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14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아버지2

아버지 2


현지에서 살펴 본 아버지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했다.
이마를 여섯 바늘이나 꿰매 눈 한 쪽이 퉁퉁 부어올라 병상에 누워계셨다.
그런 아버지를 뵈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돌고 목이 메었다.
밤을 다퉈 모시러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연신 걱정을 하시면서도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셨다.
내 얼굴을 보고서야 비로소 긴장을 풀고 숙면을 취하시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그 아픈 중에도 하와이 독립문화원과 학교 그리고 집안의 대소사까지 끊임없이 관심의 끈을 놓지 않으셨다. 넘치는 에너지는 아버지의 천성이기도 한 것 같았다.
아버지를 통해 이런 열정들이 인간의 삶을 지탱해주는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중경은 중국에서 몇 번째로 꼽히는 도시라는데 중국의 위상을 생각하면 많이 실망스러웠다. 도시 전체가 얼마나 더럽고 어수선한 분위기 일색이던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회귀했나 싶을 정도였다. 아버지께서 머무신 병원만 해도 중경에서 제일 좋은 곳이라는 소리가 무색할 정도로 위생상태가 엉망이었다. 진료비는 왜 그리 비싼지 4일 입원비가 중국돈 2만원을 육박하는데 카드결제도 안된다고 해서 현금다발을 들고 있어야 했다.
귀국 절차도 순조롭지 않아 애를 태웠다.
당초 단체비자였던 아버지의 비자발급이 귀국을 지체시키는 원인이었다. 뛰고 저리 뛰었지만 결국은 예약 비행기를 놓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아버지의 꿰맨 상처도 비행기 탑승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이 됐다.
중국 항공을 이용할까 했는데 이마를 꿰맨 환자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항공사를 바꾸고 꿰맨 상처를 가리는 북새통 끝에 비행기 트랩에 오를 수 있기는 했지만 황당한 경험이었다.
심지어 환자의 탑승을 돕는 이동수단까지도 문제였다.
중경 공항에는 미국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환자용 미니카 대신 휠체어가 준비돼 있었는데 이 또한 만만치 않은 구설거리를 제공했다. 이용 환자를 마냥 기다리게 하는 것은 기본이고 특히 무면허처럼 환자에 대한 배려 없이 이리저리 마구잡이로 끌고 다니는 난폭운전이 무시로 행해지는 행태는 목불인견이었다.
역시나 중국은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음 하나 옮기는 것조차 힘겨워하시는 아버지를 부축해 드리는데 그 순간, 아버지가 전적으로 내게 몸을 싣고 의지해 오셨다. 원초적인 매달림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만큼 절박함이 느껴지는 몸짓이었다.
아마도 아버지가 그런 식으로 자신을 의탁한 일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에게서 어린 날 장터의 서커스 공연을 보고 늦은 밤 아버지 등에 업혀 돌아오던 내 모습을 보았다면 지나친 감상일까? 아버지도 어쩌면 어린 날의 나 같은 심정으로 손을 내미셨을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그 때 나는 컴컴한 어둠 속에서 뭔가 자꾸만 뒷덜미를 잡아채는 것 같아 두려웠다. 아버지 등에 찰싹 엎드리고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아버지와)밀착하고자 용을 썼던 이유다.
문득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아버지가 순간적으로 역할 환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인생을 반추하면서 인간의 삶과 죽음이 갖는 의미를 헤아리고 있다.
부정적인 의미도 아니고 긍정적인 의미도 아닌 단순한 ‘죽음’의 명제로 기도하듯 생각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아버지처럼 될 것이다. 전혀 새삼스럽지 않은 사실이다.
결국 아버지 얼굴처럼 주름이 지고 아버지의 다리처럼 빈약해지고 힘을 잃게 되리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여정 자체가 선택의 여지없이 죽음을 향하고 있는, 누구나 예외 없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이기도 하다.
그런 식으로 보자면 삶과 죽음의 경계조차 모호해지는 것 같다. 이 역시 너무도 당연한 현상이다.
오고 가는 여정 속에서 완독한 최인호 작가의 ‘낯익은 타인의 도시’와의 인연도 이 같은 나의 정서 형성에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현실 안주를 거부하는 비존재의 몸짓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거나 존재의 가치를 끊임없이 되물으면서 방점이 찍힌 현실을 찾고자 하는 노력의 일단을 볼 수 있는 재미는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미덕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


아버지는 귀국 직후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셨다.
앞으로 많은 검사를 남겨두고 있기는 하지만 대한민국에 적을 둔 병원에 입원했다는 안도감만으로도 아버지는 많이 안정된 상태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는 현지까지 당신을 찾아와 준 아들 얘기를 여러 번 반복하고 계신다.
그런 식으로 장남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시는 것이고 보면 참 많이 변하신 모습이다.
나 자신도 과찬에 몸 둘 바 없는 가운데 아버지께 더 효도하겠다는 결심을 다지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쾌차를 위해 함께 걱정하고 기도해 주신 주위의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 전한다.


(2011. 6.13)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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