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9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불치하문(不恥下問)

불치하문(不恥下問)




일찍이 '아는 것’의 경쟁력을 간파했던 프란시스 베이컨의 통찰력이 놀랍다.
연륜의 관록이 쌓일수록 감탄하게 되는, 삶의 진리라는 생각이다.  특히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갈수록 그 위력의 범주가 넓혀지고 있는 추세다.
거듭되는 진화를 통해 우리에게 ‘문명'을 공급하고 있는  컴퓨터나 스마트 폰만 해도 그렇다. 새로운 기능을 발견할 때마다 신대륙을 발견할 당시의 콜럼부스 못지않은 문화 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간단한 기능 하나에 세상살이 절차가 훨씬 더 수월해지는 현실이라니, 그 반가움 때문에 둔한 손놀림으로라도 기능을 익히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섣불리 아는 척하기보다 아예 모른다고 하는 게 모두의 평화를 위해 백 번 낫다. 
다만 어설프게 알고 있는 경우엔 반드시 조금 다른 처신이 필요하다.     
얼마 전 미국 방문 때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보스턴에서 렌터카를 빌렸는데  유학할 당시 오랫동안 거주해서 지역사정에 밝다는 어설픈 자신감이 화근이었다. 네비게이션 없이 캠브리지, 하버드, 엠아이티 등 대학 캠버스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어느 순간 완전히 길을 잃고 만 것이다. 예전에 잘 알고 있었던 길들이 지금은 많이 바뀌어 낯선 환경이 되어버릴 만큼 흘러가버린 세월의 간극을 의식하지 못한 패착의 결과였다. 
결국 한 시간여를 뱅뱅 돌며 길 위에 뿌리고 나서야 목적지를 찾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인위적인 길안내에 의존했다면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었을 텐데 후회막급이었다.  
 
어설픈 잘난 척으로 이 보다 더 심각한 폐해를 초래하는 곳이 있다.
바로 정치판이다.
천양각색의  성향이 모인, 흔히 엘리트집단의 집결지로 인식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징후는 얼마든지  있다.  
얄팍한 지식만으로 전문가연하는 사람들이 만연해 있다.  완전치 못한 지식을 인정하거나 겸양의 도로 스스로를 낮추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 정도 수준이면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그나마 양호한 축이다.
문제는  어설픈 지식을 바탕으로 형성된 신념을 고수하는 '치명적인 폭탄들'이다.  신앙이 되어버린 신념은 바꾸기 힘들 뿐 아니라 주위의 많은 이들을 미혹에 빠뜨린다는 점에서 거의 통제불능 상태다.        
결국 사교집단 유형과 흡사하다는 생각이다. 종교를 잘못 이해하거나 이해시키려는 시도들이 우리 사회에 악영향을 끼친 전례를 보면 수긍이 갈 것이다. 
 
 30여년의 세월이 얹힌 오래 전, 하버드에서 공부할 당시,  친구들은  모르는 것이 생기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질문을 던지거나  답을 구하는 나를  낯설어 했다.  하버드에 다니면 뭐든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자부심과 배치된다는 반발심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그 모습이  내 본연의 성정이라는 걸  알고 난 후부터는 호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홍문종만의 강점'으로  인정하는 친구들도 생겼다.   
(그 때부터 불치하문(不恥下問) 의 도리를 실천하고 있었던  걸까?)  
  
아는 것은 확실히 힘이 된다,
그러나 지도자들의 잘못된 신념이 얼마나 무서운 민폐로 작용하는가를 간과해서는 안되겠다. 멀게는 세기의 독재자, 히틀러나 무솔리니, 그리고 가까이에는 최근 ‘나치 식 개헌을 배우자’는 망언으로 분통을 터뜨리게 하는 일본의 아소 부총리 등이 그 단적인 예다.
그런 점에서 지도자급 위치에 오르면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수 없게 만드는  우리 문화 역시 자유롭지 않다. 심지어 특정 미션을 강요당하는 일까지 있다. 그런 것들이 국민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깊어질 수 밖에 없다.   
   
특별히 국회 등 정치권의 지도자급 인사들이 스스로의 약점을 용기있게 고백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 지도자에게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기회의 허용이 필요하다.  그것도 무제한으로. 
더불어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할 수 있게 하고  교정을  독려하는 사회적 배려야말로  배놓을 수 없는 덕목이지 싶다.  

그것이 비로소 우리 사회를 올바르게 이끌 수 있는 최적의 답이 아닐까 싶다. 


(2013. 8. 8)




...홍문종 생각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