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27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Head? Heart?

Head? Heart? 


비교적  이른 나이에 정치를  시작한  탓인지  선배 정치인들과의 추억이 많은 편이다. 뵐  때마다  유난히  살가운  강창희  국회의장도 그런  인연 중 한 분이다.
그와 함께 했던  추억의  백미는 2002년 월드컵대회를 앞두고 일본 도쿄 올림픽구장에서 열린 한일 국회의원 친선 축구대회 기억이다.  
우리 측이 3대 1 역전승을 거둔 이날 경기에서 그는 야생마처럼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볐다.  급기야 상대방 골문 앞에서 얻은 프리킥 찬스를 멋지게  동점골로 연결시키더니  국가대표 출신인  가마모토 구니시게 의원의 정강이를  걷어 차 아무것도 못하게  하는 기량(?)을 선보였다.  적진의 에이스를 그 지경으로 만들어놓고도 “다음 대회 때 내가 못 뛰더라도 아킬레스가 끊어진 가마모토의 정강이를 공략하면 이길 수 있다”며  승부욕을 보이기도 했다. 
 
그 후 우리는 더 드라마틱한 인연으로 만나게 됐다.  
8년의 정치공백을 딛고 복귀에 성공한, 흔치않은 경험을 공감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무엇보다 그 인고의 시간동안 단 한 번도 스스로의 정치복귀를 의심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서로를 더 가까이 엮어주는 느낌이다.  
엊저녁 전현직 의원들이 함께 한 자리에서도 우리의 낙방거사 시절 얘기가 단연 화제였다.
특히 강 의장은, 그의 오늘이 결코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매진하고 돌파한 끝에 얻은 결과물이라며 지난 세월을 풀어놓아 박수를 받았는데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의 얘기이기도 했다.
그는 (나를 지목하면서) 우리처럼 끈질기게 최선을 다하면 다시 복귀할 수 있다고 한 때 잘나갔던 전직 국회의원들을 격려했다. 살펴보니 그에 대한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모두들 어떤 식으로든 자극을 받는 분위기였다.  
지난 정권 당시 핵심이었던 A 전의원은 “예전에 주어진 일을 하다보니까 잘못한 게 많은 것 같다. 죄송하다”며 내게 사과를 해왔다.  세상을 향한 분노와 자격지심에 시달리고 있던 B 전의원은 “의장님 말씀이 평소 홍총장님이 해주시는 조언과 비슷한 내용이 많은데 숙연해진다.”고 했다.  
(내 경우, 인간만큼 정치적인 동물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살아오면서 성공보다는 실패의 순간을 주목한 적이  더 많았다.    
실패의 순간, 그 상황을 얼마나 큰 약으로 쓰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 지금까지 내게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중학교 입학 실패, 박사과정 낙방, 국회의원 낙선 등-을 돌아봐도 그 때마다 나중에 이 실패를 인생의 교훈으로 삼겠다는 나의 다짐들이 ‘부록’처럼 달려있는 형국이다.
그렇게 쌓인 ‘부록’들은 나의 삶을 지키는 든든한 파수꾼 같은 존재가 되어있다.  어지간한 시련 쯤은 쉽게 극복되는 경지에 오른 요즘의 여유가 연륜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거기에다   자신에 대한 믿음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미국에 유학 간 지 얼마 안 돼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운전을 하다가 애매모호한 도로표지를 빨리 판단하지 못해  적발됐는데  백인우월주의자 같은 경찰의 언행이  문제가 됐다. 
"잘 몰라서 실수했다"고 하자   하버드 유학생인  외국인에 대한 적개심인지는 모르겠으나 비양거리듯이  “Use your head”라고 하면서 딱지를 뗀 것이다.  거기에  속상한  내가 “Use your heart”라고 응수하자  그가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했다는  이야기가 알려져 한동안 하버드 내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렇듯  나에게 있어 자존감은  삶의 고비를 맞을 때마다 더 큰 소명을 감당하기 위한 담금질이라고,  인생을 도전과 응전의 역사로 규정한 토인비의 안목이 괜한 건 아닐 터라고  토닥이며  에너지를  보태주는 보고였다.
   
강창희 의장님....
새로운 추억을  기록에 남기며  그를  떠올리니  이  멋진 인연이 마냥 감사하다.    
여전한 노익장으로 좌중을 휘어잡으며  인간적 매력을  유감없이 발산하는 강창희 의장의 에너지 보고는 무엇이었을까, 기회가 되면 여쭤봐야겠다.     
 “의장님, 의장직 그만 둔 뒤에도 괄시 안하고 열심히 존경해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   


 (2013. 8.28)
                                                                                                            ...홍문종 생각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