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31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문패 바꾼다고 되나?

문패 바꾼다고 되나? 


10.26 재보궐 선거 참패 이후 정부 여당의 입지가 갈수록 좁혀지는 모습이다.
백척간두의 운명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당 쇄신 처방이 홍수를 이루지만 정작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반응이 영 시큰둥하니 문제다. 당명 개정 등의 해법은 문패만 바꾼다고 나아지겠느냐는 타박 앞에 명함도 못 내미는 형국이다.
대통령이라고 형편이 나은 것은 아니다. 여당과 한 묶음이 되어 뭇매를 맞는 가 싶더니 급기야 ‘연산군 보다 더 못한 단군 이래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소리를 듣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쏟아지는 여론의 몰매가 우선 당장은 아프겠지만 한나라당 미래를 위해서는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다.
어떤 면에서는 더 혹독한 비난과 채찍질이 필요하다.
귀담아 듣고 개선할 수 있다면 오히려 더 큰 폭의 도약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당이 기꺼운 마음으로 이 어려운 국면을 감내하겠다는 의지를 다져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늘 느끼는 바지만 한나라당 진영엔 전략이 없다. 소통도 없다.
지나치게 비대하고 지나치게 둔감해서 늘 반응이 늦다.
이 같은 폐단은 이번 선거과정을 통해서도 고스란히 재현됐다.
한나라당이 네거티브나 색깔론 같은 20세기 선거 행태에 매몰돼 있는 동안 상대 진영은 광속의 빠르기로 선거운동을 펼쳤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분위기다. 낡아빠진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제트엔진으로 진화하는 SNS의 위력을 간과했다. 더 이상 메이저 언론의 선동에 구동되지 않는 선거판 진실을 간파하지 못하고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대변되는 신개념의 소통기구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방관한 그 죄(?)가 참으로 크다고 하겠다.


내년 총선에서 청년 비례대표를 뽑거나 법조인 출신을 배제하겠다는 등의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의 구상이 반향을 얻지 못하는 분위기다. 호응을 이끌어 내지 못하기로는 당내 다른 목소리도 마찬가지다.
그럴 듯한 쇄신론이 우후죽순 봇물을 이루지만 여전히 공허한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나라당이다.
결국은 진정성의 문제다.
스스로가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이면서도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듯 해맑은(?) 표정으로 내놓은 해법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리 만무다.
당이 회생하려면 전략이 뒷받침 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는 절박함은 물론 환골탈태 수준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보수의 발전을 위한다면 진보진영 화법의 벤치마킹을 고려할 것을 권하고 싶다.
선명하고 강렬한 선거구호의 시각적 효과도 선거판 당락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요소다. 예를 들어 ‘연산군보다 못한 대통령’이라는 공격에는 ‘불임정당’이나 ‘신중우정치’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자극적인 표현으로 대응하는 식이다. 분명하게 뜻이 닿고 젊은이들이 신명나게 외칠 수 있는 부분까지 고려한 구호의 생산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수진영 화법은 분명 비효율적이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근엄하고 가라앉아 있어 마치 한편의 잘 정리된 논문 같은 느낌을 주는 화법으로는 찰나적이고 감각에 길들여진 젊은 피들을 설득하기 어렵다.
혹자는 정해진 패턴을 벗어나면 보수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고 걱정하지만 보수의 가치가 체면이 깎이는 상황보다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것에 발목 잡혀 망설이다 보니 ‘점진적 무상급식’이니 ‘대안없는 반값 등록금’ 등이니 하는 애매모호한 구호로 고립을 자처하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말로 어떻게 국민을 설득할 것이며 더 나아가 투표에 임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겠는가.


서울시 입성에 성공한 박원순 시장은 자신의 공약인 무상급식 사업을 결재하는 것으로 시장 업무를 시작했다. 당분간은 누구도 보무당당한 박시장 행보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승자인 박시장의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패자인 오세훈 전 시장은 자신이 세웠던 시책들이 전면 백지로 되돌려질 위기에 처해 있다. 승자에 관대하고 패자에 박할 수 밖에 없는 역사의 냉엄한 현실이다.
구한 말 흥선 대원군을 주목한다.
수상한 세월을 이겨내고 자신의 원하는 바를 손에 넣고 천하를 휘둘렀던 그의 기막힌 처세술을 생각하게 된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다.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이를 실현할 권력까지 쥐지 못하면 상황이 아주 많이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게 역사의 숙명이다.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도 책임지는 정치보다 마음을 사로잡는 정치 선택을 통해 승자를 가려왔다. 구호를 만들어낼 줄 아는 정치인이 역사의 주인공이 되고 또 역사를 만들어 낸다.
물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행운을 얻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운이 좋으면 사상가로, 운이 나쁘면 몽상가로서 말이다. 이승만과 김구, 또 어떤 의미의 윤보선과 박정희 등 전직 대통령들의 삶을 비교해보면 비슷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시각으로는 보수를 위한 나의 조언에 굴욕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
마음 한켠에 내 생각들이 틀렸으면 좋겠다는 망설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10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하는 정도로라도 받아들여져 이 땅의 보수를 진일보 시키는데 일조 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간절함에 이 글을 블로그에 담는다.


(2011. 10.31)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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