장에 눈길이 갔는데 그것도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30분까지 줄을 서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웬만한 인내심 없이는 구경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점심 먹는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싼 가격대와 길게 늘어선 줄은 여전했다.

한참을 줄 서서 배급받은(?) 닭 튀김 한 조각과 음료를 식판에 받쳐 들고 구내식당 같은 분위기 속에서 자리를 찾고 있는데 지나던 사람이 그만 내 식판을 치고 말았다. 그 바람에 음료가 쏟아져 나의 밥상을 엉망으로 만들고 말았다. 나를 친 중년의 이국 여인은 연신 ‘미안하다’고 했지만 이미 쏟아진 밥상이었다.

순간적으로 굉장히 난감해졌다. 저 긴 줄을 또 기다려 새 밥상을 차려야 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먹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식당 종업원이 달려와 연신 사과를 했다. 그리고는 이내 똑같은 메뉴가 담긴 식판을 가져다주고는 자기 일로 돌아갔다.

감동이었다. 그 짧은 순간의 감동이 줄을 서느라 곤두섰던 신경줄을 스르르 풀어냈다.

세계 각지를 다니며 이보다 더 복잡한 상황에서 식사를 하는 등 황당한 경우가 많았지만 일본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의 이번 경험은 특별했다. 감동을 주는 것은 물론 일본이 강국이라는 사실을 절감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택시를 이용하면서도 일본의 선진국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택시를 타고 목적지를 말하자 택시기사의 인상적인 안내 말이 이어졌다.

‘목적지까지 가는 데 두 가지 길이 있다. 길 하나는 10분 빠른데 고속도로를 타야하기 때문에 비용이 1000엔 정도 더 나온다. 나머지 구 길은 시간이 좀 걸리는 대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바가지 쓸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끼게 하는 ‘배려’였다. 가끔씩 승객과 택시기사 사이의 요금 실랑이가 목격되는 우리의 현실과 비교되는 경험이었다.

일본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간단한 영어로 택시기사들과의 소통에 무리가 없었다. 깨끗한 실내와 절도있는 매너, 휴대용 휴지까지 나눠주는 친절함 등은 결코 간단치 않은 선진국 일본의 풍모였다.

오사카 남방은 저렴한 가격대의 잡화점이 수천 개 쯤 늘어서 있는 거리다. 우리의 남대문 시장 같은 분위기라고 할까. 그곳에서 조그만 필기도구 하나를 구매하면서도 예사롭지 않은 상인들의 친절을 경험할 수 있었다.

사근사근한 종업원은 내가 구입한 상품을 정성스럽게 포장해서 케이스에 넣더니 다시 비닐로 겹겹이 재포장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비가 오니까 젖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개인적으로 경험한 일본이 강국이라고 자인할 수 밖에 없는 여러 정황들이다.

솔직히 대한민국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선진국의 면모이기도 하고.



평소 친분을 나누고 있는 전직 SKY 대학 총장은 한국 식자층들이 중국의 당태종과 일본을 지나치게 얕잡아 보는 편견이 문제라고 했다. 특히 일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절대 간단한 나라가 아닌데도 이를 간과하고 있다는 걱정이었다. 두려움의 대상까지는 아니겠지만 일본은 절대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잊어서는 안된다는 자신의 지론을 펼쳤다.

나 역시 두 번에 걸친 이번 여름 출장으로 일본이 간단치 않은 나라임을 절감하고 있는 중이다. 전직 일본 수상이 음주운전 때문에 지방의원직을 사퇴한 아들 일로 대국민 사과를 하는 일본의 모습에서 강력한 국가브랜드의 가치가 읽혀진다. 기본이 확실하게 지켜지는 사회적 합의가 일본을 지탱하는 근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일본을 제대로 알고 배워서 일본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연구해 보자.

일본을 품는 그것이 우리가 선진국으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010. 8. 11)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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