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10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역할 보완

역할 보완

얼마 전 첼리스트 장한나가 방송에서 오늘 날 자신의 음악적 성공을 위해 헌신한 부모님 얘기를 전하는 모습을 봤다. 어린 딸이 줄리어드 음대 예비학교 입학이 허용되자 장한나의 부모님은 한국에서의 모든 기반을 버리고 함께 도미, 딸의 뒷바라지에 올인했다는 것이다. 대기업 간부인 남편의 수입으로는 월 500만원 되는 아들딸의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어 파출부로 나선 어머니의 사연을 전하는 기사도 있었다.

이 정도의 사연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자식의 미래를 위해 부모의 희생은 이제는 거의 당연시되는 분위기다. 가히 ‘캥거루족’(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자녀들)이나 ‘헬리콥터족’(항상 자녀의 곁을 빙빙 맴돌면서 간섭을 멈추지 않는 부모들)의 신조어를 주도하는 국가답다고나 할까.



대한민국 부모들의 유별난 자식사랑은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분명하고도 확실한 이유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건 갈수록 도를 더해가는 부모들의 자식 욕심에 따른 폐해 때문이다.

솔직히 부모의 인생전부를 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과열되는 과도한 자식사랑이 자식의 미래에 긍정적 사인으로 작용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오로지 자식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부모 자신을 위한 것인지 짚고 넘어가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자수성가로 가문을 일으키기는 일이 쉽지 않았다. 사회적 여건을 비롯한 여러 환경들이 빈손의 젊은이들이 노력만으로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있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뜻과 의지만 있으면 기성세대의 큰 도움 없이도 자립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전반적으로 모든 것이 변화된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자식에게 고기를 먹이는 걸 능사로 삼지 않는 유태인의 자녀양육 방식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그들은 고기 잡는 기술을 알려줌으로 해서 자녀의 자립기반 구축을 돕는 것은 물론 생존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삶의 비법을 전수하고 있다.

갓 태어난 새끼를 벼랑으로 밀어뜨려 야생에서 생존하는 법을 가르치는 사자로부터 비슷한 형태의 부모사랑 방식을 발견할 수 있다.

나 역시도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내 자식에게 그에 상응하는 사랑을 베풀고 있는가 생각해보면 고개를 가로저을 수 밖에 없다. 할 수 없어서라기보다 자식의 미래에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정적인 영향력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클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양육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부모들의 과도한 사랑이 오히려 자식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걸림돌로 작용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부모의 무분별한 사랑이 자식을 무능하게 만드는 사례도 수없이 많다.

그 어떤 이유에서건 사랑이 될 수 없다.

결국 부모가 자식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자연의 섭리를 감안해도 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주관하는 건 옳지 않다. 자식을 소유물로 보려는 그릇된 발상에서 비롯된 횡포에 불과하다.

부모의 삶이 마감된 후 그 빈자리를 메워 줄 대체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생존경쟁을 미처 익히지 못한 자식으로서는 참으로 난감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기존의 부모상에 스승의 역할이 더해진다면 좀 더 바람직한 형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자식을 향해 무한대로 열려있는 부모와 달리 유한한 존재로 자리매김 돼 있는 스승의 현실적 측면을 고려한 발상이다. 한없는 사랑을 무상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부모와 유한한 형태의 계약 절차가 포함된 스승과의 관계에서 스승의 인위적인 절제와 부모의 적극적인 헌신이 적절하게 교차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희망적인 관계 설정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긴다. 학생의 영혼을 위하거나 그들의 먼 미래를 내다보는 교육에 주력할 수 없게 돼 있는 게 오늘 날 교단의 솔직한 현실임을 감안하면 말이다.



군사부일체로 부모와 스승이 같은 입장으로 존경하고 받들던 예전을 생각하면 공부도우미로 전락한 것 같은 스승에 대한 씁쓸함이 없지 않다. 고등학교 교사가 포함된 삼인조 복면강도가 검거됐다는 소식이 이제 더 이상의 놀라움으로 다가오지 않는 심각함도 이대로 교단을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위기감을 부축인다.

부모와 스스의 역할 보완은 기대할만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 갈수록 삭막한 계약관계로 전락해가는 사제지간의 위기를 막게 될 수 있다. 대학입시나 취직 등을 위한 표피적인 가르침이나 실적에 연연하는 기계적인 입장에서 스승의 체모를 되찾는 기회를 갖게 될 수도 있다.

책임의 소재를 따지기 전에 우리 사회 구성원 전체가 ‘발등의 불’로 생각해야 할 시점이 됐다는 데 인식을 함께 해야 할 것 같다.



한 주를 간격으로 어버이 사랑과 스승의 사랑을 되짚어보도록 하는 것도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부모이자 스승의 입장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이 아이디어가 괜찮다고 생각되시면 지금부터라도 무단-무한 활용해 주시길 바란다.

저작권은 없다.
(2010 . 5. 10)

....홍문종 생각




홍문종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mjhong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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