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6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우환


우환


요즘들어 갑작스레 집안에 우환이 많아졌다.
병원을 차려야한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환자가 늘고 있다.
지난 달 허리 병으로 입원하신 어머님에 이어 이모님, 그리고 고종사촌 매형과 형님이 같은 병원에 누워계신다. 그렇지 않아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계시는 아버님 때문에 심란한데 마음이 무겁다.
      
형님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에 많이 놀랐다.   
그러나 병상의 형님을 보는 순간 타임 테이블이 40여 년 전으로 되돌려졌다.    
언어를 잃은 와중에도 빛을 발하는 그의 백만불짜리 미소 때문이었다.
고모(형님의 어머니) 댁은 일일이 기억하기 어려울 만큼 식구가 많았다. 고모부는 성실하신 분이었지만 전쟁을 겪은 살림살이가 수월한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고모는 늘 뚱한 표정이었다. 무뚝뚝한 고모의 미소는 특별했다. 어쩌다 한 번 웃으면 그동안의 서먹함이 단숨에 사라지게 하는 묘한 힘을 발휘했다.
그 양질의 유전인자를 물려받은 사람이 형님이었다.
어린 시절 고모님 댁을 자주 찾았던 건 열 살 넘는 나이터울에도 불구하고 나와 죽이 잘 맞는 형 때문이었다. 역할놀이를 하면서 놀았는데 형은 선량한 시민, 나는 뒷주머니를 노리고 쫓아가는 도둑역할을 했다. 또 해진 후 뒷산 개울에서 찬물로 목욕을 하며 덜덜 떨던 기억도 있다. 뭘 해도 마냥 즐겁기만 하던 그 시절 추억을 함께 하던 형이 어느 덧 칠순의 노인이 되어 병고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이 허무했다.
추억의 꼬리가 매형의 병실로도 이어졌다.
마침 누나도 계셨는데 중학생 무렵, 어머니와 함께 내 방에 와서 내가 자는 줄 알고 결혼할 매형 얘기를 하며 ‘결혼작전’(?) 짜던 내용을 엿들었다고 했더니 펄쩍 뛰셨다. (아마도 당시 매형을 좋아하던 누나가 어머니께 지혜를 구하던 상황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면서 “이 사람이 날 좋아했지 내가 언제 홍씨(누나는 이씨 성이고 매형은 홍씨)를 좋아했느냐”며 시치미를 뗐다. 
그러자 뇌졸 증세로 말하기가 어려운 매형이 손가락질까지 하면서 극구 부인하고 나서 모두를 웃게 했다.
그렇게 잠시 웃음기가 도는 사이, 조카들에게 ‘앞으로 니들이 잘해야 한다’는 내용의 일장연설을 남기고 병원을 빠져나왔지만 허전함이 여전히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병실의 어른들을 찾아뵈면서  운명 앞에서 더 겸허해지는 마음이다.  
어떤 인생도 생과 사의 구분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깨달음을 공고히 다지게 됐다.     
특히 주어진 내 삶에 최선을 다해야겠다 다짐하는데 면회 갔을 때 들었던 A의원의 탄식이 새삼 떠올랐다.   
고작 5년 권력에 불과한데 대통령 주변인들이 천년만년 불변의 권력으로 착각하고 있어 안타깝다는 토로였는데  내게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5년이라는 한시적인 기간 동안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 권력에서 내려올 때 진정어린 박수갈채를 받을 수 있는 일....
그게 뭘까를 궁리하게 만들었으니.                                    

 (2013. 4. 16)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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