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24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IBM의 선택

IBM의 선택



내가 대학 다닐 당시만 해도 IBM의 오랜 명성은 참으로 대단했다.

IBM 로고가 찍힌 타이프라이터는 신기하기 그지없는 존재였다. 그 육중하고 잘생긴 외형도 외형이지만 단 한번의 타이핑만으로 오타가 수정되는 기능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IBM의 요새가 영원한 난공불락일 것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모든 ‘최고의’ 수식어는 IBM 전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고의 경영진, 최고의 기술, 최고의 엘리트 직원, 최고의 시장 점유율, 최고의 수익률 등을 자랑하는 컴퓨터 업계 지존으로서의 확고부동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만큼 자부심도 컸다.

그러나 자부심이 치명적인 '독성’으로 전환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자부심이 지나쳐 오만이 되고 그 오만함 때문에 퍼스널 컴퓨터 혁명이 진행 중이던 시장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탓이다.

치고 올라오는 경쟁사들에게 밀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급기야 누적되는 적자가 초래한 경영위기 앞에서 IBM의 아성이 풍전등화의 신세로까지 전락하게 된 것이다.




위기에 처한 IBM을 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두 CEO, 루 거스너와 새뮤얼 팔미사노 없었다면 IBM의 재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루 거스너는 실속없이 방만하기만 했던 조직을 줄이는 등 혁신적인 기법으로 경영의 효율을 꾀해 IBM의 활로를 구축한 공로를 세웠다. 새뮤얼 팔미사노는 기존의 IBM 브랜드 정체성에 연연하지 않고 획기적인 체질개선을 감행하고 나섰다. PC 사업부문을 팔고 그 대신 컨설팅·소프트웨어 회사를 인수·합병하는 등 IT 서비스 회사로 탈바꿈 한 것이다. 2002년 프라이스워터하우스앤쿠퍼스(PwC)의 컨설팅 부문을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100개 이상의 소프트웨어·서비스 기업을 사들였다. 당시로서는 거의 도박수준의 결단이었다.



덕분에 IBM은 2008년 말 들고 나온 ‘스마터 플래닛(Smarter Planet)’이라는 캠페인을 통해 ‘지구촌’ 혁신의 리더를 자처하고 나설 만큼 회복돼 있다. 첨단 IT를 대중교통이나 식품유통, 수자원 보존, 의료 시스템, 에너지 산업, 건강관리 시스템 등 공공 및 민간 영역에 적용하는 데 IBM이 이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 성과도 있다. 벌써부터 뉴욕시 범죄율 27%를 절감시키는 1등 수훈으로 눈길을 끌고 있는 상황이 그것이다.

조만간 IBM의 과거 명성을 되찾는 모습을 보게 될 것 같은 예감이다. 하드웨어와 파이낸싱, 컨설팅, 소프트웨어 등의 프로세스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느 IBM만의 특성을 살린다면 목표로 하고 있는 기업이나 정부가 필요로 하는 ‘End-to-End' 패키지 시스템 제공 실현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래를 통찰한 리더의 결단이 없었다면 IBM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오늘 날 지구촌 혁신의 꿈을 주도하는 세계적인 IT회사로서의 자신감은 물론 IBM의 명운조차 불투명한 상태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리더의 미래 통찰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전자산업의 메카였던 일본의 소니가 이제는 삼성이나 심지어 엘지에 굴욕을 당하고 현실 역시 시대를 앞서 읽지 못한 잘못이 크다. 모토로라나 노키아가 겪는 어려움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삼성이 제일제당 삼성물산에서 IT 삼성으로 주요 기업을 바꿔나가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비단 기업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국가가 됐건 개인이 됐건 혁신과 발전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 없이는 그 누구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대한민국의 경이로운 발전상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게 있다.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발전은 우리의 창의적 노력에 의한 결과물이라기보다 남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을 다만 ‘보기 좋고 편리하고 그리고 좀 더 값싸게 재가공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기존의 ‘솜씨’만으로 세계 시장에 명함을 내밀 수 있는 환경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IBM의 변신을 벤치마킹해야 할 이유다.

우리 안에 들어있는 구태는 과감히 버리고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새로운, 우리 만의 독특한 ‘영역’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도전 정신과 진취적인 자신감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가다가 작은 만족에 홀려 이 정도면 된다는 안일함은 과감히 던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미래의 부는 저절로 굴러드는 호박이 아니다.

IBM의 선택에서 길을 모색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PS: 세계를 돌아다니다 보면 국가 지도자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하게 된다.

지금 머물고 있는 체코의 데친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체코나 헝가리, 폴랜드 등의 시가지 정서에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시절의 폐해가 남긴 흔적이 여전히 국민 정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그것이다. 거리를 걷다보면 유머와 의욕을 잃은 표정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한 나라의 흥망성쇄와 국가 리더십의 연관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대표의 회동소식을 이국땅에서 전해 들었다.

좋은 분위기와 유익한 대화가 있었다는데 두 지도자의 만남이 국민의 희망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국민은 특정 지도자의 부속물이 아니라는 사실과 지도자가 국민에게 져야 할 막중한 책임이 다시한번 환기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순리를 거스른 지도자들이 역사 앞에서 준엄한 심판을 받았던 이전의 모습을 잊지 말아야겠다.

(2010.8.24)

....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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