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8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오뎅집

오뎅집




오늘 점심 메뉴는 의정부 부대고기였다.
강연 차 경민대학교를 찾은 개그우먼 박경림씨가 선택한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찾게 된 곳이 의정부 최고의 부대고기 명소, ‘오뎅집’이었다. (의정부 부대고기의 3대 족보 하면 부글부글 찌개로 끓여내는 덜매운 맛의 ‘오뎅집’, 볶음 형태로 나오는 ‘부산집’, 맵고 싱겁고 등의 맛 조절이 가능한 ‘형네집’을 들 수 있다. )
박경림씨의 감탄어린 추임새가 아니더라도 오뎅집은 52년간 한 자리에서 부대찌개 맛을 천착해 온 집답게 언제 찾아도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곳이다. 특히 77세 허기숙 할머니의 손끝에서 예술처럼 피어나는 전통의 맛이 3대를 잇고 있다는 자부심과 어우러져 남다른 기쁨을 주는 곳이기도 하다.
오뎅집의 명성은 처음 불을 지피는 순간부터 찌개를 끓이는 과정은 물론 양념까지 일일이 챙기시며 맛에 관한 한 조금의 양보도 허락하지 않는 주인의 단호한 장인정신에서 비롯됐다는 생각이다.
어릴 때부터 단골로 드나드는 내게는 색다른 덤이 주어지기도 한다.
미래에 대한 걱정을 곁들여 꼼꼼히 근황을 챙겨주거나 자주 오지 않는다고 야단치는 허 할머니의 애정어린 관심에서 우리시대 어머니 모습을 볼 수 있는 순간이 그것이다.









슬프고 가난했던 우리의 아픈 시대상황이 반영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의정부 부대고기가 우리에게 전하는 뉘앙스는 특별하다. 부대고기가 미군이 먹다 남긴 음식을 한데 모아 끓인 ‘꿀꿀이 죽’에서 비롯됐다는 유래 때문에 더 그런 측면이 있기는 하다. 꿀꿀이죽에서 좀 더 발전한 것이 미군들이 남긴 고기를 얻어다가 만든 부대고기인데 먹을 것이 귀했던 당시로서는 최고의 음식으로 대우를 받았다.
그 부대고기가 상품화 과정을 거치면서 오늘날 의정부를 대표하는 부대찌개가 된 것이다.
그런 만큼 ‘의정부 부대찌개’ 대신 ‘의정부 찌개’로 음식명을 바꾸는 등 민감하게 반응하는 배경과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일단의 고민이 이해되지 못하는 바도 아니다.
사실 전후 세대인 우리로서는 꿀꿀이죽에 대한 직접적인 기억이 없다. 다만 선배님들의 경험담을 통해 그나마 꿀꿀이 죽 조차 제대로 먹을 수 없었던 당시의 어려운 형편을 짐작하는 게 고작이다. 아침나절이면 동이 나버린 빈 그릇을 아쉬움으로 바라보던 기억들을 전해듣다 보면 그 불우했던 시절이 상흔을 자극하게 되는 게 무리가 아니지 싶기는 하다.
당시 미군부대 주변에서 만날 수 있었던 새알 초코렛, 퍼모스트 아이스크림, 츄잉껌 등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던 간식거리에 대한 기억도 생생하다. 미군이 지나가면 “깁미 쵸코렛”하면서 쫓아다니던 선배나 친구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지금도 동남아 현지에서 뭔가를 달라고 손을 내미는 아이들을 보면 발길을 떼지 못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인 것 같다.


지금은 장인의 시대라기보다는 저마다 '나 잘났다’를 외치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이든지 ‘빨리’ ‘크게’ ‘한탕’에 경도된 움직임이 트렌드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그러다 보니 묵묵히 한길을 걷는 사람들이 각광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외면당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시대가 됐다. 급변 그 자체로 견인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하면 찰나에 강한 젊은이들의 발빠른 적응력(?)을 나무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어찌 보면 그 중 일정정도는 반짝이는 창조성이나 독창성으로 간주하고 받아들이는 여유나 아량에 대한 준비는 기성세대인 우리들의 몫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자신의 가치를 고수하고 지켜온 사람들에 대한 예우가 등한시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그런 사람들이 인정받고 받들어지는 세상이야말로 인간의 삶을 풍족하게 해주는 기본이 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 우리의 현실을 흔들고 있는 부산저축은행이나 반값등록금 사태를 판단하는 과정에서도 필요한 시각이 아닐까 싶다. 좀 더 긴 안목으로 헤아리려는 사회적 노력이 있어야겠다.
당장의 이득이나 박수갈채에 집착한 나머지 단편적인 사고에 기대려한다면 분명 새로운 불행의 시작을 자초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아무도 내일을 준비하지 않을 것이고 더 나아가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시대적 상황논리에 충실하면 그만이라는 안일함은 백번 경계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칫 그 때 그 때 맞춰 나가야 할 시대적 목표를 웃음거리로 전락시키는 해악을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대를 멀리 내다볼 줄 알았던 故 김준엽 총장님의 영면은 더 없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 자신 스스로 실천하는 모습을 통해 학자와 지도자의 지성과 리더십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사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분이셨다.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한번쯤 걸음을 멈추고 의정부 부대고기 식당에 들려주길 권하는 바다.
그 곳에 가면 은근과 끈기를 무기로 장인의 경지에 오른 분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을 통해 세상을 진실하고 제대로 살 수 있는 지혜를 얻는 기회를 낚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
누구보다 이 땅의 젊은이들을 사랑한다.

( 2011. 6. 8)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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