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24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청년에게 희망을

청년에게 희망을

사상 최대의 청년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는 결코 간단하지 않은 현실이다.
청년 실업이 금기의 선을 넘어선 후유증을 체감하고 있다.
도처에 갈 길을 잃고 방황하는 젊은 무리들이 널려있다.
그들의 안타까운 모습이 시대의 우울을 더하고 있는 요즈음이다.
선배 세대로서 그들에게 좀 더 희망찬 출발을 마련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마음이 무겁다.
졸업을 하고 사회로 나서는 제자들에게 건네는 축하 인사조차 조심스러울 정도다.
졸업이 풍찬노숙의 사지로 내모는 또 다른 음모의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솔직히 있다.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취업 현장의 경쟁률도 가슴을 덜컥 내려않게 만든다.
9급 공무원 공채 경쟁률이 93:1을 기록했다는데 아마도 많은 이들에게 예사롭지 않게 들렸을 것이다. 정년 보장의 틀이 무너진 취업환경이 상대적으로 남녀차별이 적고 신분이 보장되는 공무원 직종을 선호하게 만들었을 테지만 그만큼 심각한 청년 실업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반증일 것이다. 교육 일선에 있는 입장으로서는 젊은이들이 하고 있는 고민의 일단을 보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지구촌 곳곳이 청년 실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형국이다.
주지하다시피 이집트의 30년 독재를 무너뜨린 촉발점은 일자리를 얻지 못한 한 청년의 절박한 구호에서 시작됐다. 청년 실업이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반증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점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청년 실업 자체보다는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병폐부터 해결하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할 수만 있다면 빈부격차부터 해소하는 게 왕도다.
가장 무서운 절망은 빈곤의 악순환 앞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꿈을 포기하고 무릎을 꿇게 되는 일이다. 젊은이들을 좌절에 빠뜨리고 의욕을 떨어뜨리는 빈부격차부터 바로 잡아야한다. 따라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다고 본다.
도대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평생 집하나 제대로 장만할 수 없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 자식하나 제대로 교육시킬 여건이 안된다면, 그 어떤 최선의 노력으로도 낙오 대열에서 벗어날 방도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면 무엇으로 꿈을 세울 수 있겠는가.
결국 결혼문제가 됐건 자식문제가 됐건 취업문제가 됐건 인생의 그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게 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할 것이다. 좌절로 인한 깊은 상처가 한 인간의 삶 전부를 망가뜨릴 수 있는 치명적 독성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럴 진데 아무리 세계는 넓고 할 일이 많다고 외쳐본 들 약발이 먹힐 리 없다.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젊은이들의 현실이 안쓰럽다.
경기불황과 청년실업도 모자라 사회적 부양책임도 이들 세대에 떠넘긴 꼴이 됐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이 그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직격탄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가볍게 시작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후원과 따뜻한 격려로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줘야 하는데 출발도 하기 전, 무거운 짐부터 지워준 꼴이 됐다.
안팎으로 살기 힘들다는 아우성이 넘치고 있다.
다른 나라와의 생존 경쟁이 즉각적인 현실로 반영되는 이 시점에서 차세대를 책임질 젊은이들에 대한 관심이야말로 미래를 위한 가장 적극적인 투자가 아닐까 생각된다.
지금은 대한민국 전체가 ‘청년 프랜들리’ 정신으로 그들을 돌봐야 할 때다.
젊은 세대들이 창업 등 새로운 시도를 통해 과감히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이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나 여건을 만들어 주도록 관심을 가져야겠다.
그들의 고충에 귀를 기울이고 짐을 덜어주자.
우리 모두 젊은이들이 마음 놓고 자기 포부를 펼칠 수 있는 든든한 뒷배가 되도록 하자.
무엇보다 계층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노력이 젊은이들이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하는 큰 지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 땅의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도록 하자.

(2011.2.25)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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