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10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주먹을 펴자

주먹을 펴자

정치권이 갑자기 과감하고 담대해졌다.
청와대 사과와 당 쇄신 요구에 목청을 높이는 정치적 소신들이 튀어나오고 있다.
그토록 이름을 올리고 싶어하던 감투에도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는 초연한 모습들이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이유가 있었다.
선거의 계절이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수명을 다해가는 권력의 끝자락이면 의례껏 출몰하는 선상탈출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었다.

사분오열하는 정치판을 을 바라보는 심정이 조마조마하다.
선수들이 오월동주와 동상이몽으로 활로를 모색하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건만 4년마다 반복되는 똑같은 레퍼토리에 식상한 탓일까?
이를 지켜보는 국민 눈총이 그 어느 때보다 험악하다. 당연한 결과지만 그렇지 않아도 보기 싫은 정치판을 더 혐오스럽게 만들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다.

위기 국면을 맞은 정치권을 질타하는 말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가히 백가쟁명의 시대라 할 만하다.
그러나 대부분 대안 없는 비판에 그치고 마는 아쉬움이 있다.
정치권이 국민적 공감과 호응을 얻는 집단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구체적인 대안과 이를 실천하고자 하는 정치 당사자의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하다는 걸 모르지는 않을텐데 눈 앞의 현실은 요원하기만 하다. 쇼맨십만 남발하는 정치인들에게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자신들의 속내를 꿰뚫고 있는 국민이 보일 리 없다.

기득권을 버리고자 하는 진정성 차원의 문제 해결이 진척을 보지 못하는 게 오늘 날 정치추락의 근본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탐욕을 배제한 진정성만이 위기에 빠진 정치를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정치인들에게서 진정성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니 걱정이다.
정치판을 구하려면 당 후보를 선택하는 공천권을 당원과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이 급선무다.
가장 비민주적 행태의 공천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는 우리의 정치 환경이 가장 선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정당의 공천권 행사가 정당 정치의 근간을 이루는 주요 명제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보 선택은 당 대표나 당의 유력 주자의 의중에 따라 좌우되는 지금과 같은 체제로는 국민 관심을 끌어낼 수 없다. 이는 오래 전부터 품어온 개인적 소신이다.
기득권이 얼마나 큰 권력이고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포기’만이 유일한 답이라는 주장을 접고 싶지 않다. 그 거대한 권력을 포기하는 순간, 정치판이 확실히 바뀔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분명 엄청난 카타르시스와 함께 하는 국민적 공감대는 물론 정치권에 신선한 활로를 열어주는 위대한 작업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고령자 물갈이론’이 등장했다.
쇄신 운동의 단골 메뉴인 만큼 새삼스럽지 않지만 정치발전을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충분한 논의를 거쳐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근거를 바탕으로 한 접근이 아니라 특정 집단이나 개인을 겨냥한 일방적이고 인위적인 기준에 의해 급조된 혐의가 짙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설득력 있는 기준을 만드는 데 실패한 정황이 역력하다. 해당자들의 반발로 당내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는데도 선뜻 나서서 이를 설득하거나 반박하는 움직임 자체가 전무하다.
가장 큰 이유는 정당성을 뒷받침할만한 이론 작업이 부실한 탓이 아닐까 싶다.
미국의 경우, 오바마나 클린턴, 그보다 훨씬 앞선 세대의 케네디 등 젊은 나이에 대통령이 되어 미국 전역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사람들이 물론 있다. 하지만 70세에 대통령이 된 레이건 등 고령의 나이에 국가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는 사례들이 더 많다.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역시 죽는 순간까지 상원의원으로서의 소임을 다했고 국방장관을 지냈던 서먼드는 100살까지 상원의원을 했다.
저마다의 특성과 강점이 한데 어우러질 때 효과가 가장 크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정치는 노장청의 어울림이 집단적 시너지로 작동하는 특성이 더 강한 분야다.
노인세대에는 젊음과 패기만으로 도저히 모방할 수 없는 경륜의 에너지가 있고 노익장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역동성은 청년세대가 보유하고 있는 나름의 강점이다. 저마다의 영역에서 나름의 기량을 인정받은 이들이 국민과 당원의 지지를 받아 투입된다면 정치판이 지금처럼 국민에게 외면 받는 수모를 겪지 않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정치 발전을 위한 또 하나의 해결책으로 ‘정부통령제와 4년 중임제’를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대통령 1인에 몰려있는 권력 체계가 정치발전의 걸림돌이 되는 현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정치 환경에서 권한을 나누거나 보완할 수 있는 부통령제를 도입한다면 완충지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솔직히 있다. 부통령이 보완재나 대체재로 대통령의 통치영역을 보조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역할이 더 많다고 본다. 물론 선출직인 부통령에 대해 대통령처럼 탄핵절차를 거치지 않고는 파면되지 않는 지위의 보장이 있어야겠다.
부통령제가 정착된다면 4년 중임제에 대한 부담은 자동으로 해소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책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4년 중임제 역시 빠른 시일 내에 결론을 내야 할 의제라고 생각한다.
이밖에도 내각제는 정부통령제 체제에서 대통령과 부통령 사이의 갈등으로 나라가 크게 혼란스러워 질 수 있다는 걱정을 해소할 수 있는 또 다른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각제가 실시될 경우 재벌 기업 등의 자본이 의회를 장악하거나 파벌 보스의 영향력이 확대 등 또 다른 우려를 낳을 수 있다. 후보선출 과정에서 국민에 의한 공천과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에 만전을 기한다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정치는 분명 변해야 한다.
그러나 어영부영 제스처로 넘기려는 꼼수는 처음부터 버리는 게 좋을 것이다.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줬던 실망과 혐오감을 상쇄시킬 만큼 강력한 매력이 담은 쇄신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때만 되면 선상탈출의 일환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에 잠시 고민해 봤다.
누군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한마음이 된다면 이루지 못할 바도 아닐 터, 나부터라도 움켜 쥔 주먹을 펴겠다.

(2011. 11. 10)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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