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26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지하철에서

 지하철에서

가끔씩 숙제처럼 지하철을 탄다.
최소한 지하철 요금이나 지하철 타는 방법 정도는 알고 있어야겠다는 의도로 시작한 일이다. 또 그것이 이 땅에서 선생이나 정치인으로 사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도 하고 있다.
오늘의 프로젝트(?)는 서울역에서 1호선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기였다.
지하철 이용 시 제일 큰 난관은 티켓 구입 과정인데 오늘도 역시나 녹록치 않았다. 3천원짜리 교통카드를 구입하고 부족할 듯 싶어 5천원을 더 충전했더니 어찌된 셈인지 카드 잔액은 5천원뿐이었다. 졸지에 앉은 자리에서 3천원을 날려버린 셈이 됐다.
늦은 시간, 붐비지 않는 지하철에 앉아 느긋한 기분으로 귀가하는 경험은 좀 특별하다.
물론 뉴욕이나 중국에 비해 쾌적하고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의 지하철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사람들 표정을 살피는 재미는 지하철 이용으로 얻을 수 있는 가장 쏠쏠한 덤이지 싶다. 사람들마다 뭔가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완전히 생각 없거나 하는 제각각의 표정으로 저마다의 삶을 반영하고 있는데 이를 유추하고 상상하는 과정이 굉장히 흥미롭다는 생각이다.
 
한가해서인지 오늘은 유난히 물건 파는 분들의 움직임이 많았다.
맨 처음 등장한 이는 2만원짜리 식칼 세트를 파는 노인이었다. 주로 아주머니 승객들에게 눈을 맞추고 상품을 설명하던 그는 내가 쳐다보자 곧바로 내 앞으로 자리를 옮겨왔다. 열심히 이런 저런 설명을 곁들이며 판매에 공을 들였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나마 한 아저씨가 ‘불법행위’라고 일침을 놓자 실랑이 끝에 우리가 앉아있던 칸을 떠나갔다.
두 번째로 우리를 유혹한 이는 접착제를 파는 아저씨였다. 식칼을 파시던 할아버지와는 다르게 제법 체계적인 홍보술을 구사한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접착제 효능과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다른 곳에서 2천원 받지만 1천원만 받겠다는 그의 선전에 잠시 솔깃해지기도 했으니 하는 말이다. 하지만 역시나 하나도 팔지 못하고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다음 칸으로 옮겨갔다.
이어서 찬송가 소리와 함께 구걸하는 아주머니가 등장했는데 졸고 있던 와중이어서 돈통 용도의 플래스틱 바가지만 얼핏 스쳐간 기억 뿐이다. 이 분 역시도 호응을 얻지 못하기로는 앞서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는 결말이었다.
기착지인 의정부역이 가까워질 무렵, 키 큰 청년이 나타나 뭔가 적혀있는 종이를 승객들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내용인즉슨 ‘젊은 녀석이 핏기 없는 모습으로 동냥이나 하는 것 같아 죄송하다. 그러나 희귀병에 걸리는 바람에 부모님 수발도 제대로 모시지 못하고 있다. 도저히 살 방도가 없어 이렇게 나왔으니 외면하지 말아 달라’는 하소연이었는데 이 청년한테는 뭔가 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까 교통카드 사고 남은 돈을 말없이 건넸다.
그 때 순간적으로 내 시야에 돈을 처리하는 그의 손놀림이 포착됐는데 기분이 영 찝찝했다. 마치 누구에게도 동정의 손길을 받지 못한 딱한 상황을 의도적으로 연출하는 것처럼 교묘하고 노련하게 돈을 치우는(?) 솜씨가 불신을 증폭시켰던 것이다.
 
서울역에서 의정부까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의 체험이 정제되지 않은 판매행위에 대한 문제의식을 불러왔다. 무엇보다 최소한 지하철 안의 이런 모습들이 외국인 눈에 어떻게 비춰질까에 대한 고민은 마땅히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혼잡을 유발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승객의 불편을 가중시키지 않는데 무조건 불법행위라고 몰아붙이는 것도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물론 마땅히 근절시켜야 할 현상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제제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이나 제반 비용 등 실효성 측면에서도 좋은 답이 선뜻 나오지 않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이 모든 것을 사회적 책임이나 지하철 관계자 더구나 승객들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결코 해결이 간단치 않다는 결론이다. 다만 사회 전체가 더 건강해지고 시민의식이 깨어있게 되면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해결책을 앞당겨 내놓을 수 있게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양극화 해소와 함께 노인이나 장애인 등 소외계층을 위해 더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지만 아직은 요원한 현실이 문제다. 아무리 유능한 행정가나 정책전문가라도 선뜻 대안을 찾을 수 없는 현실이기에 안타까움이 커질 수 밖에 없다.
내가 목격했던 지하철 모습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미 많이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특히나 지하철 안에서 실적도 없는 불법행위에 목을 멜 수 밖에 없는 삶의 유형이 노인이거나 신체활동에 제약을 받는 이들이 대부분인 현실이기에 사안이 더 심각하다는 생각이다.
 
오늘의 지하철 탐험도 나로 하여금 내 영역 밖의 것들을 배우게 하고 생각할 거리를 줘서 유익했다.
                                (2011. 8. 26)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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