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죽음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유병언’이
전라도 순천 매실 밭에 망자의 이름을 달고 나타났다.
고가의
명품에 휘감긴 채 본인 여부는 물론 사인 확인도 어려울 정도로 훼손된 상태로 발견됐다는 소식이다.
매스컴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황제처럼 신처럼 시대를 풍미하던 그였다. 재벌가
회장 못지않은 부를 누렸다. 카메라
셔터 한 방이나 낙서 같은 메모만으로 수많은 걸작(?)을
배출하면서 불멸(?)의
예술가 대접을 받았다. 교주를
향한 추종자들의 맹종적 헌신도 빼놓을 없는 로열티였다.
그런 그가 육포 2조각과
검은 콩 20알에
의존해 산길을 헤매다 명을 재촉했다니 모두가 허를 찔린 표정이다.
결국
끝없이 움켜쥐려 했던 재물, 권력, 명예
어느 것도 기로에 선 사내의 절박함을 덜어주지 못했다는 결론이다. 참으로
허망하고 또 비정한 탐욕의 끝이었다.
그나마 70 평생을
세상의 부귀영화를 향해 부나비의 욕망을 품다가 생을 닫아버린 ‘실증’이
되어 경종을 울리고 있으니 다행이라 치부할 수 있을까 싶다.
아닌
게 아니라 하늘의 징벌이 이미 시작됐나 싶을 만큼 비참한 말로가 드라마틱하게 전개되고 있다.
실제
사내의 시신은 차디 찬 냉동고에 들어가 있다. 죽어서도
범죄 소명의 굴레를 벗지 못한 탓이다. 그나마
그를 거둘 가정도 풍비박산 난 지 이미 오래다. 가족
대부분 수감되거나 도망자 신세로 전락한 현실이다.
누구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생전에
제대로 살지 못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비정하리만큼
냉정한 셈법이 작동된 결과다.
도스토예프스키는
27세
때 사회주의 혁명모임에 연루됐다가 총살형을 받고 처형 직전 사면된 경험이 있는데 이 때의 무시무시한 공포를
자신의 작품('백치’)에
반영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이가 사형집행 전 5분을 어떻게
활용하려 했는지를 설명하는 과정을 통해서다.
소설
속 화자는 ‘동료들과의
작별에 2분을, 자기성찰에
2분, 나머지
1분은
주변을 둘러보는 데 쓰겠다’고
했는데 나라면 어떤 선택이었을까, 생각의 여지를 주는 장면이었다.
너나없이
어떻게 태어나느냐 보다 어떻게 죽느냐에 더 방점을 찍으며 살아야한다는 생각이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가치 평가도 마찬가지다.
생전에
얼마만큼 물량을 늘렸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나눴느냐에 관점을 두고 그 삶의 가치를 논하는 게 옳다.
누구도
죽음으로 한계가 그어지는 삶의 여정을 모르지 않는다. 벗어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편협한 이기심에 갇혀 움켜쥐려는 부조화의 삶을 지향하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누구보다
공적인 마인드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나름의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막상 죽음에 대한 질문 앞에 서게 된다면 얼마나 당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머뭇거림
없이 명확한 대차대조표를 내밀게 될 때 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불가피할 것 같다.
‘나는
마지막을 무엇으로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가’
공공의 표적이
된 사내의 마지막이 나로 하여금 죽음의 명제에 천착하도록 이끌고 있다.
깊은
밤 폭우 쏟아지는 운동장을 누비며 스스로를 담금질하라고 부축이기도 한다.
천둥번개, 소나기, 불볕더위....
머잖아
한 해의 종착역을 향하는 달음박질로 숨을 고르게 될 터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준비 해야겠다. (2014.
7.26)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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