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18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 냉면 한 그릇

냉면 한 그릇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행이 결정되었을 당시 가장 크게 대두된 현안은 나의 결혼문제였다.
결혼을 시키지 않고 혼자 보내면 혹여 서양 며느리를 얻게 될 지도 모른다는 부모님의 노파심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단순히 걱정만 하셨던 게 아니라 절대로 아들 혼자 (유학을) 보내지 않겠다는 당신들의 완강한 의지를 행동으로 옮기셨다. 며느리 감의 조건을 달아 나를 맞선 시장에 내놓은 것이다. (덕분에 겹치기도 불사하며 20여명에 달하는 맞선녀와의 스케줄을 소화해내는 고충을 감내해야 했다)
당시 ‘외국인 절대 불가’를 외치시던 부모님은 평범한 외모와 고집스럽지 않은 성품, 그리고 적당한 연령대(당시 결혼적령기인 24세 정도)를 며느리 감의 조건으로 내세우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생각해보면 시대적 상황마다 고비를 거치면서 가치관의 변화가 불가피했다는 생각이다.
그 때문인지 자식들 결혼에 대한 나의 생각은 부모님 시절의 그것과 많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당시 부모님께서 내 결혼과 관련해 가지고 계셨던 기준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라고 본다.
미국에서 유학하던 1980년대 초반 무렵만 해도 성격차이로 이혼을 결정하는 미국인들을 보면 ‘미국이 곧 망할 징조’라고 할 만큼 받아들이기 힘든 면이 있는 게 사실이었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당시 부모님은 부부가 서로 다른 의견으로 문제에 봉착했을 때 얼마나 이해하거나 양보할 수 있고 또 서로의 생각에 근접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느냐에 관심을 두셨던 듯싶다. 국적이나 나이, 성품 등이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력보다는 두 사람이 부부로 살아가면서 하나가 될 수 있을 지 여부가 성공적인 결혼의 조건으로 판단하신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얼마 전 전유성. 진미령 커플이 오래 전 헤어졌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이목을 끌더니 이번에는 그 결별 사유가 새삼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냉면 한 그릇 먹을 시간조차 기다리지 못하는 남자가 어떻게 내 인생을 책임져 줄 수 있을까 하는 좌절감에 이혼을 결심하게 됐다는 진씨의 고백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전유성씨의 광팬까지는 아니더라도 왕팬을 자처하는 나다. 그가 어눌하게 쏟아내는 말에서 번뜩이는 재치와 삶의 정곡을 찌르는 혜안을 느끼게 되는 건 비단 나 한사람만의 경험이 아닐 것이다. 기품 있는 외모와 음유시인 같은 느낌의 진미령씨 역시 평소 호감을 가지고 지켜보게 되던 분이다. 특히 한때 한미관계 업무를 함께 추진했던 그녀의 선친과는 적지 않은 연륜 차이에도 불구하고 친밀하게 지낸 사이였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의 인연이 거기까지 밖에 되지 못해 안타깝다는 생각이다. 두 분 공히 남에게 보여주는 삶을 사는 신분인 만큼 각자의 길에서 자신의 최선을 끄집어 내는 삶의 주인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별 외에는 또 다른 해결책은 없었던 것일까 싶어 자꾸 서성거리게 되는 마음이다. 나를 포함한 요즘 사람들이 지나치게 자신의 삶을 가벼이 여기는 행태도 개탄스럽지만 개인의 삶에 대한 애착을 끊어내지 못하는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공포감으로 엄습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현실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결혼관과 직업관을 어설프게나마 짐작하게 만드는 바로미터가 된다.


한 개인의 삶이 모두의 삶보다 우선되는 게 당연하다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그것이 21세기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그 어떤 가치보다 앞서거나 양보할 수 없는 절대치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인이나 사회의 가치 변화가 인간의 전생애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과 후회로 이어질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그렇다.
나는 지금 현실을 향해 창의력이나 독창성보다 남에 대한 배려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어딘가 모르게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기성세대로 몰릴 수 있지만 남에 대한 배려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평가 기준 자체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주변부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지나치게 속단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솔직히 하고 있다.


냉면 한 그릇 먹을 시간도 기다려 주지 못하고 또 그런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조급함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결국 너와 나 모두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돌 던지기를 서두를 게 아니라 현재를 향한 물음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다볼 수 있는 계기로 삼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다. 

(2011. 6. 18)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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