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8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 스티브 잡스 2

스티브 잡스 2

스티브 잡스의 위대한 삶은 미국인으로  살지 않았다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살아있을 때보다 사망 이후 더 주가를 올리고 있는 스티브 잡스의 극적인 삶을 지켜보면서 떠올려 본 생각이다.
스티브 잡스를 우리 시각으로 보자면 (우리 국민이 그토록 좋아하는)스펙 없는 혼혈 사생아일 뿐이다.
그런 잡스를 차별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미국의  저력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닌 게 아니라 수많은 부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포용과 배려의 미덕이 넘치는 미국사회의 저력이 스티브 잡스의 오늘을 만든 일등공신이라는 현실만큼은 부인하지 못하겠다. 출신지나 과거 행적에 연연해하지 않는 실용주의적 안목이 아니었다면 세상을 혁신하고자 하는 그의 꿈은 세상 밖으로  명함도 못내밀고 스러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분명한 것은 현재의 스티브 잡스 효과가  미국 경제에 미치는 파급은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이다.
미국으로서는 엄청난 호재를 만난 셈이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탄생도 따지고 보면 미국사회의 열린 분위기 덕을 톡톡히 본 사례다. 실제로 잡스와 오바마는 각각 시리아와 케냐 출신이었고 그나마 잡스의 경우는 사생아인데다 지방대학 중퇴가 학력의 전부였다. 마약 전력이 있는 오바마 역시 자유로울 수 있는 상황은 결코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둘은  미국 사회의 대표적 아이콘이 되었다.
이들을 영웅으로 만든 건 흔들림 없는 선택으로 미국의 가치를 지키고자 했던 국민들의 혜안이었다.
거기에   인력 자원을  국가 경쟁력  관점에서 풀어나간 미국의 선견지명도  공신계열에서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실리콘벨리를 통해서도 인재를 구하는 미국의 통 큰 처세를 목도할 수 있다.
실리콘벨리를 움직이는 두뇌집단 50%가 한국, 일본, 중국 등 이국의 인재들이라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내 것만을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세계 각국의 문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멀팅포트 문화는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미국의  세심한  노하우가 담겨 있다. 외부의 문화들이 모방과 순응하는 과정을 거쳐 자연스럽게 미국화 되는 결과조차 미국이 가진 경쟁력의 일부로 보인다. 이는 다른 국가나 종족에 대해 꾸준한 배려를 통해 자국의 영향력을 키워가는 미국만의 독특한 문화 방식으로 해석된다. 세계화 시대에 자기 국민을 정확하게 알고 보듬을 줄 아는 융통성이 핵심인데 미국의 위대함을 지탱해주고 미국이 미국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가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미국의 위대함은  모방만으로 해결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유연한 사고가 더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특별한  한가지.
스티브 잡스의 비공개 장례식을 통해 미국사회의 또 다른 매력을 엿보고 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있는 상태에서 열화와 같이 쏟아지는 추모열기가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그의 장례식은 고인의 바람대로 측근들만 참여한 채 비공개로 진행됐다.
이에 대해 섭섭함이 토로됐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그저 개인의 자유의지를  최대한 존중하고 보호하는 분위기의 연속이다. 성숙한 사회적  분위기에 압도되는 느낌이다.
선입견이 배제된 체 무한대로 주어진 자유를 아무 얽매임 없이 누릴 수 있는 자유를 허락받은 그의 삶이  질투가 느껴질 만큼 부럽다.  경이롭기까지 하다.  
자유인의 지존으로 불릴 만하다.
그렇게 참 자유를 구가한  삶의 질로만  평가한다면  잡스로서는 아무런 여한도 없을 것 같다. 
 
그런 미국에 비해 우리의 현실은 아직 멀었다.
여전히 외국인이라고, 여자라고, 무산계급이라고 차별받는 부당한 현실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기존 권력을 암묵적인 구태로 유지하려 드는 편협한 시각에 사로잡힌 사람들 때문이다. 화려한 겉치레에 갇혀 구체적 실리를 외면하는 어리석음이 수많은 가능성을 억압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국수주의적 사고에 대한 현실 인식이 시급하다.
국가 간 인종 간 경계 자체가 무의미해져가고 있는 시대적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맹목적 혈통주의에 빠져 우리만의 역사와 전통이 최고라고 내세우는 시대적 착오가 머지않아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족쇄가 된다는 건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오래 전 우리도 미국 땅을 향해 꿈을 품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 따위는 까맣게 잊고 대한민국 사회에 편입되기 원하는 수많은 약소국 이주민들을 냉대하는 이중성을 자행하고 있다. 약소국에 대한 근거없는 우월감을 기형적 행태로 풀어놓는 일이 얼마나 큰 부끄러움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주민을 배제한 채 우리끼리 만의 소통으로는 대한민국의 21세기도 존속할 수 없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할 일이다. 이주민과의 공조를 공존의 화두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법 제정을 통해서라도 우리에게 문호개방을 원하는 이주민들을 위한 방도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 해외 이주민의 경우 대학입학에서도 쿼터제 등 그들만의 합리적인 경쟁이 가능할 수 있는 우대정책으로 정착을 도울 수 있도록 서두를 일이다.  우리끼리만 잘난 나머지 우물안 개구리가 된다면 국가 경쟁력을 훼손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편견을 내려놓고 배려와 공감을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자. 
우리라고 제2, 제3의 스티브 잡스를 만나 지 말란 법 없다. 
 사회적 관점의 틀을  바꾸면 예상 외로 수월할 수 있다.
                 (2011.  10.  9)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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