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7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주폭과의 전쟁



주폭과의 전쟁

 




여의도 정치에 첫 발을 들여놓던 그 무렵,  대한민국 정치력의 절반은 술에서 나오나? 그런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 모임이 있다하면  담배연기가 난무하는 술자리가 태반이었다. 술 마시는 과정을 공동화하면서 친화력을 강화하고 정치적 입지를 키우는데 술 만 한 게 없다는 정서가 주를 이루는  듯 했다. 

흡연하는 정치인들도 많았다. 지금은 작고한 L의원과 M의원은 골초로, 국회의장을 지내신 P의원과 원내총무를 역임하신 K의원은 애주가로 명성을 날렸다. 당적을 바꿔 야당 대권주자로 나선 모 의원도 만만치 않은 주량을 자랑하던 기억이 난다.

예나 지금이나 술을 마시지도, 담배를 피지도 않는 나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술이   일상인 여의도 정가에서 비주류를 고수한다는 건 강단이라기보다 무모한 용기에 속하는 일이었다.   특히나   ‘주력(酒力)이 경쟁력’으로 인정받는  분위기에서는 더욱 그랬다.  자칫하면 고립될 지 모른다는  위기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무엇보다 주어지는 술잔 처리가 관건이었다.  초선 입장에서 하늘같은(?) 선배의원들이 애연, 애주하는 자리에서 따로 놀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국회에 출입하는 반장급 기자 열댓 명과의 폭탄주 경연대회에서 일등을 거머쥐는 ‘전설’을 썼다면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술 잘한다는 기자들이 끄덕도 않고 폭탄주잔을 비우는 내게 두 손을 들고 나가 떨어졌다.
그러나 이제 와 고백하는데 그 당시 저 홍문종이 마신 건 폭탄주가 아니었다. 폭탄주하고 색깔이  같은 우롱차를 마셨을   뿐이다.  ( 대학 다닐 때부터 생존 차원으로  써먹던 수법이니  너른 이해 바란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내가 술을 잘 마시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단언하건데 지금까지 성찬식 등 특별한 경우에 마시는 와인 이외에는 술을 마신 적이 없다. 

술 예찬론이 없는 건 아니다.
처칠은 ‘알코올이 빼앗아 간 것 이상으로 알코올에서 얻었다’ 고백했고 칸트는 ‘또 하나의 도덕적 성질, 마음의 솔직함을 운반하는 물질’이라고 예찬했다. 심지어 대 음악가 브라암스는 임종하는 순간, 술 한 잔을 청해 마시고 ‘아, 술 맛이 좋군. 고마워’란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시선(詩仙)으로 불리는 이태백의 주옥같은 시들은 대부분  술을 매개로 탄생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다.  친목도모의 매개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절대우위의 강자로 술을 꼽는 이가 적지 않다.  정치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통로가 되는 게   사실이다.
초선의원 시절, 이모님 친구 되시는 J의원님과 이스라엘 정부 초청을 받아 여행길을  동행한 적이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셨던  J의원님은  간간이 술을  드셨는데 환갑을 훌쩍 넘겨 혼자 되시고 난 후 술을 알게 되었다는 그녀의 고백에 나의  순진무구(?)한 결심이 흔들릴 뻔한 기억이 난다.   알코올과  함께 만들어 내었던   밀월여행(?)의 추억이   술의  순기능을 이해시키면서  그동안의  선입견을 바꾸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이 언제나 친근한 이웃의 얼굴로만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건 주변의 여러 경험이 말해준 바 있다.  
아닌 게 아니라 180cm에 가까운 거구로 관우, 장비를 연상시키던 친구 아버님은 60도 안된 59세 나이에 명을 달리하셨다. 워낙 약주를 좋아하신 게 화근이었던 것이다. 평소 팔십까지는 너끈히 살 수 있다는 사주팔자를 입버릇처럼 내세우며 당신의 장수를 호언장담하셨지만 술 앞에 장사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여주셨다.
오래 전 우리 동네에 있던  정미소도  술 때문에 패가한 대표적 사례로  회자되는 집이다.
성실한 아버지 덕분에 의정부 일대에서 소문난 부잣집이었지만 일찍이 술에  빠져 알콜 중독자가 된 아들이  그 많던 재산 다 날리고 흉흉한 뒷소문만 무성하게 한  사실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길을 잘못 든  아들이 스스로는 물론 부모형제의 삶과 집안 전체를 망가뜨린 것이다.

술에 관한  추억을  자극한 건   우연히 눈에 들어온 거리의 플랜카드였다. 
‘주폭(酒暴)과의 전쟁’ 운운하는 내용이 술로 곤혹스럽던  순간을 떠오르게 했다.    
처음엔 조폭을 소탕하겠다는 의미인 줄 알았는데 술 취해 부리는 행패를 근절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문구였다. 기왕에 경찰청에서 본격적으로 조폭소탕에 나섰다는 뉴스가 있더니 드디어 행동을 개시했구나 싶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은 씁쓸했다. 사회적 피해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주폭이라는 신조어까지 들고 소탕작전에 나섰을까 공감이 가면서도 이제는 술자리조차 범죄행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각박한 세상이 되었다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비록 비주류지만 술자리는 끝까지 지키자는 개인적 신조 덕분에 적당한 음주가 생활의 윤활유가 되는 모습도 종종 목격한 바다.   그런 경험이 조폭과의 전쟁을 바라보는 마음에 구름을 끼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

과유불급.
주변의 술 문화를 접하면서  늘  하게 되는 생각이다. 
술자리에서도 그렇지만  경찰청의 이번  프로젝트에도  반드시   필요한 처신이 아닐까 싶다. 
최소한 빈대 잡다가 초가삼간 태우는 불상사는 없어야 할테니까. 
그렇다 해도 대법원에서  주폭 행패에 관대했던 기존과는 달리   가중처벌할 수 있는 양형기준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은 반갑기 그지없다.                   
             

                                                                        


(2012. 6. 17)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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