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1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신뢰

신뢰

관심을 끄는 외신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웨삼 엘-하나피와 사비르한 하사노프의 이름을 갖고 있는 2명의 미국인이 예멘에서 컴퓨터기술 등으로 알-카에다를 지원한 혐의로 미 연방검찰에 의해 피소됐다는 CNN 방송을 통해 접했다. 30대의 이 두 젊은이들은 알-카에다가 테러집단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이들 대원을 접촉하거나 이들에게 전달할 디지털 시계 7개를 구매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멕시코인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아리조나 국경을 넘다가 체포되는 사건도 있다. 자동차 곳곳에 숨은 그림처럼 들어앉아 국경을 넘으려던, 목숨 건 이들의 밀입국 장면은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미국이 기회의 땅으로 존재하는 현실을 실감나게 했다.
앞서 영국의 데일리 메일 인터넷 판에서는 미 국민 70%가 가족보다 국가를 더 사랑한다는 시장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누굴 가장 사랑하느냐’는 (시장조사 전문기관) ‘입소스’ 질문에 ‘(배우자를 포함한)가족보다는 국가’라고 대답한 반응이 제일 높았다는 내용이었다.

국가가 우선이냐 개인이 우선이냐 하는 망설임은 우리에게 늘 딜레마로 상존하는 명제다. 서로에게 있어 필수불가결의 관계로 묶여있으면서도 늘 국익과 사익 사이의 갈등과 충돌에 노출될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함이라고나 할까.
개인의 행복이 국가의 폐망에도 불구하고 항구적으로 보장될 수 있다거나 국민을 불행에 빠뜨린 국가가 홀로 융성한 국운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믿는 경우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개인과 국가를 따로 떼어 생각하는 자체가 무모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가까운 역사를 통해 찾을 수 있는 교훈도 적지 않다.
이완용 등 을사오적은 나라를 팔아 사익을 추구했고 안중근 의사 등 애국지사들은 국익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애국적 결단을 실행하신 분들이다.
이들에 대한 역사의 응답은 이미 보여지고 있는 그대로다.
을사오적은 매국의 댓가로 잠깐의 ‘행복’을 구가했을지 모르지만 1세기를 넘긴 지금까지도 그들의 후손은 ‘매국의 치욕’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애국지사들은 귀한 생명을 내놓기는 했지만 그들의 숭고한 자취는 후대에 길이길이 추앙되는 영예를 얻었다.

서두에 언급한 외신에서도 국가와 개인 간의 딜레마가 존재하는 미국의 현실이 보인다.
알-카에다를 지원하는 미 국민의 범죄 사건과 미국민 70%가 가족보다 국가를 우선시한다는 의식조사 결과가 공존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개인의 이익이 더 크면 나라를 배반할 수 있는 국민이 나올 수 있는 현실을 볼 때 무턱대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개인의 모든 것을 희생하라는 강요가 더 이상 능사가 될 수 없게 된 현실이다.
하지만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미국내 반감과 강력한 불법 체류 규제(아리조나가 최근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목숨을 걸고 미국 땅에 진입하고 싶어하는 현상에서 미국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아직은 미국이 자국민은 물론 세계로부터 신뢰를 잃지 않았다는 생각에서 비롯한 희망의 조짐 같은 것 말이다. 미국이 얻고 있는 이 신뢰가 위기와 실의의 미국을 견인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있다.
많은 인명이 희생된 천안함 사태에 대해 국가가 최고의 예우를 다하는 것 역시 국민신뢰를 이끌어 내기 위한 일환일 것이다. 그러나 최고의 예우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크게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건 신속한 진상규명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것도 국민 대다수가 속 시원히 받아들일 수 있는 확실한 규명이 이뤄졌을 때 가능한 이야기라는 것도.
당국도 이 점을 중시해서 하루 빨리 국민안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기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개인과 국가가 운명을 함께 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이음새는 바로 ‘신뢰’다.
신뢰가 중시되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도 '신뢰'의 내공이 발휘되는 국력을 갖고 싶다. (2010.5.2)
...홍문종 생각


홍문종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mjhong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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