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4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찜질방에서 민심을

찜질방에서 민심을
가끔씩 동네 찜질방을 찾는다.
30년째 인연을 맺고 있는 이발소와 목욕탕이 있는 곳이다.
말하자면 나는 그곳의 단골인 셈이다.
정치를 하는 내게  찜질방은 아주 유용한 공간이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이만큼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점에서 우선 그렇다.
누구나 맨 얼굴일 수 밖에 없는 특성 때문인지  유난히 허심탄회한 모습인  이웃을 만나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도 찜질방은  최고의 명당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추석 연휴 때 찾은 찜질방에서도 대박을 쳤다.
인생의 삼라만상을 두루 섭렵한 아주머니(70초반 연령대)들을 옆자리에 둔 행운(?) 덕분이었다. 그녀들의 원색적 토로(수다)에는 복잡한 세상사를 단숨에 정리해내는 깊은 내공이 담겨있었다.
다른 찜질 이웃을 통해서도 귀동냥이긴 했지만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 분야를 총망라하는 추석 민심을 수렴할 수 있었다.
민심도 수렴하고 삶의 철학도 음미할 수 있는 찜질방은 역시 좋은 곳이다.

배려가 담긴 말의 중요성을 강조한 A 아주머니는 명절이면 음복을 핑계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리고 나서 나중에 따지면 기억에 없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팔순 시누이 얘기를 꺼냈다. 급기야 식구들이 집안 대소사에서 그 시누이를 만나면 이번에는 또 무슨 말로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될까 전전긍긍하게 됐다며 아무리 가족 간이라도 할 말 안할 말을 구분하는 배려가 중요하다는 취지의 경험을 전했다.
B는   달라진 제사 풍속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제사는 한 곳에서만 지내야 하는데(처음 안 사실이다) 요즘엔 이런 저런 핑계로 제사 주관을 기피하는 바람에 집집마다 제사상이 돌고 있다고 성토했다. 벌초만 해도 사람을 사서 대행하는 모습이 많다며 자신은 이런 꼴이 보기 싫어 진작부터 자식들에게 화장을 당부해 놓았다고 씁쓸해 했다.
어렵기만 한 사돈과의 관계가 고민이라는 C는  화장실과 사돈은 멀리하라는 옛말이 있지만 아파트가 주를 이루는 주거문화의 변화로 화장실이 집안에 놓이게 된 현실을 예로 들었다. 그 같은 세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돈네는 여전히 조심스럽고 어려운 대상이라는 고충을 털어놓았다.  사돈과 해외여행도 함께 하고 식사도 여러 번 나눠 봤지만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다고 했다.  더욱이 혼사를 맺기 전에는 친구사이였는데도  사돈이 되니 더 멀어지는 묘한 관계에 놓여 있다며  융통성 없는 자신의 성격을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親자를 붙이는 대상(친정어머니 등)과 媤자를 붙이는 대상(시누이 등)은 극과 극의 정서라는 D 아주머니의 주장은 난생 처음 듣는 얘기이기도 해서  개인적인 흥미를 자극했다.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시가 쪽은 어렵고 친자가 편하고 좋은데 요즘은 그나마 똑같이 가깝지 않은 관계가 되어가고 있다며 최소한 친가와 시가 관계만 잘 조종할 수 있어도 결혼생활의 90%는 성공한 셈이라는 결론이었다.
자식들이 먹고 살기 바빠 얼굴 보기도 힘들다는 E 의  얘기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추석 명절에도 일을 하는 자식들이 많아져 옛날보다 풍요로운 생활이어서 살기 좋아졌는지 모르지만 삶의 질은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다는 우려 에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 밖에도 주식 때문에 울고 장사가 안돼 울고.... 여기저기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사람들의 탄식이 제일 많았다. 경제적 압박에 못 이겨 집을 줄여 이사하거나  쇼핑품목 줄이는  것으로  갈수록 곤궁해지는 살림살이에 대한  걱정을 대처하는 모습들은  한 사람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박근혜 안철수를 주제로 한 정치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안철수 교수는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좋은 대통령이 될지는 미지수라는 얘기와 박근혜 전 대표는 마음 고생이 많아서인지 얼굴표정이 굳어있다는 촌평도 나왔다. 안교수가 정작 서울대학교 동료 교수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다거나, 여자 대통령에 여전히 유연하지 않은 한계를 보이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내게는 안철수 거품이 많이 빠지고 박근혜 지지자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변해가는 조짐처럼 보이는 측면도 있었다.
결국 우리 경제는 어렵고 계층 간 가족간 대화는 불통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큰 의미의 가족의 틀은 변하지 않은 것 같고 여성 대통령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완전히 불식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대세론을 바꿀만한 획기적인 변수는 없다고 보는 게 현장이 전하고자 하는 진실이라는 생각이다. 

이상이 듣는 재미 때문에 찜질방에서  더운 줄도 모르고 열심히 주워 담은 ‘블로그 거리’의 대략이다.
두 시간 채 못 미치는 시간을 통해 머리 깎고 땀 흘려 찜질해가며 대한민국 민심까지 수렴한 수확은 자랑할 만한 결과물이라는 생각이다.
특별히 반가운 표정으로 달려와 내 손을 잡으며 덕담을 주던 이웃 분들의 얼굴도 내가 거둔 또 다른 수확물이다.
그들은 내게 “이제 홍의원님이 나서면 정치가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동안 너무 많이 쉬었다”며 독려하는 가하면 “돕겠다는 주위의 말에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시라.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는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때로는 지역 현안에 관해 어떤 스탠스를 취하는 게 낫겠다는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선거전략까지 제시하는 분도 계셨다. 
다 고마운 일이고 내게 힘이 되는 말씀들이다.

희망과 걱정이 교차하는 가운데 이제 사람들 생각을 알았으니까 내 생각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그래, 역시 민심은 천심이다.
                                  (2011. 9.14)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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