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20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입보다 귀

입보다 귀
한 지인이 진실성을 주제로 한 대화 도중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을 성토하고 나섰다.청문회장에서의 조회장 모습은 코칭에 의한 이미지 연출에 불과하다며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잠시 발톱을 감춘 재벌의 위선에  온 국민들이 속은 거라며   핏대를 올렸다.  그러면서  만일 한진중공업을 문 닫으라고 일갈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국민으로부터 열광적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얘기까지  했다.
그러나 나는 다른 판단을 했다.
사전 코치를 받아 청문회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식을 얻고자 한 노력까지 비난의 대상이 되는 건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청문회를 대비해 전문가의 조력을 구하는 것이나 재판을 앞두고 변호사를 찾는 행위나 다를 바 없는데  유독 재벌이라서  특단의 잣대로 정죄하는 건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상대의 신뢰를 이끌어내는 화술이 진리나 사실 자체보다 더 중요한 능력으로 평가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아닌가.
 
최상의 결과물을 위해 다양한 코치 기회를 구하는 건  삶의 질을 위한 적극적 노력으로 해석되는 게 맞다. 
특히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의 코치 기능은  개인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오제이 심슨이 ‘살인죄’를 면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변호인단의 유능한 코치 덕분이었다. 이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과도한 변호사 비용 때문에 파산에 이르는 극한 대가가 따르기는 했지만) 또 잔 딜로리안처럼 캐릭터 코치까지 영입해서 치밀한 설정으로 배심원단의 마음을 움직여 무죄방면이 된 경우도 있다.
그야말로 자본과 코칭의 환상적인 결합이 맹위를 떨친 사례들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본이 만들어낸 상황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본가의 편을 들 수 밖에 없도록 영향력을 발휘하는 상황이라고 하는 게 맞는 말일지 모르겠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제일 적나라하고 세부적인  코칭 대상은   대통령 후보다. 
특히 선거 기간에 옆에서 지켜본 바에 의하면 말하기는 물론 걸음걸이부터 시작해서 화장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코치들이 달라붙어 후보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고 교정한다. 그러면 후보는 마치 말 잘 듣는 아이라도 된 것처럼 모든 코칭 코멘트에 순응하는 모습이다. 국민의 마음을 사기 위해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대통령에 당선되면 모든 상황 모드가 달라진다고 한다.  당선 순간부터 3개월 이내에 후보의 5감이 오작동 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후보시절만 해도 ‘사람’이었는데 대통령이 되면 거의 ‘하나님’ 경지가 되어 누구의 ‘코치’는 물론 감독을 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국민의 마음을 사려고 노력하던 후보 시절 기억을 깡그리 잊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선호하면서   눈과 귀가 닫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굳이 밝히지 않더라도 누구나 짐작하는 대로다.
 
이는 대통령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선거전에 나선 후보는 물론이고 청문회장에 나서야 하거나 법정에 서야 하거나 하는 등의 목적을 앞두고 있을 때는 양처럼 순하게 전문가들의 코칭에 순응하다가도 목적을 이룬 순간부터는 언제 그랬냐싶게 그동안의 조력은 안중에 없이 제멋대로가 되기 일쑤다. 그야말로 화장실 갈 때 다르고 올 때 다른 인심을 보이는 것이다. 특히 높고 힘이 센 자리일수록 그런 경우가 심하게 두드러지는데 인간의 한계로 치부하고 말기엔 파장이 만만치 않다.
목표 달성의 성취가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적 비극의 시작으로 이어지는 형국이니 하는 말이다.
목표 달성이 ‘고생 끝 행복 시작’ 등 단순명제 충족에 그치기보다 추락의 또다른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역사와 전임자들이 온몸으로 생중계 해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된 일인지 막상 그 자리에 들어서면 대부분 그 단순한 진리를 깨우치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슷한 시기에 수감생활을 하던 두 전직 대통령이 당시 법정에서 처음 만나 나눈 대화가 공개됐다.
전두환 전대통령이 먼저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그 구치소에서는 간수들이 계란후라이를 해주느냐”고 물었고 이에 노 전대통령이 “안준다”고 하자 전 전대통령도 “나도 안주더구먼" 했다는 것이다.
코미디 같은 간단한 내용이지만 생각의 여지가 많은 건 나만의 느낌만은 아닐 것이다. 두 분 대통령이 처음부터 이렇게 원초적인 심정으로 대통령 직무에 임했다면 더 좋은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마찬가지다.  최소한 듣는 귀라도 제대로  열어두었더라면...
 
'코치를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코치를 안 받는 것이 문제다.'
아마도 구치소에 있던 두 전직 대통령으로 하여금  가장  뼈아픈  회한에 잠기게   만든  대목이   아니었을까 싶다.
                                  (2011. 8. 19)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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