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8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매 맞는 공권력

매 맞는 공권력


지난 주말 FTA 반대 시위현장에서 발생한 종로 경찰서장 폭행 사건을 둘러싸고 진영논리가 뜨겁다.
정부 여당과 경찰은 공권력 침해라며 강경 대응방침을 천명하고 나서는 가하면 야당과 집회관계자들은 시위대를 자극해서 폭력을 유도한 경찰에 책임이 있다며 반발하는 모습이다.
특별히 어느 한 쪽을 두둔하거나 폄훼할 의도로 이 문제를 거론하는 건 아니다. 어느 쪽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될지는 결국 시간이 해결할 일이 아닐까 싶다.
다만 공권력에 대한 폭력문제 만큼은 다른 각도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본다.
이번 폭행사건은 시위현장의 특성 상 흥분이 고조될 수 있고 군중심리 등으로 부풀려진 감정의 과잉현상이 초래한 부정적 결과물일 수 있다. 그렇더라도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다는 생각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매맞는 공권력이라니 어이가 없다.

미국의 데모 현장을 보면 우리 정서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많다.
일단 법을 어기면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성역없이 공권력의 엄격한 제제가 가해지는 모습부터가 낯설다. 미국사회에는 원칙적인 법 집행을 능가할 그 어떤 권력이나 여론이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시위현장에서 국회의원이 체포되거나 대통령 자녀들이 질질 끌려 나가는 모습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2011년도 연방 정부 예산 통과를 항의하던 워싱톤 DC 시장이 수갑이 채워진 채 체포됐는데 그에게 적용된 죄목은 ‘불법 시위 및 통행방해죄’였다. 수단 정부의 인권탄압을 항의하던 하원의원들도 불법시위를 벌인 혐의로 무더기로 잡혀갔다. 역시나 수갑이 채워진 채였는데 그들 중엔 서열 10위권 내의 여당실세도 포함돼 있었다.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어찌 보면 살벌할 수도 있을 미국의 시위문화에서 고급스런 안정감이 감지되는 건 그다지 생경한 일이 아니다. 수갑을 채우는 경찰이나 체포돼 끌려 나가는 시위대 사이에 상당히 안정적인 교감이 이뤄지고 있기에 가능한 정서이기 때문이다. 시위대는 스스로의 불만을 표출하다 체포되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다. 이는 법을 준수하면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의 역할을 다하고 불법적이면 준엄한 법의 집행자로 바뀌는 룰을 정확히 알고 있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그 범주 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서로의 방식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시위 문화는 상당히 감정적이다.
서로의 뜻이 어우러지고 하나가 될 경우 폭발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풍부한 감성은 우리 국민이 갖고 있는 정서적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냉정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감정적인 정서에 치우치게 되면 이번처럼 경찰서장 폭행이라는 부정적인 에너지로 표출될 때도 있다.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로 상징되는 대한민국의 응원문화는 우리의 국민적 열정이 집단 에너지로 산화돼 이뤄낸 쾌거다. 전 세계가 경이로움으로 우리를 바라보던 때의 감격이 지금도 생생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게 뜨거운 국민적 기질이 또 다른 차원으로 세계를 놀라게 할까봐 걱정이다. 특히나 외국에 ‘치안이 잘돼 있는 나라’ 이미지로 호감도를 올리는 우리의 관광 홍보 전략을 감안한다면 단순한 기우가 아닐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하기야 국회의원들이 망치를 들고 국회 기물을 부수거나 본회의장 안에서 최루탄까지 터뜨리는 마당에 시위문화가 무슨 의미일까 싶지만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니다.

정부와 국민의 관계가 존속하는 한 어떤 형태로든 시위문화는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민주사회에서 다수의 의견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자리잡은 이상 이런 식의 불상사는 항존하게 돼 있다.
그렇다면 올바른 시위문화 정착을 위해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시위를 통해 의견을 표출하는 방법이나 시위현장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금도를 비롯한 각종 룰에 대한 교육도 그 일환이 될 것이다. 준법 투쟁 등 구체적인 시위 관련 사안을 사회 교과서의 한 부분으로 넣어서라도 가르쳐야 한다.
의사를 표현하는데 있어 통제되지 못해 과격해진 감정이 허용되는 사회라면 그로인한 혼란은 불을 보듯 환하다.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일등 대한민국의 길도 요원해 질 수 있다.
혹여 시위하는 입장에서 배부른 자들의 지나치게 통속적이고 일방적인 잣대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다. 정말 혁명적으로 바뀌어야 할 상황인데도 계속 강자의 논리만 부각되고 존중받는 사회가 정상적이냐며 상황인식 부재라는 우려와 반박이 쏟아질 수도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적 불만을 혁명적 상황으로 몰고 가려는 시도가 최선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국가 사이의 분쟁을 전투로 해결하는 게 능사가 아니듯이 말이다.
항상 주장하듯 위대한 나라는 위대한 국민이 만들었다.
위대한 국민, 위대한 나라가 되기 위해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아직은 많지만 그렇지만 우리는 꿋꿋하게 해낼 수 있다. 해결할 수 있는 자신감과 역량이 있다.
다만 매맞는 공권력 문제가 우리의 '위대한' 프로젝트를 가로막는 불상사가 되는 일은 없어야겠다.

(2011. 11. 28)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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