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12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본질은 백년지계다

본질은 백년지계다

해마다 이맘때면 대학가를 강타하는 연례행사가 있다.
각 기관의 이런 저런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한 대학 랭킹 발표로 벌어지는 대학 간 경쟁이 그것이다.
그러나 비합리적인 평가 기준 때문에 속앓이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어 문제다.

전혀 객관적이지 않고 일관적이지 않는 순위결과도 그렇지만 평가 기관에 따라 서열 순위가 달라지는 일도 속출하고 있다. 발표기관이나 평가기준에 따라 들쭉날쭉한 결과지만 당사자인 대학 입장에서는 민감한 이슈일 수 밖에 없다. 랭킹 경쟁이 대학의 모든 능력을 대변하는 것처럼 대학들이 갈수록 순위 경쟁에 매달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 대학가만의 풍경이 아니다. 경쟁력 있는 대학들이 몰려있는 미국에서 조차 대학랭킹에 초연해지지 못하는 모습이다. 평가와 그에 따른 순위가 발표될 때마다 예외 없이 각 대학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나서는데 국내외가 다르지 않다.


문제는 평가의 공정성이다.
현재로서는 교수 1인당 발표 논문 수, 영어 강의 비율 및 외국인 학생 수, 강의평가 공개율, 건강보험 데이터베이스와 연계한 졸업생 취업률 등의 지표를 기준으로 대부분의 평가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각 대학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평가과정이 아무런 개선의 노력없이 다년간 지속되고 있는데 이 같은 현실이 방기되고 있다. 대학 간 경쟁력을 비교하는 평가가 출발점부터 불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예술 분야 비중이 큰 대학에게는 이런 방식의 평가 지표는 독약일 수 밖에 없다. 예술계통 학문의 특성 상 대부분이 대학 졸업 이후 곧바로 취업하기 어려운 여건인데도 취업률 평가에서 이를 배려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최근 발표된 한 언론사의 국내 대학 평가 결과에서도, 심지어 교과부의 부실대학 심사과정에서도 똑같이 노출된 문제다.

그런데도 대학랭킹을 수단으로 한 관련 산업은 날로 번창하는 분위기다.
심지어 대학이 돈벌이에 놀아난다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순위에 따라 대접도 천양지차로 달라지니 어쩔 수 없다.
무심코 던진 돌멩이가 개구리의 생사를 가르듯 대학 랭킹에 따라 존립이 좌우되는 대학으로선 평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몸짓을 펼치는 처지일 수 밖에 없다. 명문대학은 명문대학대로, 중하위권 그룹 대학은 또 그들대로 순위 경쟁에 목을 맬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로 정교하지 않은 평가결과가 해당 대학의 심각한 피해로 이어지는 일이 부지기수인 현실이다. 관점은 다르지만 교과부 평가에서 하위 랭킹에 속하게 된 몇몇 대학의 운명도 같은 맥락이다. 실질적인 평가와 상관없이 순위 경쟁에 밀렸다는 이유만으로 폐교될 위기에 처해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각 대학들이 질적 향상을 위한 노력보다 평가기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겠다.

대학 랭킹 경쟁은 경쟁력 제고라는 긍정적 측면보다는 빈익빈 부익부 초래로 대학의 균형발전을 저해하고 하위 랭킹에 속한 대학들의 의욕 상실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부작용이 많다는 생각이다.
랭킹 경쟁보다는 각 대학이 지향하는 목표나 이상을 더 잘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접근 방식이 교육의 백년지계를 위해 바람직하고 현실적인 해법이다.
그런 점에서 올 초 국제교육협의회에서 발표한 경쟁교육 폐해에 대한 연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35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우리나라 학생들은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지표’에서 0.31점, 관계지향성과 사회적 협력 부문 0점으로 각각 최하위였다 개인의 행복지수 역시 OECD 국가 중 꼴찌였다. 충격적이지만 적나라한 우리 교육의 현실이었다.
의미없는 경쟁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가를 보여줬고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공멸뿐이라는 위기를 입증할 만한 자료라는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이야말로 대학 스스로 유치하고 비생산적인 랭킹 싸움에 더 이상 놀아나지 않겠다는 의지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대학의 내실화를 위한 일단의 사회적 노력들이 뒷받침 돼야겠다. 대학의 특성화나 생존전략에 방점을 둔 평가 작업으로의 전환도 고려할 만한 방안이다.
물론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나 역시 대학을 책임지고 있는 입장에서 대학 순위에 민감해질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그런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우리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 등을 생각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정말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괴감에 빠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교육은 역사와 민족의 미래를 위한 가능성에 대한 투자다.
'시대를 뛰어넘는 제품은 시장조사가 필요 없다'고 했던 스티브 잡스처럼 시대를 뛰어넘는 인재 양성을 교육의 소명으로 삼도록 하자. 그렇게 최선을 다한 이후의 역량을 바탕으로 한 대학 순위 평가라면 좀 더 공정한 평가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100년, 200면 이후를 내다봐야 하는 교육의 본질에 가장 적절한 평가방식이고 미래지향적인 가늠자를 토대로 결정돼야 할 대학 순위가 천박한 상업주의에 끌려 다니는 볼썽사나운 작태를 멈추게 하는 바로미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마찬가지로 순위 때문에 총장이나 교수들이 구체적인 불법까지는 아니더라도 통계 수치를 조작하는 등의 편법에 가담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스스로가 나서야 할 때이기도 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교육을 백년지계로 설정한 선인의 속 깊은 의중을 배제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겠다.

최근 한 언론사의 국내대학 평가에서 재벌기업이 관계한 두 대학이 각각 상위권에 진입하는 공교로운(?) 사건이 마음에 걸린다. 두 대학의 기업마인드를 극찬한 해당 언론 기사의 헤드라인도 공교롭기는 마찬가지다. 재벌기업의 막대한 영향력이 대학의 질적 평가에 개입하는 신호탄은 아닌지 모르겠다. 더 나아가 재벌 기업이 교육기관 판까지 좌우하는 막장까지 보게 될까봐 솔직히 걱정되기도 한다.
중소기업 먹거리까지 손대는 탐욕이고 보면 불가능한 현실만은 아닐 수도 있다.

(2011. 10. 11)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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