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5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점령된 월스트리트

점령된 월스트리트

10여 년 전만 해도 ‘아메리칸 드림’은 유효했다.
17세기 청교도들이 공동의 꿈으로 신세계를 연 이후 능력있고 부지런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이 기회의 땅에 수많은 발길들이 이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가난과 하층민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지구상 가장 이상적인 자본주의 국가로 미국을 꼽는데 망설이지 않았고 꽤 오랜 시간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경찰국가로서의 미국의 역할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 미국 사회에서 지난 17일 ‘월스트리트 점령’ 구호로 시작된 시위가 3주째 미국의 가을을 달구고 있다는 소식은 놀랍다. 미국경제가 월가의 탐욕으로 나락에 빠져들고 티파티로 대변되는 보수파로 인해 끝없는 나락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들고 일어난 자발적 시민봉기가 세계의 금융 1번가를 강타하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더 이상 1%의 탐욕과 부패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99%의 결연한 의지로 뭉친 모습이 심상치 않다. 부패한 자본 금융을 향해 던지는 이들의 돌팔매가 미국 전역은 물론 세계 각지로 그 열기를 이어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미국사회가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계층 간 간극을 메우기 위한 개인적인 노력이 기여하는 바 컸다는 생각이다.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을 사회로부터 받은 ‘운 좋은 선물’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하고 이를 공동체에 나누고자 하는 지혜로운 노력 때문에 미국이 유지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으로 부자들이 존경받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부터가 미국의 남다름을 설명할 수 있는 배경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미국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오늘 날 미국의 몰락은 이들이 미국의 사회 정의나 시스템이 준 혜택, 미국시민의 의무, 더불어 사는 사회에 대한 열망 등 아주 평범하면서도 중요한 미국사회의 가치들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결과라고 해도 무리가 아닌 현실이 되고 말았다. 급기야 미국의 정치 경제가 펜대를 굴려 천문학적인 돈을 모은 상위 1%의 금융 자본가들에 의해 가동된다는 의심에 적절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월가의 파격적인 풍경도 이 같은 미국의 속사정을 대변하는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저축은행의 총체적 비리에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만으로도 도대체 인간의 기본이 돼 있는 사람들인가 의구심이 들 정도로 무모하고 엉망인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기업 윤리나 사회 정의는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합동수사단을 발족하고 엄중 수사를 다짐하는 등 정부당국의 대응이 있기는 하지만 국민의 속은 숯검정이 된 지 오래인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젊은이들의 근로 의욕을 상실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좀 더 세심한 뒤처리가 있어야겠다.
결국 피해자는 서민이기 때문에 공적자금을 투여해서 이 사태를 수습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른 바 악덕 업주가 됐건 시이오가 됐건 마지막 한푼까지 발본색원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철저하고 근본적인 환부 조치가 필요하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장점을 인센티브를 통한 동기유발과 자유의지에 둔다면 단점으로는 소득분배의 불균등이나 인간 가치의 결여 등을 들 수 있다. 자본주의 장점에만 치중하다보면 부의 불평등현상이 우려된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기본 동인인 인센티브 시스템 억제를 통한 해법을 찾을 수도 없는 일이다. 사회 전체의 균형있는 발달을 저해하는 문제점 때문에 선택에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공산주의 물결이 세계를 지배할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결국 인간의 본성을 무시하거나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문제 때문에 붕괴한 전적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역시 인간의 욕심을 통제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 자본가들의 무절제한 이기심이 시스템 자체를 마비시키는 시도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결국 자본주의 종말을 부를 수도 있다. 자본주의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특히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부른 리먼 브라더스 사태는 자본주의의 추악한 음모가 세계 경제 질서를 교란시킨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사건은 우리가 왜 자본주의 현실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미래에 대해 고민해야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이번 시위 사태의 심각성이 월가의 점령이라는 물리적 상황 보다는 자본기득권층을 타도 대상으로 삼는 일련의 사회적 현상에 있다는 점을 주시해야 할 것이다.
결국 미국의 미래도 여기에 달려있는 셈인데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다.

미국이 됐건 우리가 됐건 결국 문제 해결의 핵심은 기득권의 대오각성이다.
몰핀이나 마약 처방으로 마치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비책이 있는 것처럼 호도하는 기득권층의 무사안일하고 이기적인 관점이 늘 문제다. 사술로 자리를 꿰어 차고 시간을 끌면서 행복한 노후 보장이 가능한 절대적 가치인 ‘돈’만 챙기면 된다는 식의 이기적 유전자가 작동하고 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는 국가체제 마저 헌신짝처럼 던져버릴 수 있는 탐욕에 찌든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어디에서도 답을 찾지 못할 만큼 곪아있는 눈 앞의 현실이 그저 어지러울 뿐이다.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달리겠다는 자기희생적 각오로 문제를 접근하지 않으면 답 구하기는 참으로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그저 자성을 통해 거듭나야겠다는 뼈를 깎는 절박함이 필요할 뿐이다.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어디쯤일까?
우리 사회의 기득권 계층으로 혜택을 많이 받은 수혜자의 한사람으로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내가 지금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니 한없이 무거워지는 마음이다.

(2011.10.5)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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