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27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말



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또 말에 있어 책임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나 신중함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싶다.
우리의 말은 한번 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하고 특별히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적으로 하는 말은 더더욱 신중할 수 밖에 없다.
직업상 단상 연설이 일상이 되다시피 하는 나 같은 사람은 소재에 대한 고민이 늘 머릿 속을 맴돌고 있다. 왠만큼 반복하면 경지에 오를 만하건만 아무리 많이 반복해도 결코 만만해지지 않는 현실이기도 하다.
주로 공적인 견해를 밝혀야 하는 정치인의 경우, 말에 대해 책임을 묻는 정도가 간단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맹자는 말이 쉬운 것은 결국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그의 말이 백번 옳다. 특히 직업상 하루에도 몇 번씩 축사나 격려사를 해야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예사롭지 않게 들리지 않는다. 적지 않은 정치인들이 순간의 ‘말실수’로 정치생명을 잃는 불운을 당했던 것도 사실이다.

16대 국회가 끝나갈 무렵, 국회의장단 일원으로 북 구라파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 때 함께 갔던 선배 정치인 모씨가 대중을 향해 연설을 하다가 구체적인 생각이나 단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대충 아무 이름이나 둘러대고 넘어가는 게 현명하다는 조언을 내게 해 준 적이 있다. 연설을 듣는 대중에게 중요한 건 사람 이름 등 개인 인적 사항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다는 인식의 발로였다.
그런데 서생 출신인 나는 그 선배 정치인과는 다른 생각을 적용하며 살고 있다. 직업적 특성 때문인지 주요 사안의 ‘팩트여부’를 상당히 세심하게 따지는 편이고 또 확신이 서지 않을 경우 사용하지도 않는다.
오늘 축사자로 참석한 방송통신 대학 입학식장에서 있었던 해프닝에도 이 같은 나의 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됐다고 볼 수 있다.
문제의 발단은 나보다 먼저 축사에 나선 분이 통신대 신입생들에게 오바마 관련 에피소드를 인용하면서 오바마가 하버드 대학을 나왔고 예일 법대에서 법학박사를 학위를 받았다고 잘못된 (하버드가 아닌 콜럼비아대 출신이었고 예일대가 아닌 하버드 로스쿨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에피소드를 인용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 것이 그냥 넘길 수 있는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는 판단이 들면서 나를 딜레마(이를 바로 잡을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한)에 빠뜨린 것이다.
고민이 시작됐다. 무엇보다 그 자리가 방통대 신입생들의 입학식이었기 때문에 교육의 연장선 차원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더구나 당사자가 다른 곳에서도 반응이 좋았다며 앞으로 계속 이 소재를 인용하겠다는 뜻을 밝힌 점도 나의 초조함을 자극했다. 지금 바로잡지 않으면 이 자리에 참석한 학생들은 물론 축사 당사자도 계속해서 오류를 정정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다는 위기감(?) 같은 게 순간적으로 내 마음을 급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오바마는 컬럼비아 대학 출신이고 예일 대는 간적이 없고 하버드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고 오류를 정정했다.
그러나 막상 오류를 정정하고 나니 마음이 불편했다. 평소 다른 사람과의 대립각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이 파격적인 결행이 부담을 주는 건 너무나 당연할 터였다.
분위기가 싸해지지 않도록 무형의 노력으로 나름 최선을 다했고 예의로 배려한다고 애를 썼지만 혹시 받아들이는 쪽에서 언짢게 생각하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평소 내가 알고 있는 바대로라면 화를 낼 인품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생각의 단초를 제공하고 빠르게 공감대를 형성시키는 에피소드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한번 잘못된 인용이나 해석이 제2, 제3의 오류를 범하게 할 수 있는 전파력을 생각할 때 특별히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바로잡는 건 옳은 행동이었다는 결론으로 오늘의 찜찜함을 털어냈다.

나 자신 역시 지금까지 혹여 허언에 불과한 말의 성찬으로 다른 이들을 실망시킨 적이 없었는지 스스로를 점검했다.
과유불급이라고 잘못 인용된 에피소드가 본뜻을 왜곡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을 말의 중요성이다.


(2011. 2.26)
....홍문종 생각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