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19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한예슬과 김진숙



한예슬과 김진숙


어느 핸가 국회의원 선거에 떨어지고 영화 촬영현장 몇 곳을 잠행하며 구경한 경험이 있다.  
그 때의 일로   지금은 없어진 일영역을 배경으로 촬영 작업이 한창이었는데   엑스트라들이  감독의 지시에 따라  반복해서 리허설에 임하고  있었다.  현장엔  욕설에 가까운 반말이 인격 모독 수준으로  고성 속에 난무하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는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문외한이어서인지 내가 보기엔 별 무리없어 보이는 장면도 감독의 추상같은  불호령이 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렇게 여러 번의 ‘컷’과 ‘액션’이 수없는 동일 동작을 주문하며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데 틀 좋은 밴과 함께 주연배우가 도착했다.
그러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지금까지는 동일한 장면을 몇 번이고 되풀이시키며 ‘황제’처럼 군림하던 감독이 시간 없으니까 한 번에 끝내자며 주연배우의 심기를 살피는 ‘이방’으로 돌변해 버린 것이다. 주연배우가 감독에게 작업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자 조금 전까지 조연급과 엑스트라들이 욕먹어 가며 반복해서 연습하던 장면들이 대번에 바뀌는 모습도 이채로웠다. 그렇게 한마디 말로 많은 이들의 노고를 물거품으로 만드는 위력을 발휘하고 표표히 그 자리를 떠나는 주연배우의 뒷모습이 내게는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낙선 직후 인생의 비정함을 곱씹던 터라 더 그랬는지 모르지만 주연배우가 아니면 안 되는 건 영화판이나 세상사나 다를 바 없다며 비감에 잠겼던 기억이 난다.
그 때의 비감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직접 만든 영화 한편 정도는 소장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배우 ‘한예슬 파동’이 잊혀진 과거사까지 떠올리게 했다.  
온갖  소문을 양산했던  그녀의 ‘쿠데타’는 3일 천하도 못 채우고 막을 내렸다. 
그녀의 항복과 사과로  일단은 진정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당초 의도나 정당성 여부와 상관없이 드라마 제작환경의 병폐를 이슈화하는 데는 그나마 그녀의 조연 역할이  순기능을 발휘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한예슬 개인에게는 득보다 실을 안기는 결과로 자리매김 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촬영거부에 대한 명확한 입장표명을 생략하는 바람에 명분을 잃은 게 가장 큰 실책이 아니었나 싶다. 그녀는 자신의 행위가 불성실과 무책임이 전부인 단순 무단이탈인지 대한민국 문화예술 진흥 발전을 위한 고육지책인지조차 분명히 하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자신이 의도하는 바를 좀 더 명확히 구체화했더라면 사정은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이다. 그랬다면 최소한 동료 배우나 스텝들이 냉소적인 반응으로 그녀를 고립시키는 고약한 상황은 막을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비슷한 관점으로 무상급식 파동의 한가운데 서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을 보고 있다.
급기야 중앙당까지 합세하는 바람에 무상급식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 선전전은 정당 간 기싸움 양상으로 번지는  중이다.  집무실 대신 길거리를 선택한 그를 상대로  잘잘못 여부를 가리자는 건 아니다.  다만 그의 선택이 ‘한예슬의 시행착오‘를 반복하게 될까 걱정스러운  건  사실이다.
오시장은 잠재적 대선 주자로 분류되는 만큼   사안마다 최소한의 정치적 입장을 표명 해야 하는 자신의 의무를 방기하고 있다.  주민투표  건만 해도   살신성인의 각오로 이 시대의 중요한 보수이념을 전파하겠다는 사명감의 발로인 건지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염두에 둔 정략적인 발상인 건지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이 간과됐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 한예슬과 서울시장 오세훈은 실책을 범했다. 
불거진 현안에  자신의 신념과 소신을 제대로 입힐 줄 몰랐다.
오시장의 경우 차라리 “대통령이 되고 싶다. 언제일지 모르지만”하는 소신을 보였다면 무상급식 국면에서 상당히 탄력을 받을 수 있었을거라는 생각이다.  
한예슬도 본인의 입장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밝혔더라면 좀 더 쉬운 화해를 이끌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진 중공업 사태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보인 두 사람- 김진숙, 조남호-은  특별하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분명하게 알고 있고 있어서 반대하는 쪽이  더 극렬해진 측면이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적극적으로 알리고자 했던 점은 높이 살만하다는 생각이다.
 오랜 기간 클레인에 매달려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해 벌인 김진숙씨의 사투는 숙연해질 정도다.    
온 몸으로 부딪히면서  일관되게 외쳤고 결국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국민들에 알리는 데 성공했다.   수많은 국민들이 그녀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게 된 건  확실하게 자신의 요구사항을  외쳤던 그녀의 노고 때문이었다.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다.  
청문회에 임하면서 예비답안까지 준비하는 등 본인의 영역을 지키려 애쓰던 조남호 사장의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생각이다. 자신의 부나 회사를 지키려는 자본가로서의 모습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보여줬다. 분명하게 자기가 지켜야 할 몫과 그 몫을 위해 철저했던 그의 처신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우리의 역대 대통령들이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드라마틱했다.
중학생 때부터 대통령이 되겠다던 YS는 꿈을 키우며 자신의 뜻을 이룬 대표적 인물이다. DJ 역시 몇 번의 고배와 고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을 하고 싶다는 집념을 단 한번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다르지 않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을 때부터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대통령을 목표로 하는 속내를 감춘 적이 없다. 끊임없이 설파하다 드디어 대통령이 된 것이다.
자신의 의중을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물론 자신의 숨겨진 아젠다를  드러내고 싶지 않고   화려하게 포장된 겉 취지만 전달하려는  인간의  본능을 통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면에 제시된 이유보다는 숨겨진 부분에 호기심을 보이며 은닉된 무엇인가를 들춰내기 위해 에너지 쓰기를 망설이지 않는 것  역시도 인간의 본능 영역이다. 

갈수록 상호간  사안에 대한 이해가  빨라지고 있다.  보다  더  확실하고 분명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반대가  더 극렬해지는  측면이 있기는 하다.  찬성하는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다.  복잡다기한 사회에서 자기 문제가 아니면 그다지 관심이 없다. 골머리를 써가며 성실하게 들어줄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다.  
약간은 조악해보이고 또 어찌보면 무모해보이기도 하지만   자기 아젠다에  대한 솔직한  입장을 견지할 수 있어야겠다.  특히 정치인에게  있어서는  정말 중요한 요소다.
                              (2011. 8. 19)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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