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16일 일요일

홍문종생각 - 지하철에서

지하철에서

1974년 8월 15일은 우리나라 최초로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된 날이다.
하도 오래 전 일이라 가물가물해졌지만 당시 신기하고 놀라운 기분으로 첫 운행에 들어간 1호선을 시승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외국에서 생활하고 귀국해서는 주로 자동차를 이용하다 보니 정작 1호선을 이용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선거 때 출근길 전철역 앞에서 유세를 하거나 명함을 뿌리는 정도가 그나마 1호선과의 인연을 상기시키는 기억인 것 같다.
오늘 서울에 나가 좋은 사람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귀가 길엔 전철을 탔다. 잠실에서 의정부까지 오는 동안 3번이나 (9호선 타고 고속터미날역, 7호선 타고 도봉산역, 그리고 1호선 타고 의정부역까지) 노선을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었지만 수확이 없었던 건 아니다.
나름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지하철 안 풍경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상받은 기분이다.

이제 막 시험이라도 끝낸 듯 몹시 지쳐 보이는 학생, 역시나 비슷하게 피로에 절어있는 젊은 직장인, 연애 삼매경에 빠져있는 커플, 등산으로 체력과 부부애를 동시에 다지고 귀가하는 것처럼 보이는 중년부부, 뭔가 수심 가득한 얼굴로 생활고의 고통을 온 몸으로 내뿜는 초로의 남자, 그와 비슷한 분위기의 남녀 무리들, 무슨 술을 그리 많이 먹었는지 계속 토해대는 아가씨 등 다양한 군상들이 저마다의 표정을 가지고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은 마치 대한민국의 축소된 단면을 보는 듯 했다.
나는 오늘에서야 휴대폰에 왜 DMB가 달려있어야 하는지 화면의 크기가 문제가 되는지 알았다. 끊임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며 문자 교신에 빠져있는 학생을 보면서 휴대폰 문자 메시지 기능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다.
전철이 역에 정차할 때마다 승객들의 표정이 다양하게 변하는 모습 역시 흥미로웠다.
어느 역에선가는 내리는 사람이 많아 좌석에 앉을 태세를 하며 순식간에 표정이 밝아지는 가하면 또 어느 역에선가는 갈아탈 전철을 놓치지 않기 위해 뛸 준비로 결연한 각오가 담긴 표정을 보이기도 했다. 나 역시 그들 틈에 끼여 열심히 뛴 덕분에 막차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중 잠자다 내릴 역을 지나쳐 황급히 전철을 내리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안쓰러움을 자아내게 했다.

강남에서 의정부까지 교통비 1500원으로 참으로 많은 것을 얻은 귀가길이었다. 생존의 치열한 열기를 감지할 수 있는 현장체험을 한 기분이라고나 할까.
우리 지하철이 미국이나 일본 지하철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는 (중국에 가서 지하철을 타봤는데 우리 것에 비하면 한참 수준이 떨어져 보였다) 생각에 흐믓함 마저 느낄 수 있었다.
한나라의 척도를 문화나 예술 등 한 두가지 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지하철을 기준으로 한다면 어느 정도 희망의 가능성을 품어도 좋을 듯 싶었다.
그동안 우리가 달려온 먼 길을 생각할 때 이제는 정말 세계를 주름잡을 중요한 모멘텀을 만들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가 더욱 더 정성을 모아 제대로 한번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불끈 생기는 것 같았다.

의정부역에서 내려 걷다가 잘 준비를 하면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노숙자들과 마주쳤다. 편치않은 그 모습들이 걸어오는 내내 눈에 밟혀 마음이 좋지 않았다. 정치를 했던 사람으로서 정말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고 편견없는 세상은 신기루에 불과한 것인가에 대해 책무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당면한 현안으로 받아들여야 할 아픈 현실이었다
전철역 주변을 도배하고 있는 시장 후보들의 현수막과 시.도의원 후보자들의 흩날리는 명함의 퍼레이드를 지나치면서 과연 어느 후보가 이 같은 현실을 잘 해결하고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일까 생각했다.
지역과 나라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적임자를 선택하기 위해선 이번 선거에 좀 더 공정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특별한 종교나 지역, 출신 학교 등의 성분에 대한 차별로 ‘인물’을 놓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오늘의 지하철 대장정(?)은 해피엔딩으로 종결지으려 한다.
서민의 애환이 서린 그 곳에서 희망의 근거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추억과 희망과 걱정이 교차되는 가운데 행복한 여운이 가슴 속을 파고드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 싶다.


(2010. 5. 15) ....홍문종 생각

홍문종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mjhong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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