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24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한가위 추억을 되찾자

한가위 추억을 되찾자



유례없이 긴 추석 연휴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명절 특유의 들뜬 분위기보다는 오히려 스산함이 앞선다.

추적 추적 쏟아지는 굵은 빗줄기 탓만은 아닐 것이다.

추석 명절, 천고마비의 풍요로움 속에서 넉넉한 인심과 정으로 서로를 보듬던 기억이 아련하다.

휘영청 밝은 달 빛 아래에서 정갈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미래의 희망을 새기던 시절의 이야기들이 있었나 싶다.

돌이켜보니 기억 곳곳에 숨은 그림이 되어 너무나 아름다운 추억으로 박혀있다.

그러나 다시는 그 시절 호사를 누릴 수 있게 될 것 같지 않아 우울한 마음이다.

'더도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고 했던 덕담 역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 같아 쓸쓸해진다.


많은 이들에게 이번 추석은 춥고 우울한 기색이 역력하다. 명절을 남의 일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체불임금이나 청년실업 등으로 생활을 짓누르는 경기불황 여파와 무관한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우리 학교만 해도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들의 수가 늘고 있고 졸업한 지 3년이 넘도록 이렇다 할 직장을 못 찾아서 낙담해 있는 제자들을 많이 보게 된다. 취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회사가 도산해서 일자리를 잃었다고 다시 재취업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 의뢰가 밀리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취직이 안돼 힘들어하는 아들, 딸을 살려달라고 눈물로 읍소하는 어머니들을 보는 일도 적지 않다. 얼마 전에는 경비실 직원 한 명을 채용하는데 멀쩡한 회사에서 일하다가 구조조정 당한 사람들이 몰리는 현실을 목격했다.

태풍 재해로 수확 직전 농작물을 망친 과수 농가의 시름은 땅이 꺼질 정도다.

물가는 물가대로 천정부지고 그나마 서민들은 지갑을 열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그 폐해가 고스란히 소외계층을 위한 시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추석명절을 앞두고 고아원이나 양로원 등에 후원금 및 물품전달 행사가 이어지던 예년과는 크게 달라진 분위기라고 한다. 실제로 명절 때마다 답지하던 개인사업가와 사회단체들의 후원 건수가 20% 가량 감소됐다는 소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항이 해외 출국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고 명품매장이나 고가 선물코너 상품이 불티나도록 팔려나가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겠지만) 배고픔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민족이 배고픔에서 벗어난 지가 얼마나 됐느냐며 진짜 배고프고 힘든 것을 모르는 게으른 사람으로 매도한다는 이야기까지 있다니 걱정이다.

그런 모습들이 집 없고 먹을 것 없고 보살 필 사람 없는 불우이웃은 물론 일반 서민들의 삶을 더 강팍하게 만들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진다.

물론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富’를 사회적 틀로 가두는 것은 부당하다.

내 돈 내가 벌어서 내 마음대로 쓰는 건 정당한 권리 차원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정당한 권리라도 사용방법에 따라 엄청나게 다른 결과물이 초래된다는 측면에서 ‘부의 용처’에 대한 고민은 아무리 신중해도 모자라지 않다는 생각이다.

늘 반복하는 말이긴 하지만 노블리스 오블리제, 역지사지, 나눔의 철학 등에 더 각별한 마음씀이 필요한 때다.


어느 때보다 소통과 화합이 사회적 용어로 강조되고 있는 분위기다.

더불어 하나가 되어 함께 잘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만 강조되는 게 아닐까 싶다.

모두가 어렵고 힘들 던 시절에도 풍요롭게 공유하며 민족 공동체임을 확인할 수 있었던 명절이 세계 경제 순위 11위를 자랑하는 지금은 오히려 민족간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초라하게 굴절된 경제 발전의 이면을 들킨 기분이어서 민망하기까지 하다.

소통과 화합은 말의 성찬으로 해결될 수 없다. 진정성 있는 실천이 우선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한가위는 더 ‘낮은’ 곳으로 더 ‘약한’ 곳으로 더 ‘소외된’ 곳으로 향하는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물질이 어려우면 따뜻한 위로의 마음이라도 전하도록 솔선 수범해 보자.

그래서 우리 민족의 대명절인 한가위의 추억을 되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렇게 함께 노력해 보자.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보자고 손가락 걸어 다짐해 보자.

(2010.9.21)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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