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1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문제는 문제다

문제는 문제다


주객이 전도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차명계좌에 연루시킨 발언으로 경찰청장 인사청문회에서 탈락될 위기에 처해있던 조현오 청장은 무사히 취임식을 마친 반면 정치권은 격한 표현을 주고받으며 설전 중이다.

‘차명계좌’ 논란이 당사자를 제쳐두고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튀어 발화하고 있는 것이다.

진원지는 ‘조청장 임명이 차명계좌 존부에 대한 대통령의 자신감’이라고 자극한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이라고 할 수 있다. 발끈한 친노 인사들이 유시민 전 장관의 ‘철없다’는 공박을 필두로 연일 홍의원에게 맹비난을 쏟아내며 활극을 벌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친노 인사는 아니지만 손학규 전 지사도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부관참시까지 하는 패륜적인 언행을 서슴지 않고 있다’고 현직 대통령을 비난하며 차명계좌 정국에 가세했다. 이번에는 한나라당 측에서 손학규 전 지사를 향해 역공을 취하는 모양새다.




손학규. 홍준표, 유시민.

차명계좌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이들 세 사람은 공교롭게도 이런 저런 동기로 개인적 인연이 깊다고 생각하는 인물들이다. (손학규, 홍준표는 15대 국회에서, 유시민은 16대 국회에서 만났다.) 그래서였는지 갑자기 떠오른 그들에 대한 단상을 오늘의 블로그 소재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15대 국회에 들어간 이후 당시 299명의 국회의원 전체 명단을 놓고 한 명 한 명 짚어가며 그들에 대한 나름의 비밀 비망록을 작성한 적이 있다. 이 '금서'는 지금도 가끔 들춰보는 은밀한 개인적 영역인데 이들 세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유난히 길게 코멘트 돼 있다. (그에 앞서 개인적인 내 약점을 고백하자면 호불호로 사람을 가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사람을 너무 좋아한다)



손학규 전지사와는 15대 국회의원 시절부터 특별히 친하게 지낸 사이다. 이른 바 기층민에 대한 실질적인 경험이 풍부했던 그의 삶은 나의 그것과 많이 달랐지만 말이다. 특히 수배자가 되어 도피하던 시절의 얘기를 들을 때면 확실히 나와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수배자 시절 약사였던 부인과 몰래 데이트하던 그의 모험담을 가슴 졸이며 들었던 기억도 난다.

해외 유학파, 교직 경력, 기독교 등 동질감을 주는 배경들이 그에 대한 친밀의 강도를 높여줬던 것 같다. 국회를 떠난 뒤로도 경기도당 위원장 시절, 경기도지사였던 그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았는데 인간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큰 흠을 발견할 수 없었다.

남의 말을 안 듣는다거나 인간사이의 끈끈한 의리가 부족하다는 점을 들어 이기주의, 독단주의, 엘리트주의 등등 그에 대한 비난이 없는 건 아니지만 확신을 가질만한 직접적인 정황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에 대해 특별히 나쁜 기억을 담고 있지 않다. 게다가 (내가 평소 존경하는) 연세대 K교수 같은 젊은 교수 그룹이 그를 희망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지켜본 터이기에 그가 좋은 정치리더라는 기존의 생각에 변함이 없다.



홍준표 선배는 15대 국회에 함께 입성했다. 또 홍씨 종친회나 대한민국 대표적 선배문화를 자랑하는 K대 학연 등으로도 여느 정치인보다 깊은 연을 맺고 있었던 사이다.

홍선배는 사석이라면 발언을 독점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지만 통찰력 있는 안목과 식견으로 좌중을 좌지우지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나이 중 사나이다. 경상도 특유의 시원함으로 그를 좋아하는 후배들이 많았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언제나 당당하게 자기를 잃지 않는 그의 모습이 좋았다. 불굴의 의지라고 할까, 적은 체구의 그가, 하고 싶은 말들을 팍팍 쏟아내는 모습은 (나하고 다르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인 건 물론이고 어느 경우 카타르시스까지 느끼게 해줬다. 초선의원 시절, 이회창 총재에게도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잘했다. 내 금서에도 그런 그의 용기를 높이 평가돼 있다.



유시민은 국회에서 만나기 전, 책으로 만났던 사람이다.

그가 쓴 책을 읽으면서 삶의 대한 고뇌를 많이 했다는 느낌과 앞으로 사상가나 저술가로서 가능성을 보이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 그를 보궐선거로 들어간 16대 국회에서 동료로 만났다. 본회의장에서 같이 의원선서를 하는데 양복을 입지 않은(흰 면바지 차림이었다) 그 때문에 논란이 일어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는 어떤 경우 얄미워 보일만큼 말을 잘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의 정치적 스승인 故 노무현 대통령보다 더 논리적인 언변, 이른 바 휘발성 있는 연설기량이 돋보이는 정치인이다.



국회는 광의의 정치판 일부분인 만큼 설왕설래로 부산한 분위기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아무 말없이 침묵하는 것 보다 좀 심하더라도 치고 박고 싸우는 것이 더 낫다는 얘기다. 더 좋은 정책 대안이나 사회적 정의를 판단하는 기능이 있는 만큼 각자의 시각을 통해서 서로를 검증할 기회를 갖는 것이 생산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 며칠 ‘차명계좌’를 공통분모로 한 싸움에서 오고가는 말들은 이해는 가지만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체통을 잃고 싸움에만 매몰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가 될지 모르지만 본능에 충실한 경기 룰로 진행되는 격투기를 보는 것 같다.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는 있지만 잘 정돈된 단아함은 포기해야 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그러나 골프나 테니스처럼 신사적인 규칙을 적용해 진행한다면 격투기의 동물적 분위기는 조금은 순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정치공세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감정이 격해졌어도 용어 선택에는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흥분했다고 본능에 지배받는 원초적 모습을 드러내는 건 본인은 물론 지켜보는 국민의 격도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하물며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핵심 정치의 위치에 있는 이들이다.

보다 성숙하고 정제된 용어 선택으로 대한민국의 격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려야 하는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분들의 막말 공방은 그래서 더 불편하게 만든다.



‘철없다’나 ‘패륜’ ‘부관참시’ 같은 ‘막말’보다 더 격조있는 용어를 선택할 수는 없었을까?

해외 유학파 교수 출신인 손학규 전지사, 재치와 위트가 넘치는 홍준표 최고위원, 그렇게 글 잘 쓰고 말 잘하는 유시민의원, 이들의 면면을 보면 능력이 없어서 못하는 건 아닐 진데 아쉽다.

정치판 운명은 결국 정치판을 지켜보고 있는 국민 판단에 의해 결정되기 마련이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방심하지 말고 오로지 두려움으로 서슬 퍼런 민의를 섬겨야 하는 이유다.

“아직도 정치판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전철에서 우연히 듣게 된 한 시민의 육성을 그대로 전해주고 싶다.

이 말을 저승사자의 그것처럼 무겁게 받아들이는 정치인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문제는 문제다.


(2010. 9. 1 )

....홍문종 생각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