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12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고백하라



고백하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뒤늦은 고백’이 세간의 관심을 끌던 날, 유난히 전직 대통령들과 관련된 흔적과의 조우가 많았다. 물론 내 방에만 해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병풍이나 YS의 대도무문 도자기 등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오늘처럼 한꺼번에 전직 대통령들의 자취를 접하게 되는 건 흔하지 않은 경험이다.
전에 없는 일이어서  묘한 느낌마저 일었다.

첫 번째 만남은 아버지의 정기검진 차 방문한 연대 세브란스 병원 전문의 진료실에서였다.
비뇨기과 검진을 위해 담당 의사 선생님 방을 찾았는데 그곳에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이름이 적힌 빛바랜 화분용 리본이 있었다. 소중히 보관된 느낌이었다. 아마도 김대중 전 대통령 진료를 담당했던 방주인이 그 때의 인연으로 받은 것을 보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김 전 대통령을 존경과 예우가 느껴지는 풍경이어서 인상적이었다.

다음 일정인 ‘자연과 일상회’라는 아마추어 그림 동아리 전시회장에도 전직 대통령의 흔적이 있었다. 이런 일에 익숙지 않아 보였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동아리 회장님께서 본인의 작품을 봐달라고 이끌어 갔는데 거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있었다. 봉하 자택 앞에서 밀짚모자를 쓰고 활짝 웃는 모습을 표현한 도자기 작품 속에 그가 있었다.
내가 보기엔 아마추어 치고는 훌륭하다 싶은 작품이었는데 정작 작가는 노 전 대통령의 인자한 모습을 그려내고 싶었는데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아마도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을 향한 애틋함의 발로가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일파만파 번지고 있는 노태우 전 대통령 회고록 파동을 접했다.
92년 당시 대선 후보였던 YS에게 3000억원의 비자금을 지원했다는 노 전대통령의 회고는 정가를 강타하는 핵폭탄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같은 전직 대통령의 고백이었기에 파장이 큰 건 당연할 터다.
회고록 주장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 몰랐다, 직접 받지 않았다‘고 다양한 반응을 보이던 YS 측도 그나마 이를 입증할 수 있는 녹취록(노 전대통령과 YS의 대화가 녹음된)이 존재한다는 증언이 이어지자 힘을 잃는 형국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인간이 저마다의 삶을 함부로 하지 않는 근본 명제가 될 수도 있겠다.
세월이 지날수록 업적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부각되는 인물이 있는가하면 점점 퇴락해가는 인물도 있다. 때로는 진퇴의 시점을 제대로 선택하지 못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이름’이 적지 않다. 굴곡진 삶의 과정에서 일관성을 지키지 못해 오욕의 낙인을 피하지 못한 회한의 이름도 더러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명예를 얻게 되는 이름들도 있다.
그런 걸 보면 이름을 남긴다고 저절로 예우가 따르게 돼 있는 건 아니지 싶다.  당대의 승리가 반드시 진리로 고착되지  않을 수 있다는  예증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인정받지 못했어도  훗날 재평가의 검증을 통해  화려하게 진리로 부각되는  일도 부지기수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잠깐은 속임수가 통해도 영원히 속이기는 어렵다는 사실이다.
 
궁지에 몰린 YS를 향해 쏟아지는 여론의 향배가 아슬아슬하다.
설마 했는데 그동안 설왕설래 하던 소문들이 당사자의 고백을 통해 확인사살 되는 분위기다.
이 날벼락이 생존하고 있는 당사자에겐  얼마나 황당하고 민망한 재앙으로 작용할까  싶기도 하다. 
이번 일이 그의 말년을 어둡게 하는 신호탄이 될까 심히 우려스럽다. 필경 YS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뒷걸음질 치게 될 것 같아 착잡하기도 하다.
물론 상황과 시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목적도 수단의 불법성을 정당화할 명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만고의 진리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YS 본인의 적극적이고 분명한 입장 표명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그 시절 증언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의 증언이 덧붙여져야겠다.  그것이 역사의 정확성을 지키고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성의 표시가 아닐까 싶다.  더구나 코앞에 주요 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다. 지난 날에 대해 과오가 있다면 깨끗이 털어놓고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이해를 구할 부분이 있다면 설득하면 된다.   임시로 모면하려거나 거짓으로 감추려는 꼼수는 갈수록 불화를 키울 뿐이다.
 
후대에 존경받는 이름으로 남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평가는  늘 두려움의 대상으로 의식되는 것 같다.  
무엇을 하고 있건 후대에 비칠 스스로의 모습을 의식하게 된다. 무슨 행동을 하건 반드시 다시 한번 둘러보게 된다.  사소한 걸음 하나조차도 신중하고 진정성 있는 행보가 되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나의 열망이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는 긍정적   사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2011. 8.11)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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