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25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 길을 묻다

길을 묻다




우연히 오래된 서가에서 ‘쇼펜하우어’의 얼굴을 만났다.


고집스런 표정을 표지로 한 그의 책이 유난히 반갑게 눈에 들어온 건 아마도 고등학교 은사님 때문일 것이다.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인간에게 있어 진정한 자유 경지는 죽음 밖에 없다는 역설로 독일의 수많은 젊은이들을 자살에 이르게 한 염세주의 철학의 대가로 알려진 쇼펜하우어를 전하고자 열정을 다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이들의 삶을 비관에 빠뜨려놓고 정작 자신은 73세까지 천수를 누린 독설가는 좀처럼 우리들과 친근해지지 않았다. 그저 낯설고 어렵기만 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은 대학에 가서도 여전했다.
몇 번을 반복해서 정독해야 이해될 정도로 난해한 상황은 여전했지만 그동안 덧입혀진 세월 덕인지 쇼펜하우어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의 진의를 이제는 조금 더 알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



스스로를 세상에서 특별한 존재라고 여겼던 쇼펜하우어는 철저하게 고독한 생을 살았다. 철저하게 유리된 삶을 고집했다. 심지어 자신의 묘비명에 조차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자신 만의 특별한 삶의 방식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기를 원하거나 강요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어리석은 일로 치부하고 금기시했다. 타인의 인정을 끌어내기 위해 상대방을 먼저 인정해주는 식의 처세를 경원시하고 못견뎌했다. 스스로가 위대한 역량을 갖췄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것은 그가 평범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지만 비범하고 잘난 사람이 평범한 척 하는 것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라고 성토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그는 세상으로부터 조금씩 조금씩 고립되어갔던 것 같다.




한가위 연휴동안 체중이 불었다.


절제되지 않은 식탐이 원인이었다.

어느 정도 배부른 상태에서 송편을 집어들면서 이제 이를 끝으로 더 이상 음식에 욕심을 내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도 식탐을 자극하는 다양한 먹거리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젓가락질을 자제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동안 기가 막히게 음식조절을 잘해왔다고 자부하던 터였기에 입맛을 끄는 명절 음식 앞에 힘없이 무너져내린 상황이 무참했다.

그 순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라고 했던 옛 성현의 충고와 쇼펜하우어의 지적이 오버랩됐다. 그리고 인간의 삶은 욕구에 의해 지배될 수 밖에 없고 변화에 대한 끝없는 갈망 때문에 결코 충족될 수 없다는 쇼펜하우어의 지적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독과 변화를 향한 갈망 사이에서 갈등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본질에 냉소를 보냈던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변화에 도달하면 또 다시 새로운 갈망을 향해 갈증을 느끼게 돼 있는 인간의 한계를 일찌감치 간파한 그의 외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변화는 새로운 욕구를 합리화시키에 좋은 변명거리에 불과할 뿐인 것을.
한가위의 미덕을 깨닫는 과정에서 쇼펜하우어를 다시 보게 해 준 셈이다.




지금 주위를 둘러싸고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탐욕의 사닥다리가 불안하다.

수없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욕망의 수레를 멈춰지지 않는다.


자신의 욕망을 통제할 수 없어 불행을 자초하는 인간의 모습에서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부나방이 보인다.


그럼에도 묻게 된다.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하고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데 과연 그 끝은 어디일까?


그리고 내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가을의 길목에서 길을 묻고 있다.


(2010.9.25)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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