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21일 금요일

홍문종생각 - 당신 뜻대로

당신 뜻대로

나의 귀한 이웃인 A와의 인연은 내가 선거에 처음 출마했던 1995년부터 시작됐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까지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함께 해 왔다.
약점 없는 사람이 없겠지만 그는 확실히 장점이 많은 사람이다.
남을 배려하거나 낙천적인 삶의 태도가 남다른 그는 늘 웃는 얼굴로 상대를 편안하게 해 준다. 특히 무슨 일이든 가능성에 비중을 두고 적극적으로 임하는 모습은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에너지를 전해준다.

그런 A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병원 두 곳에서 체크를 했는데 위암이랍니다. 위의 3/4을 잘라내고 항암치료 하면 된다는 데... 뭐 별 일 없겠지요”
6월 초, 함께 하기로 한 프로젝트에 동참할 수 없게 됐다는 서두로 운을 뗀 그는 ‘위암진단’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것도 별 일 아니라는 듯 웃음까지 섞어가며 말이다. 오히려 듣는 내가 더 당혹스러워 할 정도로 담담했다. 오후에 다른 일 때문에 마주친 자리에서도 예의 명랑하고 유쾌한 그의 목소리엔 여전히 힘이 실려 있었다. 참으로 놀라운 평정심이었다.
“그래. 이젠 위암은 암도 아니래. 수술하고 항암치료 받으면 금방 좋아지겠지”
걱정스런 마음을 그대로 드러낼 수 없어 위로의 말로 바꿔 전했지만 속이 편하지 않았다.
만약에 똑같은 어려움이 닥친다면 나도 그렇게 담담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선뜻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동안 강의를 통해 숱하게 생자필멸의 법칙을 얘기하며 죽음을 정의해 왔던 나다. 인간은 늘 죽음을 준비해야 하고 언제가 됐든 의연하게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막상 내 문제가 된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흔히들 그런다.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고.
솔직히 일상 속에서 ‘죽음’을 접할 기회가 많지만 누구나 자신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염두에 두지는 않는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자연스런 속성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인간이 죽음의 대명제 앞에서 동등하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그 어떤 몸부림으로 피하려 해도 누구나 맞이하게 돼 있는 운명이다. 불로초를 찾아 헤매던 진시황제도 결국은 흙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생명있는 모든 것들은 죽음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하루를 사는 것은 여분의 생명에서 하루 분량의 삶이 빠져나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죽음의 그림자가 멀리 있을 때는 온갖 미사여구로 미화하던 사람들이 정작 자기 문제로 직면하게 되면 소심해지고 비관적인 모습으로 바뀌게 되는 것 같다.
삶에 대한 애착이 일정 수위를 넘어 ‘집착’으로까지 이어질 경우 그 파장은 심각해지기도 한다.
비관적이고 초조하게 형성된 우리의 캐릭터가 후대에 어떤 식으로 남게 될지 고민해 보는 것이 그나마 자신의 삶의 질을 보살필 여유를 잃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언제 다가올지는 모르지만 죽음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인생에 닥칠 뜻하지 않는 재앙에 대해서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과 존재하는 그것들을 어떻게 현명하게 내 삶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뜻하지 않는 횡액은 시간이나 대상을 예고할 만큼 친절하지 않다. 언제든 누구에게든 찾아들 가능성이 열려있는 거부할 수 없는 불청객이다. 또 대부분 시간이 해결하게 돼 있다.
인생을 가장 잘 살아내는 노하우.
그렇기 때문에 그 무게에 지쳐 삶의 근간이 흔들리지 않도록 인내로 견디는 게 최상의 방책이 아닐까 싶다. 그러다 죽음이 내 삶의 문턱을 가로막고 나선다면 그 때는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알고 겸손하고 의연하게 받아들일 준비를 마치면 되지 않을까...

돌발상황 앞에서 의연함을 잃지 않는 A로부터 전해지는 자극이 내 삶을 돌아보게 했다.
신에 대한 경외감이 지나치게 인간적인 생각의 고리를 끊어버린다. 운명의 순응을 위한 스스로와의 타협이 이뤄졌다고나 할까.
'당신 뜻대로 하시옵소서'
결국 내 운명은 내 자의적인 몫이 아니라 거스를 수 없는 신의 영역에 속해져 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는 이 밤이다.
A의 완쾌를 빈다.

(2010.5.21) ....홍문종 생각


홍문종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mjhong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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