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2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 비움의 미학

비움의 미학

리비아의 카다피, 독재자의 비참한 말로가 연일 화제다.
그의 최후를 둘러싼 뒷얘기가 무성하게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사인에 대해서도 추측이 난무하고 있는데 현재로서는 그의 체포를 우려한 심복이 자구책 차원에서 그를 쐈다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 같다.
카다피가 시민군에 체포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동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한때 아랍 통합의 주역으로 영웅시되던 인물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무기력하고 굴욕적인 그의 처신을 볼 수 있었다. 하수구에 숨어있다 붙잡히자 시민군을 향해 “제발 쏘지 말라”며 목숨을 구걸하는 모습은 측은지심을 자아내기까지 했다. 심지어 시신이 정육점 냉동고에 전시돼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독재자의 운명이 아닌가 싶다.


다른 사람에 비해 상가를 찾는 일이 많은 나로서는 본의 아니게 죽음의 현장을 자주 접하게 되는 셈이다. 조문 때 마다 느끼는 바지만 각양각색의 죽음과 그 죽음을 기점으로 발생하는 적나라한 뒷담화들이 인생 본연의 모습을 설명해 준다는 생각이다.
작고하기 3일 전까지 흔들리는 손을 간호사를 통해 제어시킨 채 결재 판에 사인했다는 자수성가 재벌 회장이나 숨이 끊기는 마지막 순간까지 술을 포기하지 못했던 애주가의 못 말리는 사연, 또 죽음을 목전에 둔 그 순간, ‘엄마’를 찾은 실향민이나 ‘남편’의 이름을 불렀다는 젊은 새댁의 안타까운 절규도 우리로 하여금 저마다 다른 유형의 인생을 짐작하게 해주는 일종의 뒷담화다.
유명인들이 죽음의 순간 남긴 말들은 나름의 무게를 갖고 인구에 회자되기도 한다.
신은 죽었다고 외치던 니체는 매독에 걸려 길거리를 배회하다 스스로를 변장한 신이라고 주장하는 말을 마지막으로 삶을 마감했다. 종교개혁자 캘빈은 “사람이란 아무것도 자랑할 게 없다. 목숨이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붙어있는 것일 뿐”이라는 유언을 남겼다. 중국을 움직였던 모택동은 죽은 뒤에도 10억 중국인과 함께 있고 싶다며 화장한 유골을 전 국토 위에 뿌려달라고 했다. 32세 젊은 나이에 순국한 안중근 의사는 천국에 가서도 우리나라의 독립과 자유 회복을 위해 힘쓰겠다는 말로 결연한 투사의 결기를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나는?
삶의 마지막 순간 무슨 말을 남기게 될런지.
그러나 금방 답을 낼 수 있을 것 같던 처음과는 달리 쉽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오늘 낮 오래 전 작고하신 분을 추모하는 자리에서도 떨쳐지지 않던 생각이다.
추도식의 주인공은 어지간한 사람이면 기억해낼 정도로 유명세 떨치는 삶을 살았지만 ....




사는 일도 죽는 일도 그다지 쉽지만은 않다는 생각이다.
분명한 것은 생전엔 물론 죽음 이후에도 향기를 잃지 않는 인생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사람들이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스님, 옥한흠 목사님 등 참된 삶으로 사표가 되신 종교지도자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건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세인들이 그들의 삶을 숭배하며 자발적인 존경을 보내는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하고 또 상상하기도 용이하지 않은 카다피의 죽음에 사람들은 저마다의 해석을 달아 김정일이나 카스트로를 연관 짓는 모습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사람보다는 스스로의 삶에 대한 의제를 바탕으로 한 절실한 관심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푸르던 나뭇잎이 어느 새 누렇게 변해 땅위에 떨어지고 있다.
인간의 유한한 생명에 대한 경고를 몸짓으로 보여주는 낙엽의 퍼포먼스다.
계속되는 사인에도 불구하고 미욱하기만 한 인간은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 70년도 미처 다 채우지 못한 카다피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며 비참한 결론을 향해 내달리고 있는 형국이다.
모두에게 찬란한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것으로 고별사를 진행하는 앞산의 단풍이 참으로 눈부시다.
오롯이 비워냄으로 해서 전부를 채우는 삶의 진리를 전하고 있다.


모든 걸 내놓고도 초연할 수 있는 낙엽의 여유로움에 귀도 기울이고 눈도 맞춰보겠다.
그렇게, 향기로운 언어를 마지막 메시지로 담을 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기를 간구해야지.


(2011.10.22)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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