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9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 말로써 말 많으니



말로써 말 많으니

 

의원총회에 참석했다.
아무리 바빠도 의총엔 꼬박꼬박 참석하겠다는 생각이다. 등원하면서 제대로 일하는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개인적으로 다짐한 바 있는데 의총 참석은 이를 실천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국회 개원 일정이 지연되는 바람에 국민들께 야단맞고 있는 처지지만 칭찬받는 19대 국회를 만들겠다는 의욕이 크다. 기필코 사랑받는 정치의 전형적인 본이 되고 싶은 소망이다.

의총은 150여명이나 되는 당 소속 국회의원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하는 빌미가 됐다. 서로의 안부를 묻느라 부산했는데 반가움을 표현하는 방식도 제각각이었다. 앉은 자리 주변으로만 인사를 나누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누군가는 먼 자리까지 찾아가는 적극성을 보였다.
나 역시 미소와 목례로 군중 속에 섞여 들었는데 그 와중에도 관전자가 되어 의총장을 탐색하고 있는 스스로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내가 속한 무리를 국외자의 시선으로 관찰하는 건 내 오래된 습벽이다. 짐작컨대 자주 학교를 옮겨다니며 적응해야 했던 어린 시절 환경과 무관하지 않지 싶다.
실제로 나는 새 환경 정착의 성공 여부는 동료들과의 관계 설정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있었다. 동료로 섞이기 위해선 개개인의 관심사나 특성부터 파악해야 하고 그들의 얘기를 통해 얻은 정보가 관계를 수월하게 해주는 묘약이 된다는 사실까지도.

의총이 진행되는 동안 단상에서 의욕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동료의원들을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초선 당시의 내 모습도 떠올랐다. 처음 국회의원이 된 그 때는 무슨 근거로 세상의 전부를 다 알고 있다는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지금과는 참 많이 다른 모습인데 세월의 무게가 주는 변화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분명히 달라졌다.
무엇보다 말하기보다 남의 얘기를 듣는 시간이 많아졌고 생각보다 내 자신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 것, 심지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조차 실상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실상을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이 그것이다.

다음은 내 관전 안테나에 잡힌 동료의원에 대한 감상평이다.
우선 지도부 반열의 의원님 품평부터.
유머와 따뜻한 너그러움으로 덕장의 면모를 발휘하며 우리를 이끌어주시는 A의원님은 조심성도 좋지만 애매모호하기만 한 화법이 영 불만(?)이다. 답답하고 유약한 느낌이 혹여 흠결있는 품성으로 비춰질 수 있을까 걱정이다. 조만간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줄 때가 있겠지... 기다리는 중이다.
친절하고 자상한 설명으로 해박한 지식이 더 돋보이는 우리의 지장(智將), B의원님 역시 다 좋은데 박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맹장이나 용장의 풍모를 아쉬워하면서도 괜한 박력 타령이 지나친 욕심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감히 하늘같으신 선배님들을 이렇게 평해서 죄송합니다)
발언대에 자주 출몰하는 초선 의원 C는 자기가 올라와 있는 링의 분위기 파악이 아직 덜 된 것 같아 걱정스럽고(동료의원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모르는 듯) D의원은 자신의 이미지 각인을 위한 조급함 때문에 잘 정제된 개인적 장점들을 고작 ‘인증샷’ 도구로 전락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어 안타깝다. 자기최면에 걸려 정확한 상황 판단이 어려운 지경인 듯 싶다.
E의원은 현장감이 넘치는 제안을 들고 발언대에 섰는데 공감은 가지만 사안의 경중을 계량하지 못해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지방의회 정도에서나 관심 끌 사안을 국회에서 제안하니 그저 한담 정도로 흐르는 분위기였다. 아무튼 명확한 의제 설정이 중요하다는 현실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스스로를 거물급 정치인으로 우대하려는 인식 때문에 희화화를 자초한 F의원은 완전 코미디다. 자신의 위상(?)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발언 내용과 액션의 조화를 깨서 곤혹스러운 처지가 됐다.
반면 적당한 유머와 센스를 섞어가며 정치적 밥상을 먹음직스럽게 차려 좌중을 홀리는 솜씨를 보인 G의원은 확실히 군계일학이었다. 다만 그렇게 명쾌하고 훌륭한 정치적 구상이 있는데도 18대엔 뭐하느라 이슈 파이팅을 하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있었다.

나도 모처럼 발언대에 올랐다.
반복된 주제일 수 있지만 그동안 생각해왔던 몇가지 사안에 대해 얘기했다.
언론 노출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일부 의원들의 심각한 언론 중독증 행태를 지적했고 지도부를 동네북처럼 질타하지 말자고도 했다. 출범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지도부 불평으로 분란을 자초하기보다 우리가 지도부를 위해 무얼 해 줄 지를 고심하는 쪽이 훨씬 생산적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동안 오픈프라이머리 경선을 주장해 왔던 대권주자들의 의총 불참을 꼬집었다. 당내 의원들이 다 모인 자리인데도 오픈프라이머리 경선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대권주자는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아 진정성에 의심이 갈 정도였다.
역시나 뒷맛은 씁쓸했다. 괜히 나섰다 싶었다. .

옛 성현은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하는 가르침으로 말의 부정적 측면을 경계토록 했다.
정치인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여야 할 가르침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처음 정치에 입문했을 때 관중과의 눈맞춤이 없는 정치인의 연설은 죽은 연설이라는 한 선배 정치인의 가르침을 지금껏 잊지 않고 있다. 정치적 일정이 아니더라도 평소 연설 기회가 많은 내가 매번 처음 연단에 나서는 것처럼 치열한 심정으로 연설에 임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의총장에서 동료의원들의 신상발언을 들으면서 ‘이들이 단상에 나서 발언하기 전에 충분히 고민했을까? 치열한 준비과정을 거치고 나온 것일까?’ 그런 생각을 했다.
어차피 말의 성찬이 주를 이루는 국회에서 정치인의 발언은 주요 의정활로일 수 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다음부터는 조금 더 지켜보면서 더 배우고 더 생각하고 더 준비한 다음에 입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이다. 말 잘하는 국회의원보다 의미있는 내용으로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말을 할 줄 아는 국회의원이 되어야겠기에.
그것은 나의 또 다른 다짐이 되었는데 ‘말’의 릴레이로 2시간 훌쩍 넘긴 의총장에서 유일하게 건져 올린 성과물이라고 하면 지나치게 각박한 건가?

(2012. 6. 9)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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