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30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삶의 찬가

삶의 찬가


‘죽다 살아나다’
그제 저녁부터 오늘 낮까지의 내 근황을 묘사한 가장 정밀하고 정확한 표현이다.
정말 죽을 뻔 했다.
토하고 설사하고 또 토하고 설사하고...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가늠할 수 없는 고통에 밤 새 시달렸다. 먹은 음식이 잘못된 건지 그동안 누적된 피로와 마음을 불편하게 하던 고민들이 일으킨 반란의 결과인지 알 수 없지만 심각한 토사곽란에 덜컥 발목을 잡힌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밤새 시달릴 때는 아무 생각도 없더니 막상 중요 스케줄 마다 괴력이 발휘된 상황이다. 병원으로 실려가 주사와 약으로 기력을 보충해서 그 힘으로 예약된 스케줄을 차질없이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행사에 참석하고 나면 기진맥진 축 늘어진 중환자가 되는 상황의 연속이었지만 말이다. (내가 무대체질이라는 것도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그렇게 아무도 못 말리는 2박3일 동안의 활약상 끝에 ‘나는 지금 살아있다’.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은 대부분 삶에 대해 새로운 정감을 갖게 된다더니 내 경우가 그랬다.
고비를 넘기고 새로 맞는 아침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났을지 모를 육신의 고통이 의외로 소중한 경험이 되는 것 같다.
삶과 죽음에 대해 되새기는 기회를 통해 삶을 좀 더 진중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신선한 공기, 햇살 한 조각조차 생의 찬미로 이어지고 신에 대한 감사가 절로 나온다.
그 동안 마음을 가리던 근심 걱정이 우중충함을 벗어 던지고 말개진 얼굴로 나를 축복하고 있다. 새로운 희망으로 충만해진 자신감이 있는 한 그 어떤 어려움도 두렵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살아있음이 이토록 행복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미처 모르던 과거를 뒤로하고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는 중이다.


통제할 수 없는 통증이 밀려드는 순간, 이렇게 혼자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지근거리의 가족에게조차 아무런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소리 없이 생의 공간에서 지워질지 모른다는 좌절감은 차라리 공포 그 자체였다.
죽음을 감지하는 순간, 전 생애가 파노라마처럼 머릿 속을 스쳐갔다. 전광석화 같은 속도였다.
가장 큰 안타까움은 애착을 갖고 있는 그 어떤 대상도 삶을 마감하는 순간 나와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인간의 고독을 자극하는 원초적 고립의 근원이 거기 존재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내 생애에 담겨있던 오욕칠정이 일시에 정리되는 듯 했다.
죽음은 인간이 가진 나름의 특별함이 몰수되는 시작에 다름 아니라는, 허무하지만 틀림없는 결론이었다.
천하의 스티브 잡스도 삶을 마감하는 순간부터 더 이상 자신의 특별함을 주관할 수 없었다.
그것은 우리가 눈 앞에서 보고 있는 현실이기도 했다.


이번 우환은 죽음을 가까이 살필 기회였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 여지가 적지 않다. 죽음이 피할 수 없는 필연적 운명인 현실을 직시하고 그 앞에서 증폭되는 고독의 무게를 체험할 수 있었던 것도 그렇고 또 죽음이 누구에게나 예외일 수 없는 보편적 명제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개입할 수 없는 명백한 삶의 진실을 깨닫게 하는 통로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흑자라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죽음에 이를 수 밖에 없다.
그런 한계가 존재하기에 인간이 진지해질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솔직히 구원을 확신하는 기독교 신자로서의 신념에도 불구하고 삶의 저편은 여전히 두렵고 궁금하고 신경 쓰이는 공간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부족한 신앙심 탓인지 부실한 내공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내 삶과 죽음의 영역에 대해 좀 더 확실한 확신과 정의로 재정립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만은 사실이다.
나의 삶이 오늘을 기점으로 더 많이 진지해질 것 같은 예감이다.


고독한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이 세상 모든 삼라만상 그 어느 것도 고독하지 않는 게 없다.
저마다 독자적으로 고독의 영역을 고수하는 처지라면 특정한 대상에 대한 애정이나 애착행위는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수긍해야 할 것이다. 모든 대상을 동일하게 사랑하고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 게 맞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개별적인 애착의 대상을 내려놓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마음이다.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들을 대상으로 한 관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여러 가지 설득력 있는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풀지 못한 숙제로 남겨둘 것 같다.
문득 이 세상을 소풍 다녀가듯 아무것도 움켜쥐지 않고 그 무엇에도 마음을 심지 않은 채 가볍고 무심히 살다 간 천상병 시인을 생각한다.
그는 정녕 행복했을까?
그는 진정 자유로웠을까?


역설적이지만 토사곽란 정도의 아픔으로 결코 가볍지 않은 사유의 공간에 머무르면서 삶의 깊이를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었던 건 나름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다.


(2011. 10. 30)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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