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30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無信不立

無信不立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했던 40대 총리 내정자가 청문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끝내 낙마했다.

총리가 되기엔 지나치게 흠집 많은 과거가 문제였다. 무엇보다 거짓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했던 부정직성이 치명타로 작용했다.

탐욕에 대한 경계를 강조한 마이클 샌덜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감명 깊게 읽었다고 밝힐 때만 해도총리내정자는 기개와 자신감 넘치는 유망주였다. 그러나 정작 그는 자신의 삶을 정의롭게 관리하지는 못했다. 아무도 그의 장밋빛 미래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스스로의 삶에 발목을 붙잡힐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터다.

그가 사퇴의 변으로 남긴 ‘無信不立’이 새삼스러운 무게로 이목을 끈다.

조금이라도 더 일찍 깨달았다면 그의 입신양명이 순조로웠을까?



며칠간 떠들썩했던 것과는 달리 또 다른 총리 후보와 장관감의 자질을 검증해야 하는 후속 청문회는 형식적으로 끝나게 될 공산이 커 보인다. 이미 전쟁이 끝나 공격하는 쪽이나 방어하는 쪽 모두 후속 총리 인선에 그다지 관심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일정치의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차제에 본래의 취지가 퇴색된 청문회제도에 대한 보완 조치는 불가피하다는 생각이다. 청문회는 원래 고위공직자 후보의 국정철학이나 각 분야별 추진사업의 소신 등을 검증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그런데 작금의 청문회는 모든 국민들에게 제대로 살아온 자신의 행적을 담보로 앞으로 맡은 직책을 어떤 식으로 운영해보겠다는 경쟁력을 내보이는 본래의 목적은 아랑곳없이 복마전 양상을 띤 인간도살장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 결과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 통과하지 못한 대로 통과한 사람에게도 상처만 남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정책 질의는 간 곳 없고 후보자 비리에 관련된 의혹제기나 이를 추궁하는 목소리, 그리고 거짓말 답변이 난무하는 19금 화면이 된 지 오래라는 소리다.



그래도 청문회 대상이 될 정도면 대부분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인재그룹이다. 걔 중에는 미래를 향해 꿈을 키우는 청소년들의 롤모델로 자리잡은 인사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청문회 검증대를 거치면서 당사자는 물론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에게까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있는 것이다.

명색이 고위 공직에 앉겠다고 나선 사람들의 면면이다. 그런데도 절제하지 못하고 ‘범죄자’ 수준의 탈불법을 불사하면서까지 탐욕을 부리는 모습이 안방에 중계되고 있는 판이니 이를 지켜보는 국민 심정은 오죽할까 싶다.

자칫 그들의 오염된 행적이 국가 전체의 도덕 불감증으로 번지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청문회 과정을 변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낱 노래자랑이나 퀴즈대결도 여러 번의 예선 절차를 거쳐 본심에 오른 사람들만 공중파를 탄다. 하물며 국가 대사라고 할 수 있는 고위 공직자의 자질을 검증하는 자리다.

고위 공직후보가 청문회 석상에 얼굴을 내밀기 전 도덕성을 비롯한 개인적 자질 검증을 위한 예선전을 별도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도덕적 하자가 있는 청문 후보는 막을 수 있는 예비 청문회 개념의 절차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인사권자의 고유권한을 침해하자는 의도는 없다. 다만 인재등용의 과오를 최소화 시킬 수 있는 합리적인 사전 절차를 거치자는 소리다. 국민에게 선보이는 후보만큼은 도덕성 문제로 시비 대상이 되는 일 자체는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고교 시절의 주차위반 경력까지도 문제를 삼는 미국의 엄격한 공직 인선 기준은 진실로 부러운 사회적 합의다. 그토록 까다로운 사전 절차를 거치는 만큼 청문회 석상에서 낯 뜨거운 설전이 오가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테니 말이다. 우선은 후보 당사자부터 결격사유를 가지고 있다면 아예 무모한 욕심을 내지 않고 알아서 빠지는 점도 우리와 다르다. 아무리 뒤가 구려도 일단은 잡아떼고 거짓말로 덮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버티기 작전으로 일관하는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나도 대비된다.

그렇게 해서 자리에 오른 들 제대로 된 명예나 권위를 갖게 될 리 만무다. 그런데도 움켜 쥔 주먹을 풀 생각을 하지 않는 공직후보들의 모습이 그렇게 추하고 몰염치하게 보일 수 없다. 최소한 국민이 느낄 자괴감만이라도 안중에 있었다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청문회를 당리당략을 위한 정략적 도구로 활용하려는 생각은 위험하다.

온갖 설화에도 불구하고 경찰청장에 ‘당첨’된 조현오 후보를 놓고 여야가 주고받는 속 들여다보이는 설전에서도 그 기류가 감지된다.

후보는 명확하게 차명계좌 여부를 밝히라는 성화에도 불구하고 청문회 내내 알쏭달쏭한 태도를 견지했다. 여당 홍준표 최고위원은 ‘노전대통령의 차명계좌에 관한 조청장 발언이 사실이기 때문에 청문회를 통과했다’고 말을 얹었다. 야당 역시 특검을 요구하면서도 그다지 대차게 밀어붙이는 기세가 아니다. 손학규 전대표가 '부관참시'라고 목청을 높이고 유시민 전의원은 뜸들이는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을 향해 '철없다'고 일갈하며 선동정치를 벌이고 있지만 공허함만 키울 뿐이다.

갈수록 국민 의혹만 부풀리는 대응은 전직 대통령이나 현직 대통령 모두에게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적당히 눙치며 몰아갈 사안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전직 대통령의 역사적 평가와 직결되는 문제이고 야당도 원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검을 비롯한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제대로 규명돼야 할 일이다. 일이 불거져 나온 이상 그냥 덮고 지나 갈 수 없는 일임에 틀림이 없다.그런데도 표류하고 있다. 이상한 일이다.



이대로 가다간 신뢰를 잃은 의회정치가 표류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리당략의 늪에서 실종되고 있는 의회정치의 암담한 현실이 보인다.



무신불립의 경고는 국회의원들에게도 뼈아픈 얘기임을 각성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누구를 위한 청문회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품기 시작한 변화를 주지할 필요가 있다. 청문위원으로 나온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보며 오직 당리당략과 본인들의 의원직 유지에만 관심이 몰려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정황을 놓치지 말라는 소리다.



좀 더 품격있는 질의와 답변이 오가는 이상적인 공직자 인사청문회를 지켜보고 싶은 국민의 열망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발등의 불이되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다.


(2010. 8. 31)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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