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6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장관 딸 이야기

장관 딸 이야기



하루라도 바람 잘 날이 없는 대한민국이다.

청문회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장관 딸 특혜'가 정국을 흔들어대고 있다.

외교부가 통상전문가 특채 과정에서 장관 딸 합격을 위해 ‘맞춤형' 채용 일정을 진행한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다. 참으로 몰염치한 짓이 아닐 수 없다.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진행된 ‘그들만의 리그’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얼굴을 뜨겁게 한다.

실제로 행안부 감사 결과 장관 딸 경력에 맞춰 응시자격을 낮추거나 기한을 연기하는 것도 모자라 외교부 인사담당자 3명이 시험위원으로 불법 참여해 점수를 몰아주는 식으로 장관 딸 합격을 위해 최선(?)을 다한 행각이 밝혀졌다.

현대판 음서제도에 대한 비판으로 정국이 들끓고 있다. 충분히 그럴 만하다.



과도한 자식 사랑이 불러온 후유증으로 장관 아버지는 옷을 벗었지만 사건의 파장이 그 정도에서 수습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러기에는 국민 공분과 허탈감이 너무 크다.

왜 아니겠는가. 그동안 암암리에 자기들끼리 묵인하며 특혜를 누려왔던 현장을 목격했는데 오죽할까 싶다. 나 역시도 생각보다 훨씬 추하게 얽혀있는 그들의 두터운 도덕 불감증 앞에서 부끄러움에 숨이 막히는 기분이다.

국민 전체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특정 인사의 특혜가 용납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그런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용인되는 사회라면 국제사회에서 비난받고 있는 후진 독재국의 권력세습 행태와 다를 바 없다.



우리의 과거제도나 고시제도가 그나마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는 상징처럼 돼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시험으로 인재를 등용하는 선진성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다. 그나마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는 기회이긴 했지만 실상 거기에도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알성시니 춘당대시니 해서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마다 시행하는 임시 과거제도가 인기가 높았지만 공정성 측면에서는 근본적인 문제가 많았다. 무엇보다 상피제가 적용되지 않아 사관의 자제들에게 응시기회가 열려있었던 점도 그렇고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 사정을 감안하면 중앙에 위치한 고위 자제들에게만 기회가 열려있었다고 할 수 있다.

고시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고시제도는 ‘개천의 용’들에게 있어 신분상승의 유용한 ‘등용문’ 구실을 했던 게 사실이다. 이른 바 고시나 행시, 외시 등의 고시제도가 다양한 계층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는 통로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수록 개천의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할 기회가 줄어들고 있는 형국이다.

어느 시점부터 고시제도가 우리 사회에서 신분상승의 기회를 충족시켜주는 ‘희망의 창구’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여전히 수많은 고시 낭인들이 기회의 줄을 잡기 위해 표류하는 현상은 줄어들지 않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대표적인 문제점은 기회균등이 이뤄지지 않는 현실적 한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무엇보다 몇 몇 대학이 고시 합격을 독과점하고 있는 현상이 심각하다. 나머지 대학들은 법대의 존재성 자체에 의문이 들 정도로 미미한 성과를 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서울에 있는 유수 대학이 점점 특목고나 강남 8학군, 부와 권력을 배경으로 한 집안 출신들이 차지하는 현실 하나만으로도 대번에 설명이 되는 정황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존의 고시제도를 고수하자는 주장은 타당성이 떨어진다.

바야흐로 21세기 대한민국의 명운을 끌고 갈 인재를 구하는데 과거의 선발 기준을 고집하는 건 명분도 없고 불합리하다.

고시제도가 자칫 인재발굴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가로막는 장애요소로 전락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적재적소에 맞는 트레이닝을 거친 인재들의 다양한 캐릭터와 창의성, 독창성 등이 발군의 실력을 발휘할 기회 자체를 차단하는 ‘옥상옥’이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물론 외교부장관 딸 건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터다. 그러나 이를 빌미로 당초 정부가 정한 인재선발 방향이 휘둘린다면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특혜가 당사자에게 무조건 좋은 환경을 보장하는 것도 아닌 듯 하다.

공무원 특채로 들어간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보이지 않게 가해지는 압박 때문에 받는 스트래스가 적지 않다는 하소연이다. 심지어 직장 내 왕따가 되어 실질적으로 하고자 하는 업무 진행에 차질을 빚게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는 전언이다.



무엇보다도 시대적 여건에 맞는 인재 선발 기준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사제도보다 이를 운용하는 사람들의 공적 마인드가 문제다.

공직자의 공정성이 담보된다면 능력있는 인재 발굴은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는 부차적 문제다.

특정 인사의 주관적 판단이나 영향력에 의해 인사가 좌지우지 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의 보완이 실질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특정 지역이나 특정 학교 출신의 독과점 현상을 근본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인사의 기본 틀을 잡는 것도 중요하다.

이왕에 불거진 공정성 시비가 차제에 인사제도의 선진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밑거름으로 작용됐으면 좋겠다.

유력자의 딸이 당당하게 특채될 수 있는, 그보다 더한 권력가의 아들이 떨어져도 어쩔 도리가 없는, 그 정도의 정당성이 담보될 수 있는 튼튼한 인사시스템의 출현을 기대한다.

최소한 이 땅의 젊은이들이 청춘을 걸고 공부해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다는 기대감만큼은 보장되는 건강성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2010. 9. 7)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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