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4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재승박덕(才勝薄德)

재승박덕(才勝薄德)
각별한 친구 동생이 타계했다는 소식이  청천벽력의 충격과 함께 다가왔다.
이제 막 오십을 넘긴    죽음이기에  안타까움이  컸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세상 일이 다 좋기만 한 것도, 다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정도는 익히 알고 있었는데도  자꾸만 허둥거리게 만들었다.  
어릴 적부터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뭐든지 잘하는 재사였고 명문대를 졸업한 이후에도 남보다 빠르게 재벌기업 사장자리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하는 모습으로 주위의 부러움을 샀던 그였다.  그런 그가 더 이상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된,  죽음의 지대에 속해있는 현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세상일을 다 이해할 수 없는 것 아니겠냐고 친구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게도 위로가 되지 않는 말로 어떻게 친구를 위로할까 싶어 슬그머니 속울음 속으로 밀어 넣고 말았다. 
더 없이 착잡한 하루를 그렇게 보냈다.  
 
아마도 미처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경황없이 상가에 앉아있는 와중에도 가인박명(佳人薄命), 재승박덕(才勝薄德) 고사성어가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삼국지에는 젊은 나이에 계륵이라는 고사를 남긴 채 조조에게 죽임을 당하는 양수의 이야기가 나온다. 지나치게 머리가 좋았던 그는  계산하다가 자신의 거취를 결정하는 기회를 놓치고   결국 그 일이 조조의 경계심을 자극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공자의 애제자였던 염구 역시 재승박덕 때문에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한 케이스다. 염구는 공자가 여러 곳에서 ‘藝’에 밝고 재상이 될 만한 재목’이라고 평할 만큼 재능을 인정받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현실정치에 대한 그의 빠른 이해력은 오히려 그의 발목을 옥죄는 족쇄가 되고 만다. 얕은 꾀로 스승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현실 안주를 도모하다가 공자로부터 파문 당하는 지경에 이르고 만  것이다.
재능과 인품을 겸비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을 경계한 선인들의 의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무엇보다도 세상 유혹이나 실패에 놓이는 결정적인 순간에 스스로의 속도조절이 가능한 내공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인지 깨닫게 해 줬다. 
 
상가에서 나와 착잡한 마음을 식히려고 올려다 본 밤하늘 별빛이 오늘따라 유난히  고왔다. 
장례식장 건물  너머 4343주년 개천절을 기념하는 태극기가 밤 경계를 가르고  묘한 조화로 나부끼는  모습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우주의 한 점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미미한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빛의 산란이 신의 계시처럼 가슴에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득 계산도 상상도 안되는 개천절 기념이 우리 삶에 무슨 의미로 존재하는 걸까 싶었다.  과연 세상에서   우리가 하는  뭇계산들에 무슨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걸까  생각했다.
반만년 역사의 속도로 비춰  보면  지금 이 순간에도 수없이 많은 인간의 생과 사의 기계적인 교차가 진행되고 있다는  좀 더 현실적인  판단이 가능해지는 것 같다.      
사람들이 잘난 계산 솜씨만 뽐내고 있을 게 아니라 그것보다는 인간의 장구한 역사에 걸 맞는 통 큰 삶을 살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제 안에 찍힐 당당한 스스로의 모습을 그려내며 허물을 벗고 나설 시점이라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선 작은 것에 연연하지 말고 세상일에 좀 더 초연하고 담대하게 맞붙는 호적수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음이다.
 단, 지나친 자신감은 금물이다.  영글지도 않은 승리에 도취하면 더욱 더 안되겠다.

다시 상가로 돌아오니  누군가가 전화기  너머에서  숨가쁜 호홉을 내뿜고 있었다.   
야권의 서울시장 후보로 박원순씨가 됐는데 재미있겠다라는 전언이었다.    이번 선거가 녹록치 않을 것 같다며  내년 총선과 대선 국면의 정치계산으로  복잡해진  심경을 내비쳤다. 
흠.
정치 상황에서,  실제  일어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잘 이해해서 피가 되고 살이 되게 받아들일 수 있는냐에 달려있다는 내 답변을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다.  

왠지 말개진 느낌이다. 
장독대 뚜껑 덮는 기분으로   하루를  닫고  있는데, 어! 이 묘한 두근거림은 뭐지?
                              (2011.10.4)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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