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20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


미국의 한 타블로이드 잡지 보도로 촉발된 스티브 잡스의 건강상태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인콰이어러지’는 최근 머리숱이 다 빠지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충격적인 보도사진(정작 얼굴은 확인되지 않은)과 함께 스티브 잡스가 ‘6주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는 주장으로 파장을 일으켰지만 곧 바로 이를 뒤집는 이런 저런 정황이 제기되고 있어서 진위 여부를 가리기 가 쉽지 않게 됐다.
더구나 최근 잡스가 정보기술업계 최고 경영자들과 함께 백악관 간담회에 참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는 잡스의 ‘절박한’ 근황보도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추론이 대세인 분위기로 반전되고 있는 것 같다.

평소 스티브 잡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스티브 잡스와 관련한 국내의 언론 보도를 바라보는 심경은 영 불편하다. 특히 애플사와 경쟁관계에 놓여있는 ‘삼성’이 그 배경일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가시처럼 목에 걸려 있다.
잡스의 ‘6주 시한부’ 논란만 해도 그렇다.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뉴욕 타임즈 등 외신에 비하면 우리 언론은 지나치게 논란을 부추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백악관에서 배포한 자료사진을 두고서도 ‘오바마, 투병 중인 스티브 잡스와 마지막 인사?’라거나 ‘스티브 잡스, 죽기 전 마지막 인사?’라는 제목까지 등장했다. 선정성도 선정성이지만 인간에 대한 예의 측면으로도 결례가 되는 셈이다.
참으로 엄청난 창의성(?)이 발휘된 결과물이라 하겠다.
사실을 파악하려는 노력보다는 선정적인 억측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가 역력한 이런 제목이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문득 부끄러웠다. 그 어이없는 상황이 대한민국 국민 정서의 일단으로 비춰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마저 일었다.

언론 보도 문제는 비단 스티브 잡스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국내 사레만 해도 지명도 있는 인물들이 그릇된 언론보도로 인한 구설수로 치명타를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결코 간단하지 않은 폐해로 당사자가 당하는 피해규모는 상상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심할 경우 하루아침에 한 인간의 인생항로를 뒤바꾸는 일도 부지기수니 하는 말이다.
그 여파 때문인지 왜곡, 오도 등으로 대표되는 황색저널리즘의 참을 수 없는 천박성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 현실이다. 건전한 매스미디어까지 혐오 대상으로 전락될 만큼 언론에 대한 기피의식이 날로 심각해져가고 있다.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언론이 얼마나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 지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언론 간 경쟁이 문제다. 경쟁이 과열되면서 특종에 대한 조바심이 생기고 이로 인해 광고시장의 압박 등을 이유로 언론이 사회의 흉기로 변질되는 현실을 목격하게 되는 일이 비등해지고 있다. 심각한 양상이 아닐 수 없다.

평소 친분이 있는 판사 한 분이 100건의 사건 중 99건을 명판결하고 나머지 한 건을 실수하기보다는 99건을 평범하게 판결하더라도 단 한 건의 실수를 막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언론에도 고스란히 적용시켜야 할 불문율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많은 특종으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성과를 올렸다 해도 한 사람의 삶을 망가뜨리는 오보를 냈다면, 특히 의도적으로 행해진 결과라면 언론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깊은 사고가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 알 도리가 없다.
다만 인명을 대상으로 한 보도 접근은 아무리 신중해도 부족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작은 탐욕이 돌이킬 수 없는 패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 같다.
자기 편의만 충족되면 남이야 어찌되던 알 바 없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바로 서고자 깨어있는 언론의 역할이 더 없이 소중해지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병가에 들어가 있는 그의 쾌유를 빌고 있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그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하루 빨리 병마를 이기고 자신의 일터로 되돌아오길 바란다.

아이폰(애플사)과 갤럭시폰(삼성)의 대결 양상이 대한민국 언론의 국제적 ‘망신살’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노파심에서 이 글을 썼는데 기우였으면 좋겠다.

(2011. 2. 20)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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